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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가는 대로 쓰다’가 수필(隨筆)의 축자적 정의다. 수필은 일상적 체험·느낌을 자유롭게 기술한 경수필, 묵직한 사회적 주제를 다루거나 철학적 사색을 녹여 낸 중수필 형태로 문학 5대 장르에 포함된다. 질펀한·끝없을 漫이 들어간 ‘만필’은 한층 더 제약 없음을 표방한 글쓰기이며, 이런 태도로 표현된 그림 메시지가 일간지 만평인 셈이다.
‘만필’이 한 단어로 출현한 것은 18세기 일본에서다. 1925년에는 루쉰의 글 ‘등하만필’(燈下漫筆)에 쓰이면서 중국어가 됐다. 일본 유학 체험자들의 귀국 후 문필 활동을 통해 일제 한자어들이 자연스레 대륙·대만·한반도에 자리잡았다. ‘등하만필’ 류의 글을 루쉰 스스로 ‘잡감’(雜感)이라 불렀는데, 이는 훗날 중국에서 ‘문학성을 띤 시사·철학 평론’을 뜻하게 됐다.
15세기 일본엔 이미 ‘~隨筆’이란 제목을 단 문집이 많고 18세기 전반 조선 승려의 시문집 ‘백우수필’(百愚隨筆)도 보이지만 현대적 의미의 수필과는 거리가 있다. 역시 ‘개인의 각성’이 시대정신으로 꽃피어야 수필도 수필다워지나 보다. 한가지, 일본·한국에서 수필과 에세이가 동의어였다는 게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 에세이는 ‘학습활동의 마무리 과제물 내지 소논문’으로 쓰이기까지 수필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21세기 들어서야 서구 본고장의 에세이라는 단어와 그 쓰임이 비슷해진 것이다.
이는 몽테뉴(1533~1592)의 자기탐구서가 1936년 일본에서 ‘수상록’(隨想錄)이라고 번역돼 전해지면서 빚어진 현상 같다. ‘수상록’의 원어 제목이 불어 동사 ‘시도하다’(essayer)에서 온 ‘Essai’인데, 심오한 주제를 일상생활 속 소재와 자전적 에피소드로 풀어낸 내용을 담은 책이다. ‘자신에 대한 탐구 시도’이니 진지한 도전이지만, 몽테뉴 특유의 해학적 문체와 전개 방식의 소탈함이 에세이를 가벼운 글로 여기게 만든 듯하다. 이 책은 후세 서구의 주요 문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현대 산문의 출발로 평가된다. 21세기에도 인기다.
수필·만필·에세이를 전부 아우를 만한 이름이 ‘산문’이다. 이는 10세기 경 중국에서 등장한 단어로, 압운(rhyme)·리듬을 신경 안 쓴 글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고대 중국에서 글이란 기본적으로 운문 내지 운문적이었기에 산문이라 하면 형식 파기를 선언한 글쓰기나 다름없다. ‘산문의 산’과 ‘산만하다의 산’이 똑같은 한자지만 산만해선 안 될 게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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