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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 ‘길’ 대표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대목을 ...'))
민경우(59) 시민단체 ‘길’ 대표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대목을 연재(월2회 예정) 형식으로 들려준다. 편향적 정치성 거대 담론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역사, 그가 1983년 대학 첫 입학 이래 ‘찐운동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이다.
민경우는 ‘기득권화’를 경계하며 제도권, 특히 정계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운동권 내 흐름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다. 2019년 가을 오랜 세월 헌신한 진영에서 벗어난 그가 독자들에게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전해 줄 것이다. 여기엔 대한민국이 사실상 반(反)대한민국과의 대결 속에서 힘겹게 오늘에 이른 과정의 이면, 운동권 출신 현역 정치인들이 극구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이 다수 포함된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민경우의 지난 40년 전반부는 우리나라 산업화가 마지막 단추를 채우며 절차적 민주화를 완성하는 단계로 진입하던 격동의 시대였다. 1983년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같은 학교 국사학과에 다시 입학했으며 1987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을 지냈다. 모두 학생운동을 더 열심히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행보였다.
1995년부터 10년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 본부의 사무처장을 맡았다. 북한행 서신을 일본 경유해 북으로 보내는 게 주 업무였다고 한다. 본인이 훗날 자칭 간첩 행위로 회고하는 시절의 일이다. 1997년 범민련이 이적단체로 지정되면서 도피 생활 끝에 두 차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총 4년 2개월 수감생활을 했다.
출소 후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 통일연대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민주노동당에도 입당한다. 학생운동권 민족해방(NL) 계열이 조직적으로 민노당에 합류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민노당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팀장’을 맡아 NL운동권 바깥의 인사들을 만나고 주류 언론과 학계 연구들을 접하면서 신봉해 온 것들에 회의를 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부터 서울 금천구와 분당 등에서 수학 학원을 운영하며 ‘수학 공부의 재구성’ 등 수학 교육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생활인의 삶을 살면서도 운동권 입문 시절의 초심을 지켰고, 2019년 조국 사태 이래 586 운동권 기득권과 문재인정부 비판 활동을 했다. 진보진영의 위기 원인을 분석한 ‘진보의 재구성’(2009), 2001년 이래 한국 시민사회와 북한과의 직·간접적 연계성을 지목한 ‘군자산의 약속’(2023) ‘스파이 외전1·2’(2023·2024) 등은 귀한 역사적 증언이다.
◇ 북한이 말하는 ‘남조선 혁명’
북한에서 말하는 ‘남조선 혁명’이란 1930년대 김일성 부대의 항일투쟁을 계승하며 1953년 미완에 그친 영토 수복을 완수하는 것이다. 한반도 남쪽을 ‘미제(제국주의자 미국)에 빼앗긴 땅’으로 보는 것이다. 혁명의 주체가 조선노동당인데, 현실적으로 38선을 경계로 혁명 역량이 둘로 나뉜 상태에서 세가지 대책을 구상할 수 있다.
첫째, 남과 북에 각기 지하당을 만들고 지하당 사이에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권력이 사실상 두 개이므로 권력투쟁은 필연적이다. 형제당 관계라 했던 소련과 중공·중공과 베트남이 전쟁까지 갔던 것도 그 한 예이다.
당과 당의 연대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보여 준 또 다른 사례는 남로당과 북로당의 관계다. 해방 전 조선공산당을 이끈 건 박헌영이었다. 그런 그가 1948년 대한민국 수립·38선의 사실상 봉쇄·북쪽에 김일성의 조선노동당 수립이라는 현실 속에서 별안간 조선노동당 남쪽 지부 격인 남로당의 대표가 돼 버렸다.
학력·투쟁 경력 모두 박헌영이 우위인 가운데 북한에선 조선노동당을 김일성 중심의 정당으로 만드는 게 초미의 과제였고 박헌영 숙청이 그 최종적 귀결이었다. 육문중학 출신이자 해방 당시 35세였던 김일성에 비해, 1900년생 박헌영은 띠동갑 연장자였으며 조선 최고의 일류 학교였던 경성고등보통학교(경성고보·지금의 경기고) 졸업자였다.
남한 혁명의 두 번째 방법론은 남한 내 지하당을 두되 그 핵심 성원이 조선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예 남한에 조선노동당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 중부지역당이 각각 두 번째 및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민혁당을 조직한 김영환이 대남 공작원 윤택림을 만나 조선노동당에 가입함으로써 외견상 남북 리더십 분립을 막을 수 있었던 두 번째 방법론의 경우와 달리 중부지역당이란 말 그대로 조선노동당의 남한 내 지역당이었다.
북한은 조선노동당을 내세워 사업을 할 경우 강력한 반공 체제에 막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기에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위장 조직인 ‘한민전’을 통해 우회적으로 조선노동당과 관계를 맺도록 했다. 통일혁명당(통혁당)·인민혁명당(인혁당) 같은 지하당들 역시 넓게 보면 그런 사례들에 속한다. 그래서 한민전과 조선노동당의 관계야말로 주사파 이해에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 남한의 주사파들이 한민전과 조선노동당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살펴보자.
◇김영환의 한민전 인식
남한 주사파의 창건자인 민혁당 리더 김영환의 한민전에 대한 인식은 다소 모호하다. 한민전이 전위 조직인 점을 인정하고 있긴 하다. 김영환은 “나는 이 방송 주체(한민전의 구국의소리 방송)가 가진 사상 이론의 선진성·과학성과 방송 전달망의 전국성을 인정하며 이 방송이 그동안 남한 민중의 의식적 각성과 사상의지적 통일을 위해 나름대로 기여해 왔으며 앞으로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강철서신’ 55쪽). 또 전위 조직의 건설이 필요하다면서 그 예로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한민전’을 거론한다(‘강철서신’ 83쪽).
김영환은 한민전을 전위 조직으로 간주하면서도 그것이 한민전의 주장대로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대’라고 여기진 않고 있다. 즉 한민전의 한계에 대한 그의 인식이 뚜렷하다. “한민전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도 한민전 방송을 들으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이 나왔다. 남한 땅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운동권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82들의 혁명 놀음’ 우태영).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방송의 주체가 지금 여기에서 실천·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조직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연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하며 긴밀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강철서신’ 55쪽). “김영환이 1991년 북한에 가서도 전략 전술은 현장에서 나오므로 북한에서 남한 혁명의 지도부를 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도부를 꾸리겠다 해서 허락을 받았다”(‘82들의 혁명 놀음’ 191쪽).
김영환의 예민한 관찰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가 한민전 방송을 통해 한민전의 실체를 간파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후의 주사파는 한동안 한민전을 남한에 실재하는 전위 조직으로 믿었다. 따라서 “한민전이 남한에 없다는 걸 운동권 사람이면 다 안다”는 김영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나 역시 한동안(1987~92년 정도) 한민전이 북한 해주에서 단파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위장 조직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구성된 전위 조직이라고 믿었다.
◇ 1988~92년 주사파 전성기… 한민전을 실체 조직으로 착각
1988~92년은 주사파 운동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6월항쟁을 통한 운동 역량의 비약적 성장과 민주화 진전으로 인한 공안 역량의 대대적 후퇴 때문이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다수의 혁명 조직이 활동한다. 크게 요약한다면 고려대의 반미청년회·연세대의 조통(조국통일) 그룹·서울대 관악자주파·서울지역 대학가에 폭넓게 퍼져 있던 자민통(자유민주통일) 그룹 등이다. 이 중 운동의 뼈대가 된 조직이 반미청년회·자민통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조직들은 예외없이 한민전을 지도 조직으로 한다는 내용을 강령 내지 활동지침으로 하고 있었다. 가령 자민통 그룹은 강령 서문에서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한국 민중의 유일한 애국적 전위대인 한민전의 현명한 지도에 따라 자주 시대의 위업인 반미·자주·통일 조국 건설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부여안고 굳세게 전진하자”고 밝혔다.
이 혁명조직들은 한민전의 방침을 학생 운동권에 소개하고 그에 기반해 혁명을 수행한다는 입장과 태도를 가졌다. 이들은 방송을 녹취해 선전물로 만든 후 전국 대학가에 배포하는 하위 조직(소조)을 운영하면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 선출은 물론 일상 활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운동을 관리했다. 1988~92년 당시 조선노동당-한민전-혁명 조직-학생회가 그물망처럼 일사분란한 구조로 이어져 있었다.
전대협과 한총련은 평상시 10만 명 가까이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다. 조직이 커지면 다양한 논란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전대협과 한총련이 질서정연한 단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민전 방송이 학생들 사이를 실핏줄·거미줄처럼 엮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혁당과 한민전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통혁당’(대동출판사)과 ‘한국전위조직운동사’(동해)가 출간됐을 정도다.
또 이 시기 한민전 위상에 관한 중요한 증언이 하태경 전 국민의힘 의원의 책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2019)에 실려 있다.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역시 주사파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조통위 회의 시작 전에 주사파 학생들은 북한의 대남방송을 녹취해 거의 공개적으로 나눠 주기도 했다. 비공개 조직이 몰래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어차피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로 ‘이거 몰래 뿌린 걸로 합시다’면서 대놓고 그냥 뿌린 것이었다.”
이렇게 86년 주사파가 도입된 후 한민전의 방송 문건은 거의 공개적으로 유포되었다. 그 정점을 찍은 시기가 1988~97년께였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만 보면 한민전을 활용한 북한의 위장 전술은 대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 87년 6월항쟁 이후의 ‘본 게임’… 조선노동당의 김영환 접선
87년 6월항쟁이 끝나고 이제 본 게임이 시작된다. 위장 조직이란 언젠가 있을 ‘본 게임의 서곡’에 불과하기 마련이다. 이 무대의 선수인 민혁당과 중부지역당을 살펴보자.
1989년 7월 대남 공작원 윤택림은 김영환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일면식도 없이 주소만 들고 김영환을 찾아온 것이다. 통성명을 마치고 윤의 정체(조선노동당에서 파견한 사람)가 확인되자 상황이 급발전한다. 여기서 윤택림은 김영환에게 사람들을 포섭해서 노동당에 가입시킬 때 “노동당이라 해도 되고 한민전이라 해도 된다”고 조언한다(‘82들의 혁명 놀음’ 194쪽). 결국 노동당이나 한민전이나 그게 그거라는 뜻이다.
이번엔 중부지역당을 보자. 총책 황인오가 최호경과의 대화에서 “지금껏 남한에 실존한다고 알려진 한민전이 실은 조선노동당의 선전 기관” “한민전과 혈연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조선노동당의 지시를 받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중부지역당에 대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인 동시에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중부지역위원회이며 위장명칭으로는 민족해방애국전선이 되는 것”이라고 발언한다(황인오 회고록).
민혁당과 중부지역당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선노동당과 한민전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남한 주사파가 한민전을 남한 민중의 애국적 전위대로 여긴 것은 대체로 1990년대까지다. 필자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던 90년대 말에도 한민전 방송 녹취본이 공공연히 유포됐고 각종 운동 조직의 투쟁 지침으로 광범위하게 인용됐다. 한민전이 남한 주사파 운동권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2005년 한민전이 반제민전으로 개칭되던 시기였다고 기억한다.
◇한민전이라는 위장 조직의 효과… “북한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
한민전은 조선노동당의 위장 조직이었다. 이런 위장 조직을 두는 것의 효과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처럼 반공·반북 정서가 견고한 조건에선 아무리 운동권 학생이라 해도 김일성·김정일·조선노동당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투쟁과 운동의 규모가 극적으로 축소되었을 게 자명하다. 한국 민중의 애국적 전위대라고 하니 훨씬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남한 학생들의 한민전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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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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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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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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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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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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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사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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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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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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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주사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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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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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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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민전과 조선노동당 문제를 검토해 보겠다. 나는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거나 김일성·김정일에 충성 맹세를 한 적이 없다.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 한민전의 신도가 되어 있었다. 한민전을 믿고 따른다는 건 앞에서 언급한 윤택림·황인오의 말처럼 우회적으로 조선노동당을 믿고 따른다는 뜻이다.
결국 조선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위장 조직을 만들어 남한 청년들을 설득하려 했던 북한의 시도가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나는 2023년 펴낸 단행본 ‘스파이 외전’에서 이것을 고통스럽게 밝힌 바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민전의 실체, 북한이 만들어 낸 가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고통스럽게 과거를 회상한다. 여러 날 한민전의 의미를 자문하다 어느 날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북한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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