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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호성 나라짱닷컴 대표는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그는 성우와 연극배우로 방송과 연극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스카이데일리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수호지와 삼국지 등을 읽으며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 경험이 있어 성우와 방송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주호성 나라짱닷컴 대표(65)는 1948년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주호성은 예명이며 본명은 장연교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던 주 대표는 등장인물들의 성향을 파악하며 책을 읽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 상당히 많은 독서량을 자랑했다고 한다.
“환경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먹을 것조차 없던 시절이었지만 책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소설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주 대표는 동네 사랑방에서 소설 등 다양한 교양서적을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위해 읽어주었다고 한다. 인물에 어울리도록 각각 다른 목소리로 연기를 해서 청중의 몰입도를 한껏 높였다. 그래서 ‘연교’는 동네에서 책 잘 읽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한번은 슬픈 대목을 읽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울고 계셨습니다.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책을 읽었지만 우시는 것을 보고 저도 같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네요”
책을 통해 교양과 연기 실력을 쌓아가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에서 처음 연극을 시작했다. 어릴 적 독서와 연기의 경험은 훗날 장연교가 성우와 연극배우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얼굴 기억할 길이 없어 부정(父情) 더 못잊어
▲ 주 대표는 부친과 함께 놀았던 기억은 있지만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주호성을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 성장시켰다. ⓒ스카이데일리
한국전쟁 무렵 그는 부친을 잃었다. 부친은 살아생전 아들을 목마 태어주며 애지중지했다. 그는 당시 아버지가 입었던 옷과 냄새까지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상황을 모두 기억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얼굴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술회했다.
전쟁으로 집안이 불타며 가산 대부분을 잃었고 사진 한 장 건질 수가 없었다. 주 대표는 아버지의 사진 한 장도 못 챙긴 것이 너무 아쉽다며 회고했다.
초등학교 4학년 서울 종로로 이사하며 그는 매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당시 주 대표는 학교에서 진행된 가족조사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전쟁 후라서 학교에서 ‘아빠가 없는 학생’, ‘엄마가 없는 학생’ 등을 묻는 가정조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빠가 없는 학생은 손을 들어라’고 했을 때 저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조사가 너무 싫었습니다. 냉장고·텔레비전이 있는냐, 없느냐를 묻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방침에 따라 무심코 조사할 수 있었겠지만 어린 나이의 저에게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른이 되면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스스로 맹세를 했었죠”
주호성 대표는 어릴 적 연극무대의 경험을 살려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에 입학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배우를 하고 싶은 생각은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연극 무대에 올랐고 공연했던 경험을 살리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연극영학과에 입학했던 것 같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연극무대에 서며 약간의 수입이 있었지만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성우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 1970년대 주호성 대표가 연극 ‘환타지 만(卍)’에서 열연하고 있다. <사진=나라짱닷컴>
그는 1968년 기독교 방송의 11기 성우로 뽑히며 정식으로 성우가 됐다.
“학교 다니랴, 방송국 다니랴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또 연극까지 하다보니 목이 자주 쉬었습니다. 방송생활에 충실하지 못해 국장님께 호된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준 국장님의 배려 덕에 성우생활은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습니다”
연극무대, 방송생활, 학교생활을 병행한 그는 방송을 통해 돈을 조금씩 모았다고 한다. 이 무렵 그는 주호성이란 예명을 지어준 박용기 부장을 만나게 된다.
“당시 TBC 드라마 제작 부장으로 계시던 박용기 부장님이 주호성이란 예명을 지어주셨습니다. 호랑이처럼 강하게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있었어요. 제 마음에도 쏙 들었지요. 20대 중반부터 쓰기 시작한 이름 주호성은 지금까지도 계속 잘 쓰고 있습니다”
방송국 생활은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1970~80년대의 방송은 외화 녹음을 비롯해 많은 프로그램이 더빙으로 방송됐다. 거기에 한국영화까지 대부분 더빙이어서 주호성이 할 일은 산더미 같았다. 밤새워 녹음하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됐다.
“고 이주일 선생님이 코미디언으로 한창 유명세를 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주일 선생님은 영화를 총 12편을 찍었는데 그 중 11편이 제 목소리였죠. 저는 조금씩 성우로서 자리를 잡아갔고 방송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주 대표는 당시 방송국 PD들의 섭외 1순위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작은 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분야는 연극이었다.
“방송 성우는 돈을 벌지만 연극배우는 수입이 초라합니다. 저는 성우보다는 관객의 눈 앞에 서는 연극배우가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일정을 연극 중심으로 짰고 공연이 없는 날에는 밤을 새워가며 녹음을 했습니다”
아리따운 배필 만나다…장나라 세상 못 볼 뻔 했는데 ‘하늘의 뜻’ 축복
그는 20대 후반에 평생의 배필을 만났다. 아름답고 청순한, TBC의 탤런트 이경옥이 바로 그의 신부였다.
“우리 모두 방송가에 있었기에 만날 일이 많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발전해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결혼식 전날까지 연극무대에 섰습니다. 역할 때문에 앞머리를 일자로 잘랐는데 일자 머리를 한 채 식장에 들어서니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거기다 아내는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1970년대 TBC 탤런트 이경옥씨의 모습. 당시 연예계에서 출중한 미모를 자랑했던 그녀는 주호성의 아내이자 장나라의 어머니다. <사진=나라짱닷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연극을 같이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분장을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결혼하면 아내 화장만큼은 자기가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었어요”
“실력 좋은 그 친구는 워낙 바쁘다 보니 제 결혼식 당일에도 다른 일로 무척 바빴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제 아내의 신부화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결혼식에 1시간이나 늦게 됐지요.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하객들은 ‘신부가 도망갔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신부가 등장하자 아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결혼식을 마친 주호성 부부는 신혼여행을 방송국에서 보냈다.
“방송 스케쥴이 있어서 신혼여행을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못 다한 일을 하려고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당시 생방송이었는데 아내는 방송국 주조정실에서 저를 지켜보았습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아내와 얘기하며 ‘신혼여행을 방송국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며 웃었다고 합니다. 제작진이고 출연진이고 모두 잘아는 선후배들이라 다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방송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주 대표는 일정이 너무 빠듯해 결국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미안한 기억입니다. 아내는 저를 믿고 이해해줬는데 결국 신혼여행도 못가 아쉽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는 결혼식 이듬해인 1976년에 첫 아이로 아들 성원을 낳았다. 배우의 피를 이어받은 장남 장성원은 1995년 MBC 2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방송과 스크린에서 활약하고 있다.
주 대표는 득남 이후 5년이 지나 둘째 나라를 낳았다. 주호성 부부는 하마터면 장나라를 낳지 못할 뻔했다.
“장모님이 둘째인 처제를 낳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둘째 아이를 낳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요즘 말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이지요. 둘째 계획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인지 나라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1년 동안 몸 아파 누었는데 생활고로 힘들었죠”
장나라를 낳은 이듬해인 1982년에 주호성은 과로로 몸이 아팠다고 한다. 심신이 지쳐 약 1년 동안 방송생활을 쉬어야 했다.
“일부 출연료도 못 받았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3개월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조금씩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크는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내의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아내의 간호 덕에 그는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고 다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성우, 연극배우 뿐 아니라 드라마 배우로도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1984년 ‘각설이 품바 타령’, 1986년 ‘신의아들(MBC)’,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KBS1)’ 등 드라마 배우로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했었다.
▲ 2011년 중국드라마 ‘경마장’에 출연한 주호성의 모습. <사진=나라짱닷컴>
“모진 상황은 아이들 스스로 헤쳐가야, 호되게 가르쳐 배우로 키워”
어려서 아버지를 여윈 주호성은 못 받은 부정을 자식들에게 쏟으며 가정생활에 충실했다. 그는 남매를 배우로 성장시켰고 딸 장나라는 해외로 진출시키기도 했다. 장나라는 어려서부터 배우에 대한 열정이 컸다고 한다.
“자식교육 특히 배우교육만큼은 혹독하게 훈련시켰습니다. 나라는 중학교 시절부터 연기자 활동을 하겠다고 했지만 제가 고등학생부터 하라고 했었죠. 고등학생이 되자 나라는 제게 무릎을 꿇고 ‘이제 고등학생이니 배우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고3일 때 2분30초 동안 웃는 연기를 시켰습니다. 너무 못해서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나라는 서러웠는지 눈물을 펑펑 쏟았죠. 마음이 아팠지만 저는 ‘다시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나라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더니 깔깔 웃으며 연기를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제 딸이 정말 연기에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는 아이란 것을 알았죠”
주 대표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장나라의 열정을 확인했고 프로필 사진을 기획사에 전달했다. 장나라는 기획사에서 출연요청을 받았고 학습지 광고를 찍었다. 반응이 좋자 햄버거 광고도 찍으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광고업계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 주호성·장나라 부녀가 함께한 모습(위, 나라짱닷컴)과 묵상에 잠겨 있는 주호성 대표. 아버지를 일찍 여윈 그는 따뜻한 아버지의 부정을 아이들에게 쏟았다. ⓒ스카이데일리
장나라는 스스로 많은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떨어지기 일쑤였다. 한번은 출연 섭외가 됐는데 엉뚱한 사람이 캐스팅되면서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장나라는 남모르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모진 상황이라도 아이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원이·나라 모두 우는 모습을 봤고 저는 위로와 조언만을 해주었습니다. 더 이상 제가 간섭하지는 않았죠”
장나라는 2000년대 들어 가수와 연기자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주 대표는 장나라의 중국 진출을 위해 ‘나라짱닷컴’을 설립했다.
“제가 아이들을 위해 해 준 것이 있다면 연기 지도와 함께 저의 경험담을 얘기 해 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보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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