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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제국의 꽃’ [226] 황제와 시위대의 만남
황제가 칙어를 내렸다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01 06:30:20
 
 
도대체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뭐니?”
 
해주댁이 아들에게 물었다.
 
군대와 법이 그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서양식 민권을 빙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울의 각국 공사들이 공사관 보호 구실로 군대를 가지고 있는 탓이지요.”
 
원익이 정확한 분석을 내놓았다. 시위대 장교가 된 후로 대한의 형세를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원익의 말대로 공식적인 방법으로 만민공동회에 대응하기 힘들어진 정부는 보부상을 동원했다.
 
만민공동회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황국협회는 보부상들이 주축이었다. 황국협회는 전국 보부상들을 서울로 불러모았다. 보부상들은 손에 목봉을 들고 머리에 삿갓을 쓰고 전국에서 모여들어 농상공부 대문 앞에서 노숙했다. 1121일에서 22일까지 만민공동회는 인화문(경운궁의 남쪽문) 앞에서 상소를 올리고 농성을 계속했다.
 
21일 동틀 무렵에 보부상들은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만민공동회 집결지로 몰려가 몽둥이로 마구 공격했다. 만민공동회는 일단 흩어졌다. 그랬다가 다시 모여 돌멩이를 주워 모아 보부상을 공격했다. 양쪽 모두에서 많은 부상자가 생겨 났다. 만민공동회는 정부 대신들(이기동·조병식·홍종우·민영기 등)의 집을 공격했고 보부상의 사무실인 신의상무소를 파괴했다. 23일에도 만민공동회는 정부 관료들의 집을 다시 때려부수었다. 폭력으로 서울은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광무 황제는 윤치호를 만났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독립협회를 복설하고 보부상을 혁파했으며 조병식 등 8명을 귀양 보냈다. 24일에는 개각을 단행하여 박정양을 의정부 참정, 민영환을 내부대신에 임명하여 만민공동회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그러나 만민공동회는 1126일에도 종로에서 집회를 열었다. 광무 황제는 황색 어가를 타고 인화문에 나아가 대신과 각국 공사들을 모두 불러 좌우로 세웠다. 조선이 세워진 이래로 초유의 일이었다. 황제가 만민공동회를 부르자 200명이 황제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었다. 만민공동회와 보부상이 다 모였다. 황제가 칙어를 내렸다.
 
전후에 내린 조칙에 대해서 그대들은 대부분 따르지 않고 밤새도록 대궐문에서 부르짖었으며 ··· 사람들의 가산을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어찌 500년간 전제국가에 마땅히 있을 일이겠는가? 그대들은 그 죄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라.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는 만큼 중형에 처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짐이 나라를 다스린 이래로 정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점차 소동이 있었으니 만백성의 죄는 나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오늘 크게 깨닫고 짐은 매우 부끄러워한다. ···짐이 오늘 직접 대궐 문에 나와서 어린아이를 품에 안듯이 하고 간곡히 타일렀으니··· 새벽 이전까지의 일에 대해서는 죄가 있건 죄가 없건 간에 경중을 계산하지 않고 일체 용서해 주며 미심쩍게 여긴 것을 환히 풀어 주어 모두 다 같이 새롭게 나아갈 것이다.
!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누구에게 의지하며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누구를 받들겠는가? ···민회와 보부상, 두 백성은 똑같이 짐의 적자이다. 지극한 뜻을 잘 받들어 자애롭고 사이좋게 손을 잡고 함께 돌아가 각기 생업에 안착하라.”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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