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10-05 09:31
뉴스 > 문학
꽃으로 쓰는 역사 [19] 모래땅에서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해당화
해어화·해당화라 불리던 양귀비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08 10:30:23
 
▲ 해당화는 당나라 때부터 양귀비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졌다. 윤상구 사진작가
 
해당화가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자생했다는 기록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중반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중 황해도 장산곶에 대한 설명에 “3면이 바다에 임하였으며 가는 모래가 바람을 따라 무더기를 이루고, 혹은 흩어지며 어린 소나무와 해당화가 붉고 푸른 것이 서로 비친다”고 해당화가 언급되어 있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 설총의 ‘화왕계’에 등장하는 ‘장미’가 장미과 식물인 해당화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려 후기 문신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도 ‘해당화’라는 한시가 실려 있다. “깊은 잠에 축 늘어진 해당화/ 술 취한 양귀비와 비슷하구나/ 꾀꼬리 소리에 꿈 깨어/ 다시 미소 지으며 교태를 부리는구나”라는 내용이다.
 
양귀비는 ‘말을 알아듣는 꽃’
 
해당화는 당나라 때부터 양귀비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졌다. 당나라 황제 현종이 어느 날 함께 산책하려고 양귀비를 호출했다. 양귀비는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어 발그스레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하지만 현종의 눈에는 그 모습도 예뻐 보였다. 현종이 “왜 아직도 잠이 덜 깼느냐”라고 물으니 양귀비는 “해당화의 잠이 아직 덜 깼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현종은 양귀비를 해당화라 불렀다고 한다.
 
그림이나 조각상에 풍만하고 농염한 여인으로 표현되는 양귀비는 피부가 백옥같이 희고 노래와 춤 그리고 비파 등 악기 연주에 두루 능했다고 한다. 또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전족으로 10cm도 채 안 되는,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발도 그녀의 매력 포인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양귀비의 매력 중 핵심은 지적 대화가 가능했다는 점인 것 같다. 이는 현종이 양귀비를 ‘말을 알아듣는 꽃’인 ‘해어화’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온천욕을 즐겼던 양귀비를 위해 현종은 시안 화칭츠에 전용 온천탕을 만들어줬고 겨울에는 자신도 이곳에 머물며 정사를 돌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화칭츠에는 해당화 모양의 양귀비 전용 욕조가 보존되어 있다.
 
번영과 영화를 누리던 현종 시대
 
▲ 척박한 땅에서 가시 돋친 몸으로 살아야 하는 해당화의 운명은 참 기구해 보인다. 윤상구 사진작가
 
현종은 양귀비에 홀려 정신 못 차린 황제로 주로 기억되지만 그가 다스리던 때 당나라는 최대의 번영과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현종은 705년 측천무후가 죽은 후 복잡한 권력 승계 과정을 거쳐 황제가 되었다. 재위 기간 그는 지나치게 팽창하고 부패의 온상이던 관료 조직을 대폭 개혁하여 황제의 권한과 국가 재정을 회복시켰다.
 
호구 조사를 실시하여 세수(稅收) 증대를 꾀했고 화폐 주조 시스템도 정비했다. 황실의 수입도 증가하여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도 북쪽 변경에 상비군을 설치할 수 있었다. 강력해진 군대로 티베트·돌궐·거란 등 외부 세력에 대한 원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나라 안팎으로 안정을 이뤄냈다.
 
그런데 나라가 안정되고 번영을 누리면서 현종은 나랏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 문제는 현종의 재위 동안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양귀비를 알기 전에는 무혜비라는 후궁이 현종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737년 무혜비가 세상을 떠나자 우울해진 현종을 달래기 위해 환관과 대신들은 현종의 새 애인을 찾아 나섰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아낸 여인이 수왕비 양옥환이었다. 수왕은 현종이 사랑하던 후궁 무혜비의 친아들이었으니 양옥환은 현종의 며느리였다. 그러나 현종은 33세나 어린 양옥환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결국 양옥환은 시아버지 현종의 귀비가 되었고 그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여인이 되었다.
 
안사의 난 때 희생된 양귀비
 
권력자의 총애가 한 사람에게만 머물면 그 주변에는 부패가 만연하게 마련이다. 양귀비의 친척 오빠 양국충이 재상이 되면서 그 친척들이 고위 관리로 대거 등용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후궁에 빼어난 미녀 3천이 있지만/ 3천의 총애가 한 사람에 머무르고 (…) 자매와 형제 모두가 봉토를 갖게 되니/ 아리따운 광채가 가문에 나는구나/ 비로소 천하의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겼네”라고 읊었다.
 
하지만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755년 일어난 안사의 난 때 반란군은 궁지에 몰린 현종에게 양귀비 처단을 요구했고 결국 양귀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이때 현종은 장안(시안)을 탈출하여 파촉으로 피란을 떠났다. 때는 하필 장마철이었고 파촉의 잔도를 건너갈 때 세찬 비가 열흘이나 이어졌다. 현종이 이때 구슬픈 빗방울 소리를 듣고 죽은 양귀비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동국이상국집’에 전한다.
 
술에 취했든 비틀거리든 현종의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던 ‘해당화’는 그토록 허망하게 지고 말았다. 바닷가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땅에서 피어나는 해당화. 꽃은 아름답지만 척박한 땅에서 가시 돋친 몸으로 살아야 하는 해당화의 운명은 참 기구해 보인다.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린 것 같지만 권력의 소용돌이 가운데 이리저리 휩쓸리다 맥없이 스러져간 양귀비의 인생도 해당화 못지않게 팍팍하지 않았을까?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3
좋아요
3
감동이에요
3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56,638 ▶
어제 150,697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