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친일파 자손’ 문재인·유시민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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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문명성과 ‘반일’의 전근대성

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20 00:02:40

문재인 전 대통령이 12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사자(死者)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아무 근거 없이 문 전 대통령 부친에 대해 ‘친일을 했다’고 매도한 탓”이다. 6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박 장관이 백선엽 장군을 향한 일방적 ‘친일파’ 몰이에 맞서 “(일제시대)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것은 친일파가 아니냐”고 반문한 것을 문제 삼았다.

문 전 대통령이 “(부친의) 해방 후 재직”을 주장해 왔으나 보통문관시험 합격 시점은 1940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유시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부친의 교사 이력이 논란을 빚자 “해방 이후”라고 반박했지만 1943년 2월~1945년 7월 일제 만주국 통화성 폐대무자촌 국민급학교에 재직한 기록이 나왔다.

고소를 당한 박 장관이 입장문을 냈다. 문 전 대통령 부친을 친일파로 비판한 바 없으며 그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같은 기준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서 “친일에 대한 적극적·생산적 토론의 계기가 된다면 망외(望外)의 소득”이라고 말했다. 이에 ‘망외의 소득’을 추구하며 몇 마디 거들고자 한다. 우선 그런 류의 친족 이력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사 문 전 대통령이나 유 씨를 비롯해 같은 사례의 모든 분들께 간곡히 전하는 바이다.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란 욕설에 가깝다. 일본을 ‘절대악’으로 상정해야만 성립하는 현상이다. 60년 가까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며 ‘윈윈’해 온 우방국을 여전히 절대악 취급한 어휘가 통용되는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정작 ‘친일’의 개념 내지 기준이 막연하다는 게 더 문제다. 지금까지의 쓰임새로 보건대 ‘항일 무장투쟁 경력자’ 외엔 모두 ‘친일파’에 해당되지 싶다. 돈 있고 지위 있는 일본인들과 친해질 기회를 굳이 마다한 조선인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 시절을 체험한 주위 어르신들 증언, 박완서(1931~2011) 작가가 유년기를 회고한 작품 속 에피소드 등을 통해 얻어진 판단이다.

인류사엔 ‘제국적 근대’ ‘식민지적 근대’가 있었을 뿐이다. 산업화·도시화와 그에 따른 다사다난한 변화, 따라서 결코 고상하기만 한 시간일 수 없었다.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의 영성과 직업윤리가 대항해시대 이래 천민자본주의의 미친 질주를 일정 부분 제어하며 시대는 나아갔고, ‘법치’ ‘인권’ 등이 자리잡기까지 최소 350년 이상 걸렸다. 비유럽권 근대사에서 유일한 우등생 일본이었지만 ‘개인’ ‘자유’의 확장을 근대정신의 핵심으로 파악한 시각에서 보면 신격화된 천황제 중심의 근대국가란 수준이 떨어진다. 이를 ‘유사(類似) 근대’로 본 사카이 나오키 미 코넬대 교수, 그런 일본을 시종일관 평가절하한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모두 같은 맥락이다.

다만 한 가지, 서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경영이 자원·노동력 약탈 위주로 진행된 반면 일본은 식민지에 각종 인프라 투자를 하며 ‘동화’를 추진한 특이한 제국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유럽·북미 외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한때 식민지였으나 그중 산업화·민주화를 실현한 나라는 일제 식민지 출신인 한국과 대만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야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성숙할수록 자기 체험을 객관화·상대화하게 된다. 선악 이분법적 사고에서도 벗어나기 마련이다. 일제시대 역시 세계사적 차원에서 비교 검토돼야 한다. 최소한 ‘친일’을 대량 학살 등 반인륜적 ‘반민족행위’와 구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일합방을 통해 한반도는 세계 자본주의 체계에 편입됐으며 일제 헌정 질서의 작동 범위로서 근대 세계의 일부가 됐다. 그것이 근대적 체험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격렬한 반감의 대상인 ‘식민지근대화론’도 재고돼야 할 때다. 식민지근대가 있었기에, 또한 그것을 해방 후 미국식 시스템과 적절히 혼용했기에 근대화의 가속과 달성이 가능하지 않았던가. 식민지근대를 ‘청산’하고 김씨조선으로 퇴행한 북한의 현실은 결정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제하 조선인들이 근대 문물을 접할 길은 기독교(친미) 아니면 친일이었다. 친일의 ‘근대 문명 친화적’ 요소까지 부인하면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일본인 상공업자 밑에서 배운 기술·경영 등도 값진 근대 문물이며 법조인·행정관료·교사·장교 등은 근대사회의 전형적인 상층 직업군이다. 그 시절 그런 출세의 문호가 식민지인들에게 열려 있던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일제밖에 없었다. 특히 가장 체계화된 엘리트집단이 군부였다. 박정희·백선엽 등의 만주군 경력은 메이지일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체화한 것이었고, 고스란히 훗날 ‘조국 근대화’로 성공적으로 리메이크됐다. 그 세대의 집중적인 식민지근대 체험이 선진국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것이다.

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