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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97] 아내의 취향, 남편의 취향
이혼을 방지하는 부부생활 예절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7 06:30:12
 
 
수년, 남자와 여자가 부부란 이름으로 한집에서 살다 보면 영원한 사랑이란 자연을 배반하는 것이며 열정의 소멸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소한 부부싸움을 할 때도 상대의 급소를 교묘하게 비켜 갈 수 있도록 칼을 휘둘러야 하는 것은 물론, 배우자의 마음과 육체를 낯선 이에게 빼앗겼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가슴을 서늘하게 스쳐 지나갈 때조차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확인하지 않아야 한다.
 
외도한 사람은 들키지 말아야 하며 발각되더라도 증거를 깔끔히 인멸하고 끝까지 부정하는 예절을 지키는 것이 부부의 참된 도(). 결혼은 안전하고 편리한 삶의 수송 수단이다. 연애 시절부터 오랜 시간 공들여 놓은 안정된 선로를, 성적 호감을 상승시키는 호르몬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고 해서 탈선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운은 주방으로 돌아와 장 본 것들을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하겠다고 월차까지 내고 사 온 것들은 동우가 좋아하는 고기와 생선, 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필요한 부재료들이었다. 그 안에 하운을 위한 메뉴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거나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조차 하운은 남편의 취향에 맞췄다. 남편이 맛있게 먹는 음식, 남편이 예쁘다고 하는 스타일의 옷과 구두, 남편이 필요로 하는 잡화, 남편이 사다 놓으라고 하는 건전지. 직장에서는 똑 부러지게 일한다는 평판을 듣는 그녀였지만, 결혼생활에서만큼 하운은 계획하지 않았고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 무엇도 결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선택하면 다투고 설명해야 했다. 동우에겐 결코 설득되지 않는 완고한 고집이 있었고 하운은 그것이 동우의 열등감이라고 결론지었다. 동우는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라고 믿었고, 하운은 결혼 삼 개월 만에 항복했다.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소소한 일이든 인생의 중대사든 남편이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이 결혼의 장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녀가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책임 또한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동우가 맛있게 먹을 때, 동우가 예쁘다고 말할 때, 더는 다툴 일이 없었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믿었다. 그것이 당연히 지켜야 할 자신의 개성과 권리를 포기해 버린 것이었음을 하운은 애써 모른 척 부정하고 살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그녀의 선택 능력은 오래전에 퇴화했다. 그러나 이 순간, 하운은 선택해야 했다. 두 개 중 하나를 고르는 비교적 쉬운 문제처럼 보였다. 동우가 휘두른 칼에 심장을 베였다고 밝힐 것인가 감출 것인가?
 
하운은 동우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 나 취조해? 내가 범죄자야? 뒷조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 스케줄 바꿔 추락한 비행기 안 탔으면 다행인 거잖아. 하늘이 도왔다고 가슴 쓸어내리고 눈물이라도 쏟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죽기라도 바란 사람처럼 왜 이래? 네 인생에서 나 지우고 새로운 계획이라도 세워 놨던 거야?’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면 동우는 재빨리 그녀에게 죄책감을 씌우기로 결정할 것이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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