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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4월의 노래’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로 시작된다.
4월만 되면 라디오를 통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던 노래였지만 젊은 세대는 아이돌에 열광하고 기성세대는 임영웅에 빠지면서 영 듣기 어려운 곡이 됐다.
목련은 4월을 상징할 만큼 봄이면 주택가건 공원이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목련을 대단위로 심은 곳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천리포수목원이 더 소중한지 모른다.
국내 유일 목련축제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00여 개 분류군의 목련을 보유한 곳이다. 매년 4월 이곳에서는 수많은 목련 종을 바탕으로 국내 유일의 목련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 주제는 ‘소복소복 목련산책’이다.
축제 기간 수목원을 찾으면 보라색 목련·노란색의 목련·겹꽃 목련 등 온갖 종류의 목련을 볼 수 있다.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늘어진 것이 있고 끝끝내 봉오리를 열지 않는 종도 있다.
꽃잎에 붉은 줄무늬가 특징인 ‘제니아이목련’은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비밀의 정원’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희귀 목련인 제니아이목련은 귀중한 꽃이라는 의미에서 ‘보화목련’이라고도 불린다.
이 목련은 1984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부속 아놀드수목원에서 천리포수목원에 기증한 개체다. 그때로부터 40여 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우람한 수세를 자랑하는 중이다. 나무 아래를 걷고 있으면 부드러운 꽃향기가 퍼져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꽃송이가 주먹보다 큰 ‘밀키웨이’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밤하늘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뉴질랜드에서 건너온 품종으로 연분홍색 꽃잎이 단아한 한복을 연상시킨다.
꽃송이 깊숙한 곳은 옅은 분홍이지만 바깥으로 갈수록 흰 빛을 띤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둥글고 넓으며 향기가 좋은 게 특징이다.
‘벌컨’은 천리포수목원의 스타 목련이다. 자목련보다 붉은빛이 더 짙어 루비에 가까운 색을 띠며 꽃잎의 앞뒤가 모두 붉다.
뉴질랜드의 마크 주리가 캠벨목련과 자목련의 교잡을 통해 육종한 꽃으로 1992년 소개되자마자 목련 마니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됐다. 벌컨(Vulcan)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대장장이의 신·불의 신을 가리킨다.
그 밖에 △새가 나는 형상의 ‘얼리버드’ △풍성한 꽃잎과 단정한 수형이 매력적인 ‘베지터블 가든’ △꽃잎이 하트처럼 벌어지는 ‘스위트하트’ 등 다양한 품종의 목련을 볼 수 있다.
천리포 모래언덕에 처음 심은 나무 목련
일반에 공개된 밀러가든은 수목원 설립자인 고 민병갈(귀화 전 이름 칼 페리스 밀러)의 이름을 딴 정원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 입국한 뒤 한국에 정착했다.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민병갈이라는 이름은 한국은행 상근 고문으로 있을 적 호형호제하던 민병도 총재의 성과 돌림자를 딴 것이다. 민병갈 원장은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1호로 1962년 사재를 털어 매입한 천리포 해변의 2ha(2만㎥) 부지를 기반으로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목원을 건설했다.
그때 황폐한 모래언덕에 처음 심은 나무가 목련이었다. 목련의 아름다움에 반한 민 선생은 외국의 식물원과 목련 애호가들로부터 다양한 목련을 수집했다.
그 결과 천리포수목원은 1997년 국제목련학회 총회를 유치할 만큼 목련 특화 수목원으로 인정받았고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가 선정하는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됐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고 세계에서는 12번째였다.
천리포수목원은 목련 외에도 이곳에는 △호랑가시나무 500여 종 △동백나무 380여 종 △무궁화 300여 종류 △단풍나무 200여 종류 등 총 1만6000여 종의 수목이 자란다.
또 환경부는 2006년 천리포수목원을 매화마름·가시연꽃·노랑무늬붓꽃·망개나무·미선나무 등 멸종위기종 5종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특히 매화마름은 물매화와 꽃이 닮고 붕어마름과 잎이 비슷해 둘을 합친 이름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논이나 연못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생식물이었지만 농약 사용으로 자취를 감춘 끝에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됐다.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는 수목원 내 논에서 매화마름이 꽃을 피운 것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으면 자연은 얼마든 회복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매화마름은 4~5월 단추처럼 작고 흰 꽃을 피운다.
2008년까지 천리포수목원은 “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나무”라던 설립자의 유별난 나무 사랑 덕에 일반인은 출입이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수목원이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직원들 월급도 못 줄 형편이 되자 수목원 측은 “꽃 한 송이가 밟히면 열 송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일반 개방을 결정했다. 40여 년 만에 빗장이 풀린 신의 비밀정원을 보기 위해 성수기 기준 하루 3000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작가 김훈은 목련이 피는 모습을 두고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라고 했다. 활짝 피었나 싶으면 지고 꽃이 질 때는 더 없이 남루하고 참혹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목련이 지는 것을 일컬어 “느리고도 무거운 죽음”이라고 했다.
목련축제가 열리는 4월은 공교롭게도 민병갈 원장이 태어난 달이자 사망한 달이다. 그는 1921년 4월5일 태어나 2002년 4월8일, 8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골은 생전 고인이 가장 좋아하던 분홍색 교배종 목련 ‘라스프베리 펀’ 아래 수목장으로 안치됐다.
목련축제 기간 밀러가든에서는 단체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민병갈기념관 갤러리에서는 한국식물화가협회 기획전이 열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을 그린 세밀화 8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목련축제는 20일까지, 봄축제는 5월 말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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