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김구 환상’ 넘어야 대한민국 건국史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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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21 00:02:40

앞으로 2024년 8월 하면, ‘두 조각 난 광복절 기념식’과 두툼한 학술서 ‘테러리스트 김구’(미래사)의 출간 및 파란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저자 정안기 박사가 반론을 적극 반기고 있으나 누구든 반드시 책을 꼼꼼히 읽은 다음 나서야 할 것이다. “시대의 금기를 건드린 문제작” “‘테러리스트’와 ‘국부’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를 우리 모두 정면으로 감당해야만 한다.

600여 쪽의 ‘테러리스트 김구’는 방대한 주석·참고 문헌이 딸린 본격 연구서이다. 책 표지의 영문 부제가 말하듯 ‘김구의 테러리스트 활동들’을 내용으로 한다. 저자는 “오로지 학자적 양심만을 길라잡이 삼아 사료들이 속삭이는 내러티브와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김구의 테러·테러리즘을 정조준했다”고 고백한다. 독자들 역시 “잔혹한 진실과 마주하는 놀라움·두려움·착잡함으로 밤잠을 설쳐야” 하며 “김구 신화라는 거짓말의 바벨탑을 쌓아 올린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충격적 위선과 만행에 치를 떨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엔 ‘이승만의 나라’와 ‘김일성의 나라’로 출발한 두 정체(政體)가 존재한다. 각각의 헌법에 담긴 세계관·가치관이 제도와 정책을 통해 우리 삶을 지배한다. 김구를 높임으로써 이승만의 대한민국을 비하해 온 사람들이 많다. 이게 어떻게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일 수 있나. 대한민국의 정통성 문제가 민생과 무관한 과거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어른이 될 때 사춘기를 거치는 것처럼 국가공동체의 성숙에도 ‘전근대적 종족주의’ 졸업이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근대는 여전히 미완인가 보다. 1945년 8월15일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일에 불과하다. ‘도둑처럼 온 해방’임을 당대인들이 충분히 증언하고 있다. ‘해방’과 ‘독립=건국’의 차이를 모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도 나라가 있었다”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온전한 근대는 요원해 보인다. 이 사태의 핵심에 김구와 그에 대한 환상이 깊숙하게 박혀 있다.

지식인 사회에 주체사상파가 뿌리 내린 1980년대 이래 감성적 어휘인 ‘의열’로 김구의 행각을 포장한 논리에 우리 모두 세뇌당해 왔다. 저자는 김구가 관여한 80여 건의 살인 가운데 아홉 가지를 들어 ‘항일 테러’ ‘밀정 테러’ ‘정적 테러’로 구분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인상적인 독자 리뷰부터 하나 소개한다. 이 책의 가치를 요약해 준 느낌이다.

“책머리·프롤로그에서 읽혀지는 문장력과 그 안에 내포된 심각한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한때의 김구 존경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몸부림이 철저히 객관적인 사료 중심의 분석에 기반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저자의 이념·사상에 결론적으로 부합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팩트 발굴의 애정과 노력을 훔쳐보며 진실어린 자유인의 판단 프로세스가 관심일 뿐. 좌든 우든 이런 열정의 지적 탐구심을 향해 다이내믹한 논쟁을 추구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테러·테러리즘·테러리스트란 가치중립적 단어였다. ‘특정 정치적 목적 아래 이뤄진 특수 폭력’으로 정의되던 테러리즘이 ‘악의 축’이자 ‘저항의 축’이라는 양가적 요소 내지 상대성을 지닌 반면, 2001년 9.11로 반문명적 야만 행위가 돼 버리면서 ‘뉴테러리즘’ 개념이 등장했다. 김구의 살인들은 과연, 얼마나 테러리즘인가? 이것이 이 책의 총체적 질문이다. 책 제목만 가지고도 흥분할 사람들을 겨냥해 한 독자가 제안한다. “영어를 모르고 감수성이 풍부한 한국인에겐 풀어 써 주는 것 외 답이 없다. (증쇄 시 제목을) ‘폭탄 투하한 김구’로 하라.”

아울러 김구에게 상해임시정부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문학적 접근이다. 세상을 향해 분노를 키운 하층민 남성에게 임정 경무국장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나아가 주석으로서 본인의 정체성과 조직을 철저하게 동일시하며 이에 반하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게 된 과정 말이다. 또 백범일지 속 명문 ‘나의 소원(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이 소설가 이광수의 가필·윤색일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 글에 담긴 모든 의미와 김구의 인생 궤적 간에 전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아 학계 일각에서 제기돼 온 의문이다.

1945년 8월15일이 광복절로 둔갑한 것은 박정희정부 때로 보인다. 이전의 공식 문서엔 늘 1948년 8월15일부터 기산됐다. 현대국가 자유민주공화국을 정확히 이해 못 한 가운데 이승만정부의 불명예 퇴진 직후라는 한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건국절과 김구 문제는 이때 사실상 출발한 셈이다. 기적의 압축 근대화 역사를 일군 한국인들이 근대적 정신성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일깨우는 측면이기도 하다.

국가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시기엔 ‘애국 스타’가 필요하다. 시장 형성 과정의 천민자본주의적 질주, 빈부격차가 가시화될 때 절실한 게 국민통합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를 향한 이승만의 열정(건국전쟁)보다 김구 식 항일 테러가 당연히 활용하기 편리하다. 오늘날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김구를 ‘존경’하게 된 결정적 배경일 것이다.

김일성 찬양의 전(前) 단계 내지 대체재가 김구의 이상화이기도 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20세기 후반 좌우합작이 이렇게 이뤄졌다. 그 결과 “8·15광복은 1945년 8월15일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 사건”으로 알게 됐다. 팩트를 바로 잡아야 한다. 8·15광복이란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자 독립(건국)기념일인 1948년 8월1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