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 왔던 슬픔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게, 꾸역꾸역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상처 낸 것들과 내가 잃어버린 것들 앞에 엎드려 나는 울었다. 내가 무너뜨린 세상과 내가 부숴 버린 세상의 모든 신 앞에 엎드려 울었다. 어머니를 잃고서도 소리내어 울어 본 적 없는 나는,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던 날 울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씀 이후 한 번도 울어 본 적 없는 나는 어둠 속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 앞에 엎드려 그날 이후 조금도 자라지 않은 내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내어 울었다.
“슬픕니까?”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슬픕니까?”
눈물로 범벅이 된 내가 얼굴을 들었을 때 자애로운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어머니였다. 마리아였다. 하운이었다. 아니, 에바였다. 에바가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슬픕니까?”라는 말이 서러워서 더 크게, 오랫동안 오열했다. 에바는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고 감정이 복받쳐 들썩이는 내 어깨를 섣불리 두드려 주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우는 동안 함께 있었다. 내 눈물이 잦아들고서야 에바의 늙고 작은 손이, 어머니의 그것처럼 내 뺨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런 다음 내 턱을 들어 올리고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쌓아 두고 감춰 두고 눌러 놓은 것은 반드시 다 꺼내 경험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것도 아닌 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아무것 아닌 줄 알면 아프지 않을 텐데. 지금은 고통스러운 그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일 겁니다. 지금 이 눈물 속에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에바의 나직한 목소리가,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는 그 목소리가 내 슬픔을 어루만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습니까?”
울음을 그치고 답을 찾는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에바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에바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당신을 믿으세요. 당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세요.”
“뭘 믿으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난 죽고 싶지 않아요. 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에바는 이해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이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 우주에는 나만큼 절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이 수없이 많습니다. 간절하고 진실하게 살아내려는 마음은, 그래서 또 다른 생명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하고 간절한 것인지 생명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가 되면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이 간절히 내 마음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 우주 전체의 마음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에바가 말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강하게 내저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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