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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이 前CIA 요원 ‘통탄’
“한동훈 ‘北개입 변란’ 5·18 너무 몰라… 국힘 분열만 불렀다”
“헌법전문 수록 발언 너무 성급
광주사태 역사적 몰이해 탓에
인천시의장 불신임 사태 불러”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1-15 00:05:00
▲ 인천범시민연대 외 53개 단체가 7일 오후 인천 남동구 국민의힘 인천시당 건물 앞에서 ‘인천광역시 허식 의장, 윤리위원회 제명 징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인천=남충수 기자
 
헌법에 수록하려면 진상이 낱낱이 드러나 국민적 의혹이 불식돼야 하고, 아직 진상을 조사 중이라면 헌법전문에 수록하겠다는 발언은 섣부르다고 봐야 합니다.” 
 
1980년 당시 ‘5·18은 북한 개입 변란’이라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던 마이클 이(91) 전 CIA 요원(조지 워싱턴대 정치학 박사)은 13일(현지시간) 본지와의 국제통화에서 “정부여당 대표(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한국사에 대한 시대착오적 몰(沒)이해(Anachronistic understanding of Korean history)’ 탓에 총선을 앞두고 국힘 지지자들의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이같이 역설했다. 
 
CIA와 펜타곤 정보국 등 미 정보기관에서 40년간 ‘북한통’으로 근무하고 은퇴한 이 박사는 현재 미국 수도 워싱턴DC와 경계가 맞닿은 메릴랜드주(州)에 거주 중이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허식 인천시의회 의장 사태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섣부른 5·18 헌법전문 수록 발언에서 촉발됐다는 견해를 밝혔다. 총선 여파를 고려하더라도 논란이 거듭되는 사안에 대해 너무 단정적으로 헌법전문 수록 추진 의사를 밝혀, 동료 시의원의 요청으로 본지 5·18특별판을 건넨 허 의장에게 불똥이 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이 광주 5·18을 민주화투쟁으로 정의하고 헌법전문 수록을 적극 추진한다고 공언하는 데 참으로 기막히고 한심하다”며 “광주 5·18 무장폭동은 100%·200%·500% 북한이 개입한 국가전복 변란이었다”고 여당 대표를 직격했다. 
 
▲ 본지와 인터뷰하는 마이클 이 박사.
이어 “광주 5·18 문제를 바로 정립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결코 될 수 없다. 제발 정신 차리고 깨어나야 한다”며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배는 요란스러운 엔진 소리를 애국 충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이 배는 좌파 세력의 고도의 치밀한 최면제에 만취돼 항로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극도의 혼돈이 야기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박사는 한국을 방문했던 지난해 10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이 민중봉기 형식으로 직접 계획하고 지휘한 대남공작에 광주시민의 명예와 순수를 도둑맞은 게 5·18 사태의 본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본지 2023년 10월11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⑱] “5·18은 北이 민중 봉기로 조작한 대남공작” 보도 참조> 
 
구체적으로 1980년 5·18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기화로 북한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이 이듬해 1월 지령을 내렸고 2·3인조로 나뉜 민간 공작대가 육·해상으로 광주에 침투한 뒤 대한민국 국가 전복을 목표로 고정간첩과 합세한 북한의 ‘대남공작’이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CIA 보고서는 한국 외교부와 같은 미 국무부를 통해 백악관에 상신됐다. 국무부에서 기밀해제된 미국 정부 문건에 따르면 5·18은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Military(군대)’가 아니다. ‘Agent’는 간첩(민간 공작조)이라는 뜻”이라고 확인했다. 
 
5·18에 관한 CIA 기밀 문건의 최초 작성자이자 보고 당사자인 그는 “(북한이) 대남공작단을 구성하면서 군인(북한 인민군)이 차출되기도 했지만 조직 자체는 민간 조직으로 꾸려졌고 엄선된 이들은 특수부대원들보다 작전수행 능력이 뛰어나 고도의 훈련을 견뎌 낸 이들”이라며 “김중린이 한국에 있는 잠복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린 시점은 1980년 1월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못 박았다. 
 
이 박사는 “북한이 5·18 시점에 남침하지 않고 대기했다는 (미국 국무부 문건) 문장만 보고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정보분석의 기본이 안 된 처사”라며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미 외교문건을 아전인수 식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 “어이가 없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참고할 만한 실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울진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이 1968년 10월30일부터 11월1일까지 3일에 걸쳐 경북 울진·강원 삼척 해안을 통해 무장공비 120명을 침투시켰지만 주민 신고가 있기까지 우리 군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군은 11월4일에서야 빗발치는 주민 신고를 접수하고 간첩 소탕작전에 나섰다. 1968년 1월 ‘김신조 1.21 사태’도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하는 동안 우리 정부는 모르고 있었다. 
 
군의 경계망이 뻥뚫린 이른바 ‘노크 귀순’ 사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본지는 5·18 진실 찾기 취재 과정에서 5·18 직전 우리 군 정보당국이 북한 공작조의 서해안 침투 첩보를 사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에게 전파했다는 증언을 확보한 바 있다. 
 
이처럼 북한군 개입설은 확인 여부에 따라 5·18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뀌게 할 핵심 규명 과제이지만 그간의 정부 조사에서는 사실상 공정하고 균형잡힌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해 지난해 12월26일 공식 조사활동을 종료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도 다르지 않다. 
 
4년간 막대한 정부예산을 쓰면서도 북한 개입 의혹에 관한 증언자의 진술을 고의로 배척하고 외면했는가 하면 5·18 북한 개입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진술하는 탈북인 증언자에 대한 협박 의혹도 제기돼, 북한군 개입설 조사를 고의로 축소·방치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본지 2023년 9월28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⑯] 5·18조사위 ‘北개입설’ 은폐 급급 보도 참조>
 
법 규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침투 의혹’ 대신 ‘침투 조작’이라는 표현이 법조문에 사용돼 결론을 미리 정하고 예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1월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1장 3조의 9는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을 진상규명 조사 범위에 포함했다. 
 
또한 5·18을 증언하는 탈북인이 잇따르는데도 정작 정보기관 요원이 탈북인에게 묻는 ‘신문요항(訊問要項)’ 중에 5·18에 관한 질문 항목이 제외된 사실이 본지 취재에서 드러났다. 이에 더해 본지는 정부 조사를 이끄는 송선태 위원장이 5·18 발생 일주일 전 ‘예비군 무기고 접수’와 ‘도청 점령’을 사전 모의한 이른바 ‘자유노트’를 직접 기록한 당사자이자 5·18 유공자인 사실을 확인·보도했다. 
 
‘자유노트’는 5·18이 ‘비폭력 민주화운동’의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대(對)정부 무장공격을 계획했음을 입증하는 위중한 문건으로 일각에선 받아들인다. 방송국과 무기고·공공기관을 죽창을 동원해 접수하고 탈취한 무기로 도청을 점령하며 다이너마이트(TNT)를 사용한다는 끔찍한 내용이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가 5·18 조사를 주도해 온 것이다.<본지 2023년 8월2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⑧] 5·18진상조사위원장은 ‘무장봉기’ 모의 주동자 보도 참조> 
 
이에 대해 복수의 5·18 연구가는 “광주폭동이 우연히 발생한 항쟁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되고 준비된 무장반란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봤고, “일주일 전에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는데 ‘도청을 점령한다’는 모의를 했다면 5·18에 물리력을 동원하려 한 주범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조사 결과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5·18 올바로 정립 못하면 한국은 정상 국가 될 수 없어”
 
“100%·200%·500% 北개입한 변란인데 헌법전문 수록한다니…
現 한국號는 좌파의 치밀한 최면전략에 취해 제 정신 못 차려” 
  
이에 따라 계엄군의 만행으로 오도됐던 사건들의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규명함으로써 유공자의 실체를 가려 국민의 본보기가 된다면 추서하고, 외부세력이 개입한 것이라면 그 책임을 묻는 것이 헌법전문 수록의 선결과제라고 보는 여론이 팽배하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섣부른 5·18 헌법 수록 발언과 “극단적인 혐오 언행은 당에 자리 없다”는 잇단 발언으로 허 의장이 유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국힘 인천시당 소속 시의원들은 13일 의원총회에서 본지의 ‘5·18 특별판’을 공유한 허 의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을 23일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즉시 인천의 국힘 당원과 시민단체·예비역군·안보단체 등은 한 위원장을 탓하고 나섰다. 
 
이들은 “자유민주국가에서 동료에게 신문을 준 게 죄가 되나”라며 “조사 중인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국힘 시의원들이 의장 불신임을 상정키로 결정한 배경은 허 의장에 대한 한 위원장의 신속한 징계 지시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힘 당원과 시민단체 등은 분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가 우리나라 3대 도시인 데다 시민이 선출한 인천시 의전서열 2위의 시의회 의장을 중앙당 대표가 사실상 출당시킨 것이라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그를 선출한 인천시민의 민의가 짓밟혔다는 것이다. 
 
인천범시민연대 등은 허 의장 부당처우 사태와 관련해 7일 인천시의회 앞에서 “의장직을 사퇴 말라”고 지지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55조(의장불신임 의결)는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경우로 국한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허 의장은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리 검토 결과를 본지에 전했다. 그는 “5·18을 폄하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5·18왜곡처벌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은 별론으로 하고, 허 의장은 ‘왜곡’ 또는 ‘폄하’하는 발언을 한 사실조차 없다”며 “법률 위반이라는 상대의 주장 자체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기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세)는 한 위원장의 5·18 헌법 발언에 관해 “형사법 저촉은 없지만 매우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으로 보인다”고 본지에 밝혔다.
 
한 국힘 당원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박탈시키려는 작금의 상황이 헌법을 파괴하려는 행위”라며 “불신임 요건 자체가 불비한 상황에서 이를 여론화하는 것조차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김형동 비서실장의 배우자가 중국 국적이고 장인은 중국 공산당 간부 출신이라는 의혹 제기와 관련해 ‘다양성’을 언급한 사실도 문제 삼는다. 허 의장의 징계 지시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당시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은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모일 때 오히려 강해지고 국민에게 설득력 있는 정당이 된다”고 말했다. 
 
국힘 당원과 인천시민단체·예비역군·안보단체 회원 등은 한 위원장이 인천시당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16일 인천 계양구 카리스호텔에서 ‘한 위원장의 5·18 헌법 수록 발언’ 취소를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 인천시민은 “인천 국힘 시의원들의 행위는 결국 한위원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니 결자해지가 필요하고 촉구했다. 
 
▲ ❶임신부 최미애 씨는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50분을 전후해 전남대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300여 m 떨어진 중흥동 주택가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 시각은 계엄군(3공수)이 시민군에 가로막혀 전남대 캠퍼스 안에 갇힌 채로 수세에 몰릴 때였다. 계엄군이 명령을 어기고 주택가까지 오기 위해선 시민군이 점령한 다리와 정문 앞 사거리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최씨의 피살은 군이 아닌 무장괴한의 소행이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당시 임신부 최씨의 사망은 군중의 대대적인 분노를 촉발했지만 아직까지 누구의 소행인지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❷ 최씨의 검시서. 최씨는 이마 정 가운데에 총알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❸ 생전 최씨의 모습.
 
한편 북한군 개입설은 5·18민주화운동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폭발력을 지닌 사안이어서 정부의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5·18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 중 하나인 ‘집단발포(포사격이 아니므로 정확한 표현은 집단사격)’ 주장의 근거가 된 장갑차 위 조사천 씨 피격 사망과 임신 7개월차 최미애 씨 사망 당시 계엄군은 시위대의 포위에 둘러싸여 이들 시민의 사망 현장에 없었다. 조씨와 최씨의 사망은 군중의 대대적인 분노를 촉발해 대정부 공격으로 이어진 단초를 제공했지만 정작 계엄군은 피격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본지 취재에서 밝혀졌다. 
 
또한 이들을 숨지게 한 총기는 칼빈총인 것으로 검시결과 확인됐다. 당시 계엄군은 군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M16을 들고 있었다. 
 
의·과학적으로 본다면 우리 군복을 입고 계엄군 행세를 한 북한 무장공비와 고정간첩이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쏜 뒤 계엄군의 잘못으로 덮어씌웠을 가능성에 주안점을 두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공정한 조사에서 북한의 모략전술이 드러나면 정부 폭력에 항거한다는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서 명분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기존 5·18유공자는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사태 유발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혀 온 계엄군의 만행이 북한군 소행으로 책임이 전환되면 43년간 거듭돼 온 남남갈등과 반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실추된 군의 위상이 회복되는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호남과 선량한 광주시민에 대해 그간 사회에 만연해 온 차별적 풍토가 일순간 개선될 가능성도 크다. 계엄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광주시민에서, 북한의 계략과 교묘한 선전선동에 휘말려 차별 피해를 당해 온 호남 도민 전체로 피해 회복의 객체가 확대되는 관점에선 국가적 실익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인지, 북한군 또는 인민군 소속이 아닌 북한 민간 공작조가 개입한 폭동·반란인지 성격을 재정립할 중요한 책무를 조사위가 고의로 외면한 것은 간과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5·18이 특정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정파·정략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전락한 결과, 역설적으로 다수의 호남 도민을 현실 피해자로 양산한다는 근거에서다. 
 
▲ 1980년 5월21일(추정) 시민들이 모여 있는 금남로 인근 건물 옥상에 머리띠를 한 민간인이 장총으로 추정되는 집기를 오른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본지 취재에서 포착됐다. 시민군은 21일 집단발포(포 사격이 아니므로 정확한 표현은 집단사격)’ 이후 총기류를 탈취·획득했다고 밝히고 있어 그 주장에 따르면 사진 촬영 시점이 최소 21일 이전일 가능성은 없다.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접수한 21일 이후에는 위와 같은 금남로 시위가 열릴 이유가 없다. 위 왼쪽 큰 사진의 붉은색 사각형 건물은 당시 가톨릭센터와 전일빌딩 사이에 위치한 동구청이다. 이 건물 옥상을 확대한 오른쪽 사진 속 노란색 원안에 총기류로 추정되는 집기를 든 사람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있다. 이 사람은 민간인으로 보인다. 옆 사람이 흰바지를 입고 있다. 시민군과 무장 계엄군이 함께 서 있을 순 없다. 카메라에서 가까운 쪽 사람도 왼손에 총기류를 집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숨진 시민 희생자들의 시신 검시 결과, 건물 위에서 아래로 하향사격한 총흔이 대거 발견됐다. 이에 따라 금남로 일대 건물들의 옥상에서 계엄군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적개심을 키우려고 누군가 고의로 시민에게 총을 쏘고 계엄군에게 덮어씌우는 ‘이간질 공작(모략전)’을 펼쳤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대해 미군 정보요원으로 근무했다는 김용장 씨 등은 2019년 기자회견에서 신군부가 주도했다고 허위 증언을 했다가 거짓으로 들통났으며 5·18조사위는 건물 옥상에서 하향사격한 계엄군을 찾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에도 사태를 촉발한 주범을 계엄군으로 확정적으로 예단하는 작품들이 많다. 하성흡 작가의 ‘1980년 5월 21일 발포(2017년 작)’에는 전일빌딩 옥상에서 아래로 총을 겨누는 이들이 계엄군(추정)을 연상케하 듯 그려져 있다(아래 파란색 사진 속 노란 원안). 그러나 아래 왼쪽 큰 사진 속 B건물(동구청)은 C건물(전일빌딩)에서 전방 장애물 없이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만일 전일빌딩 옥상에 계엄군이 있었다면 B건물(동구청) 옥상에 있는 민간인들은 계엄군의 조준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가장 높은 C건물(전일빌딩)에선 A건물(가톨릭센터) 옥상도 시야에 들어온다. 위 사진에서 보듯 B건물 옥상에 머리띠를 두른 민간인이 오른손에 쥔 것이 총기류가 맞는다면 전일빌딩 옥상에는 같은 시각 계엄군이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광주를 취재했던 일본인 카지마 고이치(風間公一) 프리랜서 기자도 “건물에서 사진촬영하면 불을 지르겠다는 통고가 있었다”며 계엄군이 아닌 이들이 이미 점령한 건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증언했고 실제 국내 신문사 사진기자들도 쫓겨났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군 임시직 통역요원이었던 김씨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등 신군부 시나리오라고 허위 증언했고 전국의 신문방송들이 대대적으로 앞다퉈 보도했다. 임시직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김용장은 현재 남태평양 피지에 칩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1] 5월21일 금남로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한 시민이 장갑차 위에 올라와 있다.(붉은색 원안) 이 시민이 조사천 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씨는 사진 속 시민과 같은 모습으로 장갑차 위에 서 있다가 옥상에서 발사한 총알에 맞고 숨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시각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대에 포위된 계엄군은 금남로 건물 옥상에 진입할 수 없었다. [2] 우측 가로수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카톨릭센터 빌딩이다. 이 건물 옥상에서 무장괴한이 인도 옆 3차로를 지나가는 장갑차에 탄 조사천 씨를 저격한 것으로 분석됐다. 건물에서 장갑차까지의 거리가 약 7m, 건물의 높이가 약 21m 이므로 발사각은 약 72도로 추정된다. 이 각도는 실제 조사천 씨의 피격 탄도각과 비슷하다. [3] 조사천 씨의 피격부위 모식도. 구글거리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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