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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사 아드님은 같이 안 오셨나 봐요?”
아주머니가 잘 안다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달봉이 녀석’ 하고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오는 걸까. 시뻘겋게 달궈진 인두가 심장을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질투로 불타오른 가슴은 다시 쓰리고 저렸다. 그때 크레파스를 내려놓은 아버지가 불쑥 아주머니 앞에 그림을 내밀었다. 아주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며 아버지의 얼굴이 기대에 부풀었다.
“앞에 있잖아요. 할아버지.”
자주 겪은 일이라는 듯 아주머니가 그림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빤히 나를 돌아보던 아버지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지만, 그뿐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잘생긴 아들을 둘이나 두셨네요. 아드님 보니까 좋으시죠?”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하며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그림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나를 다시 가만히 노려보았다.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고는 그림을 빼앗길 세라 싸늘하게 고개를 돌렸다.
“얘 봤어?”
느릿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아버지가 복도를 지나가는 다른 노인에게 물었다.
“몰라, 몰라.”
노인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지나갔다. 아버지의 손에서 미끄러진 그림이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그림을 집어 들어 아버지에게 건넸다. 먼지를 털어 내고 아기를 품에 안듯 아버지는 그림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사전에 예약하지 않아서 안 된다고 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는 각서를 쓰고 원장의 허락을 받아 아버지를 모시고 요양병원을 나섰다. 달봉이 일정한 금액을 후원하고 있는 데다 교회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방문 봉사를 하며 쌓아 놓은 신뢰 덕분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오면 편의를 봐 달라는 달봉의 부탁도 유효했다.
택시를 불러 이른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가는 동안 날씨가 추운데도 아버지는 창을 열어 놓고 코를 내밀어 바깥 공기를 마셨다. 손을 내밀어 바람을 만졌다. 숱이 적은 아버지의 은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주름진 얼굴로 아버지가 뒤늦은 저녁놀처럼 웃었다.
“많이 드세요.”
잘 익은 고기를 가위로 잘라 숟가락에 얹어 드리며 내가 말했다.
“선생님도 드세요.”
먹을 것을 보자 경계심이 풀어진 아버지는 식탁 위에 그림을 내려놓고 밥을 먹었다.
“그 소년이 날 집에 데려다주고 손을 흔들고 갔어요.”
아버지는 어떤 소년의 이야기를 했다. 나일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달봉이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친구였을지도 몰랐다. 눈앞에 앉아 있는 내가 소년인 듯, 아버지는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돌림노래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소년이 다시는 오지 않았지요?”
내가 다음 구절을 이어 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아이가 내 얘길 하던가요?”
아버지의 눈이 촉촉해졌다.
“왜 오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보고 싶은데.”
그러나 이내 잊었다. 내가 다시 숟가락 위에 고기 한 점을 놓아 드리면 눈이 반짝 빛났다. 망각의 저편에 있는 소년도 잊고, 아들도 잊고, 밥과 고기에 몰입했다. 기억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식욕만 남은 것 같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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