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노인이 지혜롭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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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이 문화팀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2-04 00:02:40

우리나라는 사회적 예절 교육을 공교육이 맡고 있다. 학교 교과목인 바른생활·도덕·생활과 윤리 등을 통해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인사·식사 예절·높임말 등의 내용을 가르친다.

사실 예절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유치원생들이다. 모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배포한 예절 카드를 보니 △안녕하세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등의 인사말과 △남의 대화 중단시키지 않기 △순서 지키기 △약속 시간 지키기 △남의 물건 허락받고 사용하기 등의 생활 준칙이 적혀 있었다.

유치원생들은 철저히 ‘배꼽인사’를 실천할 뿐 아니라 손 들고 길을 건널 만큼 준법정신도 강하다.

그렇다면 가장 예의 없는 세대는 누구일까. 누군가는 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에 출생한 젠지(Generation Z)를 꼽기도 하고, 누군가는 폭넓게 8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에 출생한 MZ세대를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다수는 노인 세대가 가장 매너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식 노인은 65세부터지만 대인관계에 조금이라도 미숙하거나 민폐를 끼칠라치면 바로 ‘노인네’ 취급을 하며 심지어 틀딱(틀니 딱딱)이라는 경멸 어린 수식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한편 노인은 억울하다. 나이 든 게 죄도 아닌데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슬금슬금 눈치를 보게 된다. 행동이 느리다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목소리가 크다고 구박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된 게 누구 덕분인데…’ 하며 막돼 가는 세상을 개탄하지만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이가 없다.

어느 시대든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오늘날 이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인공지능(AI)·암호화폐·키오스크·핀테크 등 듣도 보도 못 한 신문물이 등장해 청년층과 노년층의 거리를 벌려 놨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전화가 오기만 해도 심장이 뛰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에 시달리지만 메신저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은 그때그때 통화로 이야기하는 게 편하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도 하며 또한 이어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로 종종 유튜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기도 한다.

이 곤경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답이 없지는 않다. 노년층이 학창 시절로 돌아가 교육을 받는 것이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고령자를 위해 디지털 교육에 나섰다. 서울 동작구가 실시하는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보니 △스마트폰 기초 설정 △카카오톡·유튜브 등 앱 사용법 △스마트폰으로 기차·버스·비행기 승차권 예매하는 방법 △사진·동영상 촬영 및 편집 실습 등 기초적인 메뉴가 주를 이룬다.

이것만 해결돼도 노인층의 사회적 소외감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다만 영상 편집 실습의 경우 쓸모가 한정적이므로 △이어폰 사용법 △키오스크 사용법 △핀테크 이용법 △온라인 마켓 이용법 등으로 대체하면 좋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매너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하는 문화가 일반적인 시대에는 노인이 조금 권위적이어도, 조금 목소리가 커도 양해가 됐지만 ‘개인 대 개인’이 기본인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씨도 안 먹히는 이야기’다.

유치원 아이들이 하듯 △안녕하세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가 입에 붙도록 해야 한다. 그 밖에 △남의 대화 중단시키지 않기 △순서 지키기 △남의 물건 허락받고 사용하기에 더해 △공공장소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기 △어리다고 반말하지 않기를 실천해야 한다.

또한 속옷·겉옷을 자주 갈아입어 청결에 신경 써야 한다. 매일 목욕을 해도 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으면 본인은 모르지만 남들은 다 아는 견디기 힘든 냄새가 난다.

외적인 매너와 청결을 생활화한 후에는 내면을 지성의 향기로 채워야 한다. 최근 서울 노원구가 50·60대 남성들이 잠재된 자기 가치를 새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비행 M5060’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갔다.

주요 활동을 보니 △몸과 마음·대화를 여는 ‘움직임’ △소중한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비폭력 대화 트레이닝 △스스로가 주인공이자 작가가 되는 ‘셀프 브랜딩 북’ 제작 △헤어스타일링·프로필 촬영 △참여자의 변화 과정을 공유하는 자유비행 ‘이륙식’ 등이 있다.

주최 측은 “삶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시기를 문화·예술적 감성으로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 달 8회에 걸쳐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50세 이상 남성이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지덕체·진선미는 고대 그리스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신체를 머리·가슴·배로 구분한 후 이를 이성·용기·욕망의 원천으로 보았다. 지와 진의 가치는 학문이 되었고 덕과 선은 도덕이 됐으며 체와 미는 예술로 자리 잡았다.

지덕체·진선미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때다. 그 가치를 노년층이 견인한다면 타의 모범이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싸가지없는 것은 노인들이 지덕체의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AI 때문이고 키오스크 때문이지만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언제부턴가 사라진 ‘지혜로운 노인’의 이미지를 되찾아 올 이는 노인들이다.

임유이 문화팀장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