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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투(me too) 운동의 상징 이토 시오리(伊藤詩織·30) 프리랜서 기자가 18일 성폭행으로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낸 민사 소송에서 승소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지 4년 8개월 만이었다.
18일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이날 이토 기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 전 TBS 기자를 상대로 낸 1100만엔(약 1억1700만원)의 손해배상 요구 소송에서 이토의 주장을 인정, 330만엔(약 3505만원)을 이토 기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스즈키 아키히로(鈴木昭洋) 재판장은 “의식이 없는 원고와 합의 없이 성행위를 하고, 의식을 회복한 후 거절하는데도 성행위를 계속하려 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원고와의 합의에 따라 성관계를 맺었으며 원고의 허위 주장으로 사회적 신용을 잃었다”는 내용의 야마구치 전 기자의 손해배상 요구는 기각했다. 야마구치는 지난 2월 ‘합의된 성관계“라며 이토 측에 위자료 1억3000만엔(약 13억8000만원)과 사죄 광고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스즈키 재판장은 야마구치의 반론에 대해선 “진술이 당시 보낸 메일과 내용에 모순되며, 불합리하게 번복이 이뤄져 신뢰성이 중대하게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토 기자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성범죄 피해자를 둘러싼 환경 개선을 위한 것으로 공익성과 공익목적이 있고 내용도 진실하다”며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앞서 이토 기자는 지난 2017년 12월 야마구치를 상대로 1100만엔(약 1억17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4월 야마구치와의 식사 자리에서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면서다.
앞서 기자 지망생이던 이토는 2015년 4월 취업 상담을 위해 당시 TBS 워싱턴 지국장으로 잠깐 귀국했던 야마구치와 도쿄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의식을 잃었고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야마구치에 대해 ‘준강간’ 혐의로 체포영장까지 나왔지만, 검찰은 2016년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TBS의 전직 간부인 야마구치가 아베 총리(安倍晋三)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야마구치 전 기자는 아베 총리를 주인공 격으로 등장시킨 ‘총리’라는 책을 집필하는 등 그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토 기자는 2017년 기자회견을 열고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블랙박스’를 출간하며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지만 오히려 성폭행 피해자인 그를 향해 ‘꽃뱀’, ‘위안부’ 등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졌고 살해 협박이 이어지면서 이토 기자는 일본을 떠나 영국에서 생활해야했다. 일본에서 성폭력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신분을 공개하고 피해를 알리면서 이토 기자는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됐다.
이토 기자는 이날 판결 후 법원 앞에서 ‘승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취재진을 향해 “우리가 이겼다”며 “많은 분들이 저를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이 하나의 마침표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받은 상처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 사건이 강간에 대한 일본의 법적·사회적 인식 환경을 바꾸길 바란다. 지금도 혼자 불안해하면서 성폭력 피해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부담이 덜어지도록 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토 기자는 이어 “이 2년간 죽지 않아서 좋았다.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울먹였다. 한편 패소한 야먀구치 전 기자 측은 판결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임보련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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