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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국무부는 전 세계 ‘글로벌 부처’라는 별칭을 듣는다. 내정과는 관계없는 외교만 관할하고 있는 국무부는 미 행정부에서 단연 수석부처다. 국무장관이 미 부통령 못지않게 핵심 포스트이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2기 국무장관 기용자를 자신의 복심(腹心)으로 앉히려 하고 있지만 공화당 반대라는 난관에 부딪쳐 끝내 좌절했다. ‘세계의 눈’, ‘세계의 관리자’라는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지위가 약해져 가는 현 상황에서 오바마에게 너무나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오바마가 점찍은 ‘수잔 라이스’ 유엔 대사에 대해 공화당의 정치적 공세가 거세자 라이스가 먼저 이를 내려놓았고 오바마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잔 라이스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권력지형 변화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 등으로 동북아의 안보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40대의 흑인 여성 수잔 라이스를 앞으로 주목해 봐야 한다. <사진은 북한 핵문제 관련 입장을 밝히는 수잔 라이스=뉴시스/Newsroh.com>
[스카이 비평] ‘21세기판 로마’라는 글로벌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자칭 그런 지위에 실제 있다는 의미를 대내외에 과시라도 하듯 외교업무만을 관장하는 부처의 이름을 ‘국무부’(Department of State)라고 내걸고 있다.
국무부는 이름만 보면 과거 우리의 내무부(현 행안부)처럼 국가의 내치(內治)를 주로 관장하는 부처로 보여지지만 그와는 정반대다. 미국에는 우리의 외교통상부 같은 외교를 주관하는 부처 간판이 없다. 국무부가 바로 외교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무부의 사령탑인 국무장관의 이름도 본래 명칭이었던 ‘Secretary of Foreign Affairs’를 버리고 ‘Secretary of State’를 사용한다. 외교를 상징하는 ‘Foreign’을 버린 것은 국가의 내치 업무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하기 한해 전인 1978년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외교권한을 주고 이듬해에는 대통령이 외무부 설립법안을 가결했었다. 이어 같은 해 추가입법이라는 형식을 거쳐 국무부로 명칭이 바뀌면서 국내 여러 현안에 대한 업무를 했다.
하지만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한 미국은 내정 업무를 차례차례 타 부처에 이관하고 본래의 외교 업무만을 전담하는 부처로 컴백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 독립 초기 단출하게 외무부(국무부), 재무부, 전쟁부가 있던 시절의 국무부와 오늘의 국무부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이제 ‘세계의 국무장관’이라고 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한 자리다. 우리처럼 국무총리직이 없는 미국에는 국무장관이 바로 각 부처의 최고라고 할 만큼 ‘수석장관급’에 해당된다. 미 국무장관은 행정부의 ‘요직 중의 요직’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대통령이 믿을 만한 ‘복심’(腹心)이 아니면 앉기 어렵다.
‘오바마의 복심’으로 거론돼 온 수잔 라이스(48세, Susan Elizabeth Rice) 유엔 주재 대사가 최근 오바마의 끈질긴 러브콜에 끝내 ‘가슴 아픈 사의’를 표명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제2기 임기 중 ‘세계의 국무총리격’인 국무장관에 후보에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인 수잔 라이스 대사를 점찍었다.
수잔 라이스는 직속상관이었던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오바마와 힐러리 간 대통령 후보로 맞붙었을 때 힐러리 지지를 종용했으나 끝까지 오바마 진영에 남은 의리파였다. 수잔 라이스는 오바마 옆에서 대통령 후보 고위외교정책 고문관과 대통령직 인수 프로젝트 자문위원을 지냈다. 그녀는 외모에서도 풍기듯 이지와 지성을 겸비하고 냉철한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수잔 라이스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14일 국무장관 후보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오바마도 이를 못내 수락했다. 수잔 라이스의 결정은 공화당의 끈질긴 견제를 받고 있는 오바마를 지키기 위한 드마마틱한 장면이 오버랩 되는 광경이었다.
공화당은 수잔 라이스가 국무장관이 안 되는 사유를 외견상 지난 9월의 리비아 벵가지에 있는 미 영사관에 대한 공습과 관련된 발언으로 들이댔다. 당시 공습으로 미국인 수명이 죽거나 다쳐 미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공화당은 당연히 치밀하게 계획된 ‘모종의 테러범’을 지목하면서 사실상 이슬람 무장 과격파의 행위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잔 라이스 대사는 이슬람교 선지자인 무함마드(Muhammad)를 모욕한 영화로 인한 시위대의 우발적 사태라는 말을 했다. 지금도 사건의 진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수잔 라이스의 언급이 정황상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수잔 라이스의 말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중동에서 미국의 정책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테러집단의 치밀하고 과격한 살인공격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미국의 대중동 관리전략에 유효했음은 상식이다. 글로벌 리더의 자긍심을 갖고 있는 미국에게 ‘감히 테러집단이 건드렸다’는 상처를 주는 사건으로 몰고 가야 했지만 수잔 라이스는 미국만이 가질 수 있는 상식에서 벗어난 언사를 했다.
미국적 입장에서 수잔 라이스의 대처는 잘못된 것이 맞지만 진실에 근접한 언행을 한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수잔 라이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상원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 장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겪는다. 조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사실상 ‘세계의 부통령’ 자리를 양보했다.
수잔 라이스는 전전직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를 연상하게 한다. 콛돌리자 라이스는 ‘아들 부시’ 전 대통령 1기 시절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내고 2기에는 흑인여성 최초로 국무장관직에 올랐다. 곤돌리자 라이스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강한 미국’을 주창해 온 ‘주전론’(主戰論)으로 부시의 인정을 높이 받았었다.
수잔 라이스가 이번에 국무장관 후보 지명을 받아 내각에 들어갔다면 미국 사회에서는 또 다른 흑인여성의 신화를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보수와 백인 색채가 강한 공화당은 겉으로는 수잔 라이스의 발언을 문제 삼았지만 내심으로는 국무장관의 자리를 더 이상 여성, 나아가 흑인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의도를 은연중 드러냈다.
공화당은 백인 그리고 남성이 중용돼야 한다는 생각을 내심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공화당은 미국 사회의 주류임을 자임해 왔다. 하지만 직전의 힐러리 클린턴 까지 매들린 올브라이트, 콜린 파월, 곤돌리자 라이스 등의 여성 및 흑인 또는 비주류 등에 국무장관 자리를 내주었다. 더 이상 양보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은 수잔 라이스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 너무 뻔한 여론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은 수잔 라이스다. 그녀는 이번에 비록 미국 부통령이 부럽지 않은 자리를 내려놓았지만 40대라는 젊은 나이를 감안했을 때 앞으로 정치적 야심을 갖고 갈 상황이 크다. 그녀가 어떤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상관이었던 올브라이트가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됐고, 의리를 보여 온 오바마가 흑인 첫 대통령을 된 것을 그냥 보고 넘겨버리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더구나 그녀가 내려놓은 자리는 자신이 한 때 보좌했던 존 케리 현 상원의원(상원 외교위원장)이 앉을 가능성 크다. 공화당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존 케리는 더구나 전 대통령 후보였고, 수잔 라이스는 그가 대통령 후보 시절 외교정책 고문관 역할을 수행했다.
민주당의 원로이면서 모셨던 상관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면서 더불어 공화당의 정치적 압박을 피하려면 일단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이 같은 판단을 한 수잔 라이스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이 자리는 의회의 인준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수잔 라이스가 앞으로 어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나갈지 우리의 외교와도 긴밀하게 연결된 사안이다. 중·러·일 등 동북아의 권력지형이 모두 바뀌거나 바뀌는 중에 북한의 예측불허 정치행위까지 안고 가야 하는 우리는 미국의 안보관련 오바마 측근을 면밀히 살피고 소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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