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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 오늘생각] 우리는 임화가 아니라 김기림의 길을 가야 한다
현재 국가의 위기, 제2의 해방공간과 같다고들 해
일제 말기 어디서나 환영받을 수 있었지만 귀향
김기림의 길처럼 현재의 하이브리드 전쟁 임해야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7 00:02:55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시인
해방공간 같다고들 한다. 내가 보기에도 정말 그런 것 같다. 남북이 나뉜 데다 이 남쪽은 좌·우익 대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표현이 잘못됐다. 몸살 수준이 아니다. 이 동아시아 끝에 매달린 작은 ‘반쪽짜리’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제2의 해방공간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느 길로 나아갈 것이냐. 어떤 체제를 선택할 것이냐.
 
일제 말기에서 해방공간으로 나아간 과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그때 1908년생 비평계 트로이카가 있었다. 최재서, 황해도 해주 출생. ‘국민문학’을 창간하는 등 대일 협력의 길을 걷다 해방 후 참회의 삶을 살아갔다 한다. 임화, 서울 출생. 출판사 학예사를 세우고 한편으로 값진 ‘조선문고’ 시리즈를 내며 ‘위장’ 전향의 길을 걸었다. 해방 후 재건된 조선공산당에 들어가 ‘당원’의 문학으로 나아갔고, 월북 후에도 남로당 박헌영 노선을 따르다 ‘미제 스파이’로 몰려 숙청되고 말았다. 마지막 한 사람이 함경북도 학성군 태생 김기림이다. 일제 말기와 해방공간을 돌아볼 때면 나는 늘 김기림의 선택을 깊이 고찰해 보곤 한다.
 
김기림은 일본에 두 번씩이나 유학을 했다. 한 번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건너가 릿쿄중학을 거쳐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한다. 다른 한 번은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하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의 도호쿠제대 영문과에 들어가 학업을 마친 것이다. 당시 1939년에서 1940년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일본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신문들을 폐간시켜 버렸는데, 이때 김기림은 대일 협력이 아닌 낙향을 선택했다. 학업을 쌓을 만큼 쌓았고 그 경력이면 본인만 마음 먹으면 일제 말기 체제 어디서도 환영받을 수 있었건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무렵 그가 쓴 평론들은 그야말로 명문이다.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인문평론·1939.10), ‘조선문학에의 반성’(춘추·1940.10), ‘동양에 관한 단상’(문장·1941.4)으로 연결되는 이 드높은 정신의 기록은 수십 년 지난 오늘에도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는 이 글들에서 조선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이냐를 묻고, 동양이냐 서양이냐를 묻는다. 일본이 주도하는 대동아공영(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 번영) 체제에 귀속될 것이냐, 비록 제2차 세계대전으로 집약되는 ‘서양 근대의 파국’에도 동양에 침닉되지 않고, 굴복·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지켜 새로운 근대를 준비할 것이냐. 서울에서 먼 고향으로 내려가던 그의 심정이 어땠을 것인가. 그러나 그의 영문학은 일본적 동양주의가 아닌, 서양과 동양 문명의 새로운 종합을 꿈꾸도록 했다.
 
해방이 되자 김기림은 서울로 돌아온다. 새로운 활동을 위해서는 당연한 길이었다. 서울에서는 임화의 조선문학가동맹이 ‘기다리고’ 있었고, 김기림은 보성고보 동창이 주도하는 이 단체에 들어가 재생한 민족의 새로운 문학을 꿈꾼다. 임화의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파와 이태준의 ‘문장’파가 합동하여 주도한 단체였기에 통합적인 민족문학을 기약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공간의 정세는 다르게 흘렀다. 남북이 분할되고 북한에는 제정 러시아의 차리즘(tsarism·차르(황제)를 중심으로 한 전제정치 체제)을 닮은 스탈린주의의 지극히 ‘동양적인’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남한에서는 좌우익 대결이 심화하는 가운데 김기림이 꿈꾸던 ‘새로운 근대’에의 길은 멀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김기림은 서울 태생인 임화가 월북을 선택한 것과 달리 이북 출신임에도 한국에 남았다. 1947년에서 1948년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고향의 가족을 남김없이 서울로 이끌었다. 남·북한 대치가 심화되는 국면에서 김기림은 서양적 근대의 가능성이 살아 있는 서울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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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을 목전에 둔 시기에 발표한 ‘문화의 운명’(문예·1950.3)에서 김기림은 서구 근대의 ‘과학’과 동양적인 ‘지혜’를 종합하여 새로운 현대를 창조할 것을 주문한다. 동양에서 건져내야 할 것은 차리즘과 황제의 전제주의가 아니라 인공적인 과학을 통어해 줄 지혜라고 본 것이다.
 
탄핵 정국의 가파른 흐름 속에서 문학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시대를 꿰뚫는 지혜를 발휘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한다. 누구나 힘껏, 애써서, 내일에의 길을 생각하고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현재 위기는 해방공간의 김기림이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파했던 것처럼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벌여 온 하이브리드 전쟁의 결과였던 것은 아닐까. 또한 부정선거야말로 국민 주권에 대한 심대한 침탈이며 이것이야말로 모든 이가  그 실체를 밝혀 나라를 구해야 할 국난인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임화가 아닌 김기림의 길을 찾아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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