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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본다. 가부키 세계를 그린 ‘국보’다. 진작에 있었어야 할 영화를 이제야 만들었다 할까. 감독은 이상일, 재일 한국인 3세라 한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를 아주 감명 깊게 보았었다. 양석일 원작으로 대학로에서였다. 끔찍한 ‘진실’의 영화, 기타노 다케시의 명연기였다. 손창섭 장편소설 ‘유맹’과 흡사한 이야기였지만 영화의 감각적 효과는 무섭다. 다음엔 ‘박치기’, 명동의 작은 예술극장을 일부러 찾아가 본, 낭만적이지만 소품이었다.
이제 ‘국보’는 흠결이 많다. 일단, ‘쓸데없이’ 길다. 객석의 어떤 관객이 마음 놓고 코를 골며 잤다. 끝은 먼데 엔딩 자리가 여러 번 있었다. 예술인가, 인생인가.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했다. 사랑의 문제까지 겹쳐 놓았다. 쉽게 끝날 수 없다. 모든 희생과 곤경을 딛고 주인공이 ‘국보’의 자리에까지 올라야 이야기가 끝나도록 설정되어 있다.
극중 다치바나 기쿠오는 나가사키의 야쿠자 두목의 아들로 태어나 가부키 배우의 길을 찾아간다. 명배우 하나이 한지로 밑에 들어가 그의 아들 슌스케와 함께 경쟁하고 우정을 쌓으며 성장한다.
가부키 명인 집안의 혈통인가, 재능과 피어린 노력인가. 하나이 한지로는 자신의 친아들 슌스케 대신에 기쿠오를 자신의 뒤를 이를 ‘명인’으로 지목한다. 가부키 집안은 명인의 역할을 대물림한다. 여자 역을 하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女形)’의 3세손(三代目) 자리를 놓고 ‘굴러온 돌’ 격인 기쿠오가 승리를 거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쿠오는 온갖 간난 시련을 겪고 슌스케와 재결합한다. 극은 이제 ‘동성’ 친구 사이의 ‘찐’우정 이야기로 빠진다.
험담을 잔뜩 했지만 보는 내내 나는 ‘침통’했다. 예술이란 가부키의 저 명인처럼 갇혀 살고 한 역할만을 고집하고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완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연기나 연주나 그림뿐일까? 문학도 그렇다. 그러니까 글도 그렇게 함으로써만 제대로 된 작품을 ‘출산’할 수 있다.
작중에서 기쿠오가 신사에 들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가부키 명인의 길을 완성할 수 있기를 빌었다는 대목이 있다. 어린 딸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악마에게 운명을 팔았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에피소드를, 값싸게도 쓴다고 속으로 쓰게 웃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예술은 그래야 완성에 가까워질 수라도 있다.
가부키의 희게 분칠한 배우의 얼굴, 그것도 남성이 여자 역을 한다는 설정은 영화 ‘파리넬리’의, 여성의 고음을 내는 남성 성악가 ‘카스트라도’를 그린 것과도 흡사하다. 뭔가 원본성 약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이 자잘하게 출현하는데도, 나는 끝까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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