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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비폭력·진정성이야말로 설득의 힘이다
▲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언제였을까.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노무현정부 때였는지 이명박정부 때였는지 북한 대표단이 우리 국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기자도 취재를 위해 현장을 찾았었다.
 
당연히 현장은 취재진을 비롯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국회 인근에서의 집회를 불허했다. 그런데 돌연 한 무리의 건장한 중년 남성들이 몰려왔다. 누구인지 알아보니 다름 아닌 북파공작원(HID) 출신들이었다.
 
HID. 북한 땅을 안방처럼 드나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작업’한다는 그 HID. ‘수 틀리면’ 가스통 밸브 열고 불 붙여 뿜어 낸다는 카더라 통신의 그 HID. “김정일을 처단하자” 외치며 몰려온 이들로 당연히 뭔가 큰 사달이 벌어질 줄 기자는 짐작했었다. 북한 정권에 의해 형제 같은 동료를 잃었을 이들의 분노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HID란 직업은 험하디 험하다. 기자가 과거 알고 지냈던 국군 정보사령부 출신 모 인사로부터 들어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그의 임무는 북한 사람처럼 위장하고 평양 등 대도시로 섞여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양 시내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혹자의 말마따나 “서울 시내는 잘 몰라도 평양 시내는 훤히 꿰뚫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단독으로 침투해 단독으로 활동하고 단독으로 빠져 나왔다고 했다. 만에 하나 신분이 발각되면 어찌 될 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아무튼 HID들이 온다는 소식에 경찰엔 비상이 걸렸다. 현장에 배치됐던 의무경찰 등이 바람 같이 달려가 이들을 에워쌌고 양측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런데 웬걸. 노기충천해 기세등등하게 몰려오던 남성들은 아들뻘 의경들과 마주치자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때 인솔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거듭 외쳤다. “아이들 건드리지 마!” 사색이 돼 오들오들 떠는 의경들을 보자 자식들이 생각났던 것일까. 결국 남성들은 동료들 복수를 포기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로서 국법이 정한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자진 철수에 한몫했으리라.
 
HID 사건이 있었던 시기과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에 의하면 중국 등 해외 체류 10년 이상 된 탈북인은 사실상 한국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즉 불법체류자 비슷한 신세가 돼 최악의 경우 추방까지 당할 수 있었다.
 
이 법으로 졸지에 무국적자가 될 위기에 처한 탈북여성 A씨는 외교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정말 폭포수처럼 펑펑 눈물을 쏟았다. 여러 언론사 취재진 틈바구니에 끼어 카메라를 들이밀고서 그 모습을 촬영하던 기자가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을 정도의 대성통곡이었다. 중국에서 여자로서 겪지 않았어야 할 온갖 고초를 겪다가 천신만고 끝에 자유 대한에 왔으나 날벼락을 맞게 된 A씨로선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사실상의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었다.
 
다른 많은 탈북인도 시위에 동참해 목소리를 높여 법안 개정을 촉구하며 A씨를 얼싸안았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외교부 정문을 뚫고 들어가려 시도하거나 외교부 직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지 않았다. 시위는 비폭력적으로 진행됐다.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2009년 정부는 시행령 개정안을 전격 의결했다. 개정안은 구금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10년 이상 해외에 머물며 정상적 생활을 하지 못한 탈북인도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후일 기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A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인 시위 과정에서 두 번 놀랐다고 한다. 첫째, 국민이 정부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는 점. 둘째,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북한 사회와 달리 평화적으로 타협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안건이 의결됐다. 그러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던 시위대 일부가 청사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 등과 충돌했다고 한다. 비단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유독 반(反)보수정부 시위대는 물리력 행사 시도가 빈번하다. 반면 보수진영 집회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물리력 행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청사 진입 시도가 유족들의 소행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설령 소수 유족이 가담했다 해도 그들의 본심은 아니리라 믿는다. 폭력은 국민으로 하여금 시위대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해 부정적 효과만 야기할 뿐이다. 비폭력·진정성이야말로 A씨의  사례처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폭력은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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