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문가칼럼
최문형 연재소설
역사소설 ‘제국의 꽃’ (107) 고무라의 귀국
바닥을 구르는 벚꽃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09 06:32:00
 
 
 
고무라 공사님,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선에서의 날들을 접으실 때가 다가오고 있군요.”
 
활짝 핀 벚꽃이 어제 내린 비로 한방에 우수수 떨어진 오후, 안경수는 왜성대에서 고무라와 찻잔을 마주하고 있었다.
 
가토 공사가 오기 전에 마무리할 일이 있어 겨우 수습은 하였습니다만
 
고무라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 며칠 전까지도 베베르 공사와 협의하던 그 일 말씀이군요. 일본이 억울하지 않게 잘 끝났나요?”
 
안경수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고무라의 말투로 보면 낙관적이진 않았다.
 
콧수염 베베르가 끝까지 버티면서 국왕 편을 드는 바람에 고생했어요. 그 인간은 두고두고 밥맛이 없습니다. 이제 본국에 가서 무슨 낯을 들고 살지 막막합니다.”
 
고무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바닥을 구르는 저 벚꽃이 보이시지요? 내 신세가 딱 저겁니다.”
 
계시는 동안 제가 잘 보필하지 못하여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번 일은 저도 이범진에게 뒤통수를 맞았답니다.”
 
안경수가 사과했다. 하지만 누가 아관망명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조선 사절단은 내일이면 러시아에 도착합니다.”
 
고무라의 이 말에 안경수가 화들짝했다.
 
공사님!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다 조치해 두었지요. 밀정이 따라붙어 요소요소에서 사절단 일행의 행동과 대화를 본국에 실시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상하이에서 국왕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민영익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다 알고 있답니다.”
 
고무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역시 대일본제국은 빈틈이 없군요. 일본의 보호 아래 있으면 조선 또한 안전할 텐데요.”
 
하나만 더 알려드릴까요? 베베르와 나 사이에 공식 협약이 다가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기회로 본국과 러시아 사이에 조선을 두고 한 번 더 자세한 협정을 맺을 겁니다.”
 
고무라가 녹차를 한 모금 입에 물었다. 그의 긴 얼굴이 만족감에 쫙 펴져서 더 길어 보였다.
 
그 협정은 귀국에 보다 유리한 쪽이 되겠군요.”
 
그렇고 말구요. 그 일을 위해 나는 조선을 뜨기 전에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본국에서 명령이 왔어요. 국왕과 베베르를 만나 조치할 일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데요?”
 
안경수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엊그제 국왕을 만났지요. 신임장을 제출하고 떠나야 해서요. 그런데 그걸 러시아 공사관에 가서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일본제국의 위상이 뭐가 됩니까? 실랑이 끝에 결국 국왕이 경운궁으로 오셨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국왕은 어떤 분입니까?”
 
화가 치민 고무라의 물음에 안경수는 무어라 대답할지 몰랐다.
 
그분이야
 
안경수가 우물우물하는 사이 고무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보란 듯이 러시아 공사관에 와서 신임장을 제출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경운궁에서 만나니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지은 채 내 손을 덥석 잡지 않겠습니까? 나 참, 기가 막혀서!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돌아가면 내가 귀국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전해 달라’, 이러시면서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도 파악하기 힘듭니다. 하기야조선의 재정이 어렵긴 하지요.”
안경수가 겨우 말을 이어갔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