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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필명 ‘볼테르’로 거듭난 아루에와 쉴리의 성
볼테르의 유배지, 루아르의 강변에 세워진 중세 실루엣의 성
잔 다르크·루이 14세·마자랭 등 역사적 인물이 다녀간 곳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0 06:31:00
프랑스 혁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계몽주의 작가는 볼테르. 그의 철학적·정치적 사상은 이미 약화된 앙시앙레짐(옛 제도·프랑스혁명 전의 절대군주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유럽과 러시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 비평가 생트 뵈브는 볼테르를 이렇게 묘사했다. “생명의 숨결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한, 그는 내가 선한 악마라고 부르는 분노와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성의 사도였던 볼테르는 싸우다 죽었다.”
 
사상의 거장 볼테르,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가 어떤 청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그의 청년기를 추적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볼테르의 진짜 이름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아루에는 169411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왕실 공증인이자 향신료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귀족들과 교류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게 했다. 둘째 아들 아루에는 예수회가 만든 콜레주 루이--그랑 학교에 들어가 인본주의와 세속적 자유주의에 심취했다.
 
1711년 열일곱 살이 된 아루에는 훌륭한 교육을 받던 중 학교를 중퇴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물었다. 아루에는 “저는 문인이 되는 것 외에는 원치 않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황한 아버지는 아들아, 문인은 사회에 쓸모없고 굶어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다. () 너는 법을 공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아루에는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곧 따분한 수업에 지치고 말았다.
 
▲ 불경죄로 유배된 아루에가 머물렀던 쉴리 성.
 
아루에는 사교계의 친구 필립 드 방돔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집을 빠져나가곤 했다. 그리고 시인들과 고위 귀족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책을 많이 읽었거나 회의적인 미식가였다. 아루에는 그들과 어울리며 고전 문화·다소 순수한 취향·우아하고 정확한 글쓰기에 대한 관심·연극에 대한 사랑, 심지어는 그의 신론의 기초가 될 모든 것을 익혔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저속한 아루에가 아니라 자유주의 영주의 사생아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를 심히 걱정한 그의 아버지는 무례한 귀족들로부터 아들을 떼어 놓기 위해 북부도시 캉으로 보낸 후 다시 네덜란드 헤이그로 보냈다. 그러나 아루에는 파리로 돌아오기 위해 공작을 꾸몄다. 한 소녀를 유혹한 것이다. 대사관 비서직에서 해고당하는 데 성공한 그는 1713년 룰루랄라 파리로 돌아왔다. 낙담한 아버지는 파리 거리를 배회하도록 내버려 둔 덕분에 그는 파리에서 너무나도 유쾌하고 신나는 생활을 했다.
 
1715 섭정 초기 아루에는 메인 공작부인의 집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자주 만났다. 경솔한 섭정이었던 필립 도를레앙(훗날의 루이 필립 왕)과 그의 딸 베리 공작부인은 풍자를 좋아하는 아루에에게 매우 좋은 먹잇감이었다. 1716 그는 막 사생아를 낳은 베리 공작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야릇한 시를 썼다.
 
새로운 롯은 당신의 남편/ 모압족의 어머니/ 머지않아 당신의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암몬의 백성이여!”
 
▲ 바스티유에 투옥된 아루에가 자신의 불행을 비웃으며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카일뤼스 작품. 필자 제공
 
창세기에 등장하는 롯은 장녀와 함께 모압과 벤아미라는 두 아들을 낳아 각각 모압과 암몬 민족의 창시자가 된 인물이다. 이 내용에 베리 부인을 빗대 풍자한 그가 무사할 리 만무했다. 171654일 아루에는 추방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불명예를 덜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그는 앙리 4세의 장관 쉴리 공작의 성으로 유배를 갔다.
 
오를레앙 남쪽 45분 거리에 있는 이 성은 잔 다르크·루이 14·마자랭 등 많은 유명인이 다녀갔다. 해자로 둘러싸인 인상적인 중세 실루엣의 이 성에서 아루에는 거친 모험을 즐겼다. 그는 어느 날 쉴리 공작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루아르의 행복한 강변에서 운율을 맞추고, 사냥을 하고, 논쟁을 하며, 봄가을에 술보다는 철학에 몰두하며 보냈습니다. 제가 쉴리에 남을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그는 내가 망명 중이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을이 되면 재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더 좋은 것은 상냥한 사람들이 대부분 훌륭한 사냥꾼이라는 거예요. 이곳에서 즐거운 날을 보내며 자고새를 잡는 유쾌한 시골에서 몇 달을 보내라고 도를레앙이 명령해 준 셈이죠라며 오히려 자신의 유배 생활을 고마워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사면령이 내려져 아루에는 쉴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귀족들과 이리저리 계속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하지만 이 풍요로운 보헤미안 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다. 방탕한 새 친구 보르가르를 만났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저녁 파티에서 그는 보르가르에게 도를레앙과 그의 딸에 대해 쓴 새 작품을 자랑했다. 하지만 보르가르는 섭정 도를레앙의 스파이였다. 이를 까맣게 몰랐던 아루에는 1717516 스물 세 살의 나이로 투옥됐다.
 
바스티유에 갇혀 지낸 11개월간 그는 감옥 생활을 즐겼다. 눈 깜짝할 사이 세월이  흘러 출소하자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굳게 결심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결코 지혜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확실히 더 큰 야망을 갖게 된 게 분명했다. 아루에는 서사시와 비극이라는 고귀한 문학 장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덜 평범하게 들리는 이름, 자신이 만든 귀족적이고 자유분방한 전설에 어울리는 이름, 후손을 위해 준비된 필명, 볼테르로 이름을 바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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