[임요희의 작가노트] 너 죽고 나 죽는 복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30 00:02:54

15년간의 감금은 진짜 형벌이 아니었다. 진정한 형벌은, 감금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순간 시작됐다.

“‘왜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자, 다시?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딱 15년 만에 풀어 줬을까요?’”

영화 ‘올드보이’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재상영 행사를 가졌다. 올드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와 함께 복수 3부작으로 불린다.

감금에서 풀려난 대수는 우진의 계획에 따라, 미도가 자기 딸인 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15년은 미도가 성인으로 자라는 시간이었다. 대수의 섣부른 혀 놀림으로 누나를 잃은 우진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바로 그 심정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복수를 완성한 우진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복수의 칼끝을 겨눈다. 누나를 죽게 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카눈(Kanun)은 타인에 의해 가족이 죽거나,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지면 살인으로 되갚는 알바니아의 명예살인 풍습이다. 만약 수치를 당했는데도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는 겁쟁이라고 평생 놀림을 당하게 된다.

실제로 남자 둘이 말다툼을 하다가, 한쪽이 넘어졌는데 수치를 갚는다며 그의 형제들이 찾아와 밀친 남자를 죽였고, 이 와중에 이를 말리던 경찰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자 경찰의 아들이 찾아와 그 가족을 몰살시켜버렸다.

▲ ‘올드보이’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재상영 행사를 가졌다. 올드보이 스틸컷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싸움, 양쪽이 절멸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복수극이 카눈이다. 심지어 집에 온 손님이 밖에서 수치를 당하면 집주인이 그를 대신해 복수해야 한다.

알바니아 정부는 카눈에 연루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보호구역을 만들어 수용했지만 이곳에는 학교도 기업체도 없다. 카눈의 대상이 되는 순간 목숨을 포기하든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하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복수심은 원초적인 감정이다. 복수는 본능이지만 복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로 간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원한에 사무치면 나의 목숨쯤 하찮아진다. 상대를 몰락시키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너 죽고 나 죽고’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성을 잃으면 아무 계산을 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시인·소설가

임요희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