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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제국의 꽃’ [234] 근대적 무기의 확보
군수산업의 진흥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3 06:00:11
 
 
 
 
1896
년에서 1903년에 걸쳐 광무 황제는 신속하게 첨단 무력을 육성하였다. 보병부대와 포병부대를 창설하고 증강했으며 근대적 무기도 확보했다. 최초의 시위대 1000명의 무기는 러시아 황제가 무상으로 지원한 베르당 소총과 수만 발의 탄환으로 마련되었고, 이후 총과 총탄 693궤를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사들였다. 광무 황제는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도록 다른 나라에서도 무기를 도입했다.
 
18994월 프랑스제 총 1만 정을 구입했고, 189911월과 19001월에 세창양행(Meyer Company)을 통해 독일제 소총 100·군도 100자루·소총 탄환 1만 발을 구입했으며, 독일제 권총(육혈포) 300정과 권총 탄환 4만 발을 구입했다. 190012월에는 독일로부터 독일제 소총 300정과 탄환 1만 발을 도입했다. 19007월에는 프랑스로부터 소총 1만 정과 탄환 300만 발을 구매하기로 해 반출 승인을 받았고, 1월에는 연발탄 탄창과 탄환을 도입했다. 19012월에도 소총 1만 정과 탄환 100만 발을 구입했고, 5월에는 일제 무라다 총 1만 정도 구입해 각 부대에 분급했다.
 
190012월에 창설된 포병중대에 최신식 대포를 배치하기 위해 1901년에는 영국 비칼 회사에서 야포 12문과 맥심포 6문을 주문하여 19021월에 인도받았다. 일본 외무대신은 주영공사에게 이 주문이 발주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훈령했으나 실패했고, 현물이 서울에 도착하자 주한공사에게 장탄 교부에 제한을 두도록 지시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첨단 무장을 저지하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양총은 정규군에게만 보급된 것이 아니고 해안지대와 국경지역에서 포수들을 모아 설치한 산포대에도 공급되었다. 1895년 이전부터 훈련대와 친위 3개 대대가 보유해 온 일제 무라다 소총과, 시위대가 보유한 러시아제 베르당 소총, 산포대에 보급된 양총까지 하면 대한의 정규·비정규 장병들이 보유한 소총은 5만 정을 훨씬 넘었다. 당시 시위대를 제외한 한국군의 보병 무기는 모슬총(모제르총)으로 통일되었다.
 
18985월에는 소총 제작 기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무기의 자체 제작은 쉽지 않아서, 1900년까지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군복의 자체 제작도 논의되었다. 개화파 무관인 백성기는 대한의 군복 산업까지 고려하면서 군복 자체 제작을 강력히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광무 황제는 원수부에서 조처하게 하겠다는 비답을 내렸다. 마침내 19019월에 정부가 중서 전동의 한 가옥을 매입하여 육군피복제조소를 설치해 군복을 자체 제작했다.
 
무기의 자체 제작도 이루어졌다. 19014월에 프랑스인 무기 제작 전문가와 러시아인 보좌원을 고용했다. 8월에는 삼청동 기계창을 용산으로 이전하고 프랑스인 무기 제작 기사와 공장 50명을 더 채용했다. 다음 해 10월에는 북일영(경희궁 북쪽 사직동 소재) 군물제조소에서 대포(17발총) 2대를 자체 제조하고 제조된 대포를 시험 발사했다. 군복과 무기의 자체 제작·자체 제조의 움직임 속에서 최초로 자본주의 발전과 제품의 표준화를 촉진하는 대표적 산업 부문인 군수산업이 일어나게 되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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