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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2일(현지시간)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미국병합 문제를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인들이 아무리 소리질러도 신경 안 쓴다”며 미국의 단호함을 전달했다.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 진행자가 ‘그린란드 확보 여지’를 묻자 밴스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어 그린란드의 전략적·안보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밴스는 “중국과 러시아의 바닷길이 있는 곳인데 덴마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뒤 그린란드 주민 5만7000명의 불만도 짚었다. “그 엄청난 천연자원의 개발·탐사를 덴마크가 불허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작년 12월 당선인 신분에서 주덴마크 대사를 발표할 때 트럼프가 이미 “국가안보와 전 세계 자유를 위해 미국의 그린란드 소유권 및 지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으며, 지난달 20일 취임식 당일엔 “국제안보를 위해 그것(그린란드)이 필요하다. 덴마크가 우리와 함께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내외 주류 언론에선 ‘그린란드에 눈독들인 트럼프’ ‘그린란드 편입을 위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식으로 보도됐으나 19세기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영토문제란 호혜성을 통해 정당성을 가진다. 서로에게 좋으면 된다.
지구촌 최대 섬인 그린란드(210만㎢) 이름이 녹색땅을 뜻하지만 전체 면적의 75%가 두께 4000m의 영구 빙하다. 북극점 중심으로 볼 때 북극해 너머로 미국·캐나다와 러시아가 마주보고 있다. 그린란드는 북미대륙과 매우 가까운 존재이며 100년 전부터 미국에 익숙하고 중요한 곳이었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서반구를 자국 세력권으로 선언할 때 서반구에 신대륙 전체와 카리브해 섬들, 아이슬란드·그린란드가 포함됐고 앤드루 존슨 대통령 시절 1867년 국무부는 보고서 ‘아이슬란드·그린란드의 자원’를 통해 그린란드 매입을 제안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엔 미국과 덴마크 간 ‘그린란드방위협정’이 맺어졌다.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를 건설할 권한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덴마크가 나치독일 치하인 가운데 주미 덴마크 대사인 헨릭 카우프만이 단독으로 체결한 협정이었으나 현재까지 유효하다. 해당 협정 제10조엔 미주대륙의 평화·안보 위협이 해소됐다고 합의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한다고 돼 있다. 미국은 언제까지든 그린란드에 주둔이 가능한 셈이다. 이 협정에 의거해 미국은 현지에 공군기지를 건설하고 유럽행 항공기 중계지로 활용했다.
그린란드산 광물인 빙정석도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에 기여했다. 2000도인 알루미늄 융점을 반으로 낮춰주는 빙정성이 항공기 제작용 알루미늄 생산에 요긴했는데, 빙정석 산지가 그린란드뿐이던 당시 빙정석을 독점한 미국은 항공기 생산에서 독일·일본을 압도할 수 있었다. 세계대전 종식 직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그린란드 매입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바 있으며, 냉전시절 내내 미국으로 발사된 소련의 폭격기·미사일 등을 빨리 감지할 수 있는 곳 그린란드 가치는 한층 높아졌다. 이런 역사적 문맥을 볼 때 트럼프가 뜬금없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니다.
2008년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북극권엔 약 900억 배럴의 원유와 47.3조 입방미터의 엄청난 에너지 자원이 매장돼 있으며 이 가운데 원유 약 175억 배럴과 천연가스 42조 입방미터가 그린란드 주변 해저에 깃들어 있다. 다만 1970년대 셸·엑손모빌 등 거대 석유 기업들이 그린란드 탐사를 시작했으나 가격 경쟁력이 없어 채굴로 이어지진 못했다. 석유가격 급등으로 2002~2014년 그린란드에 20개 이상의 석유 채굴 허가가 발급됐지만 여름에도 두꺼운 얼음층과 해류에 실려 유입되는 얼음들 때문에 탐사·시추가 여전히 어려웠다. 심지어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자치정부에서 환경오염 우려를 제기하자 2021년 7월 더이상 신규 탐사·개발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핵심 광물자원으로 분류한 50종 중 43종과 다량의 희토류도 그린란드의 매력이지만 이곳을 둘러싼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북극권 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확대 방어다. 러시아가 북극권 천연가스 생산을 진행 중이며 중국과 북극 해상 운송로 개발에 합의한 상태다. 북극 해빙으로 지난 10년간 선박 통행량이 37%나 증가했으며 계속 늘어날 것이다. 미국으로선 미래 전략적 요충지인 북극권 통제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을 비웃던 미 주요 언론에 긍정적 논조가 늘었으며 유럽 국가들의 대응도 조심스러워졌다.
북극권 항로가 연중 내내 이용되려면 얼음을 깨고 항로를 열어줄 쇄빙선이 필수인데, 북극을 담당한 미 해안경비대 소속 쇄빙선이 총 2척(대형·소형 각 1척)에 불과할 만큼 열악한 수준이다. 1976년 취역한 대형 쇄빙선은 이미 예상 수명 30년을 크게 넘겼다. 해안경비대에선 대형 쇄빙선 5척을 원하지만 예산 부족 및 건조 지연으로 2030년이 돼야 신규 쇄빙선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러시아는 북극권에서 원자력 쇄빙선 4척 등 약 40척의 세계 최대 쇄빙선단을 운영해 왔으며 최근 신규 원자력 쇄빙선까지 진수돼 이 지역 내 세력 강화를 매진하고 있다. 중국 또한 쇄빙선 3척을 북극에 파견하는 등 세력 증강에 나섰으며 원자력 쇄빙선 건조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급해진 미국이 쇄빙선 증강을 위해 2024년 7월 캐나다·핀란드와 쇄빙선협력협정(ICE Pact)을 성사시켰다.
11척의 쇄빙선을 가진 핀란드는 전 세계 쇄빙선의 80%를 설계하고 60%를 제조해 온 이 분야의 압도적 강자다. 중립국 지위로 인해 미국과의 협력이 제한적이었으나 이젠 다르다. 2024년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북극권에 대한 양국 협력은 강화될 전망이다. 인류사 최초 ‘해적 걱정 없는 바다’(항행의 자유)란 미국의 패권 아래 비로소 가능했다. 대한민국처럼 에너지를 수입해 제조·통상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최대 수혜국이었다. 미국의 북극 제어가 자유 세계 전체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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