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어로서의 ‘계엄’(戒嚴)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어 ‘에따 드 시에쥐’(état de siège), 즉 국가적 포위(긴급)상태를 번역한 것이다. 고전중국어로는 17세기 청나라 때 출간된 사전 ‘정자통’(正字通)에 처음 등장한다. ‘적 공격이 임박했을 때의 방비’가 ‘계엄’이라는 설명이다. 근대 이전에 나온 사전의 최고봉인 ‘강희자전’(1716) 역시 이 ‘정자통’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탄핵’(彈劾)이 최초 출현한 것은 중국 24사(史) 중 하나인 ‘금사’(1344)에서다. 여진족의 흥기~금나라 건국과 멸망을 몽골족 지식인 토크토(脫脫)가 한문으로 기술한 이 책에서 탄핵이란 감찰업무 담당 관원이 관리의 비리를 찾아 내 죄상을 고발하는 행위를 뜻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면 사대부들이 다른 신하의 잘못을 따져 왕에게 아뢰는 행위를 가리키게 됐다. 조선왕조실록엔 태종~고종 290개 항목에서 ‘탄핵’이 나온다.
현대어 ‘탄핵’은 일반적 사법 절차로 처벌이 어려운 고급공무원을 헌법·법률에 의거해 파면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고대 프랑스어 ‘앙페셰’(empeechier 구속하다·묶다·방해하다)에서 유래한 영단어(impeach)를 19세기 일본인들이 ‘탄핵’으로 옮겼다. 대의제 민주국가에서 입법부가 탄핵소추권을 가지며 심판권은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재판소에 있다. 민주주의 법치 성립의 우여곡절 속에 성립한 제도로서의 탄핵, 특히 최고권력자 탄핵이란 인민공화국이나 세습 왕조 체제 사람들에겐 이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첫 임기 시절 두 번 탄핵 소추 당했으나 모두 상원에서 기각·각하됐다. 2019년 트럼프 측과 러시아가 내통했다는 혐의를 수사하던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한 게 ‘사법 방해’로, 2020 대선결과 불복 지지자들 시위(이듬해 1.6사태) 관련해선 ‘내란 선동’으로 몰렸다. 그 이전 미국 역사엔 탄핵 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하기 직전 사임한 17대(린든 존슨), 상원에서 기각돼 복귀한 42대(빌 클린턴) 사례가 있을 뿐이다.
현대국가 성숙도가 떨어질수록 탄핵 소추·인용이 남발된다. ‘탄핵’ ‘계엄’은 각각 의회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헌법에 규정돼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균형을 추구한다. 다만 대통령 의회해산권을 삭제한 대한민국 현행 헌법 하에선 행정부 수반 쪽이 약체일 수밖에 없는데 ‘제왕적 대통령’ 운운 하니 기이하다. 근·현대사가 일천할수록 내각제는 호족화한 지방 세력에 잠식당하기 쉽다. 전근대적 관성을 그나마 제어 가능한 대통령중심제를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끝까지 고집한 최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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