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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기운차게 울어대는 여름의 끝자락. 이맘때면 전북 완주가 생각난다. 시원하게 펼쳐진 자연풍광이 더위로 타들어 간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완주는 훼손되지 않은 원시 자연과 넘치는 인정으로 존재의 빛을 발한다.
완주는 전라북도의 시·군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역사적으로 한지 생산지로서 명성이 드높았다. ‘전주한지’의 본고장이 바로 완주다. 지도를 보면 두 도시는 한 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깝다. 완주군이 전주시를 꼭 끌어안고 있는 형상인데 생김이 꼭 달걀흰자와 노른자다.
산책에 최적화된 고산문화공원
고산면은 완주 속의 또 다른 노른자위다. 완주의 심장인 듯 도시 한가운데 콕 박힌 고산면에는 고산문화공원이 있다.
잘 전지된 향나무와 자연스러운 그늘을 드리우는 활엽수, 그리고 무궁화 테마식물원 꽃들의 조화가 아름다운 이곳은 전북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분위기가 남다르다. 정렬한 향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유럽의 전원 느낌이 난다.
고산문화공원은 무궁화 180여 품종을 보유한 국내 최대 나라꽃 식물원이기도 하다. 무궁화 전체 품종이 240여 종이니 무궁화 품종 대부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무궁화는 100일에 걸쳐 개화의 줄다리기를 이어 가기 때문에 추위가 오기 전까지 오래도록 정원의 아름다움이 보존된다.
이곳 열대식물원은 또 다른 세상이다. 돔 형태의 유리 온실에서는 일반 환경에서는 볼 수 없는 선인장과 야자수·열대꽃이 자라고 있다. 습한 흙냄새에 실려 오는 희미한 꽃향기가 기분을 업 시켜 준다.
매년 9월 열리는 완주와일드푸드축제
만경강 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개천가에서 늦더위를 식히는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와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아직 여름이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9월 말이면 고산문화공원 일대는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가공되지 않은 야생의 맛을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음식에 대한 완주의 진심과 내공을 실감하게 해 준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산자연휴양림이다.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쑥쑥 뻗어 있는 낙엽송이 아름다운 숲길을 이루는 곳으로 최고의 가족 여행지라 할 만하다.
객실 52개에 야영 사이트 89개를 갖추고 있으며 사계절 언제 와도 그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다면 초가을의 정취에 취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짚신 거는 나무가 있던 싱그랭이 마을
경천면 요동마을 싱그랭이 에코빌은 이름부터 색다르다. ‘싱그랭이’는 신을 벗어 걸어놓는다는 뜻의 신거(新巨)렁이가 음운 변화를 일으킨 이름이다.
싱그랭이 마을에 들어서면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가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은 본디 옛 주막터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나 전주로 부임해 오는 원님 일행이 묵어가던 곳이었다. 나그네는 이곳에서 새 짚신으로 갈아 신으면서 해진 짚신을 느티나무에 걸어 두고 발병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장승길에 서 있는 시무나무는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20리마다 심었던 표시목이다. 이곳에서 8km를 더 가면 과거 고산현 현청이었다. 시무는 스무의 방언이다.
관개시설이 열악한 산골이다 보니 싱그랭이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콩 농사를 지었다. 느티나무 보호수 주변이 죄다 콩밭이다. 콩밭의 바다다.
마을에서 수확한 콩의 판로를 찾던 중에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환경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농법의 콩 농사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일부러 이곳 두부 맛을 보기 위해 찾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친환경 두부 만들기 체험을 진행 중이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콩밭식당을 방문하면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싱그랭이 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복수초 피는 마을 ‘싱그랭이 에코 정원’
느티나무 보호수 구역에서 화암사 가는 길, 드넓게 펼쳐진 콩밭을 지나면 세련된 외관의 유리 온실이 나타난다. 이 한 쌍의 온실이 ‘싱그랭이 에코 정원’이다. 한쪽은 식물을 키우는 육묘장, 다른 한쪽은 야생화 전시관이다.
싱그랭이 마을은 전국에서 소문난 복수초 군락지로 많은 야생화도 피고 진다. 에코 정원은 이를 보존하고 육성하는 차원에서 세운 시설이다. 이런 노력으로 싱그랭이 마을은 2020년 생태관광지 전북도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공동플랫폼 구축과 주민주도형 생태관광 프로그램이 생태관광의 선도적 모델로 공식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폐쇄된 철교 위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구 만경강 철교는 완주군 삼례읍과 전주시 덕진구 화정동을 잇는 다리로 2011년 10월 전라선 복선화 과정에서 폐쇄의 운명을 맞이했다.
원래 이 다리는 만경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1912년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한 게 기원이다. 처음에는 폭 762㎜의 협궤 목교였으나 1928년 레일 폭을 두 배로 확장하면서 철교로 제시공되었다.
다리 앞 안내판에는 스틸거더(Steel-Girder) 형식의 철도 교량이라는 어려운 용어가 적혀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흔히 ‘스틸박스 거더교’라고 하며 공장에서 제작된 스틸박스를 볼트 등으로 조립한 뒤 크레인으로 거더(대들보)를 거치하고 상부슬래브를 타설하는 방식의 시공법이라고 한다.
상부구조의 무게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일반적인 교량 건설에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특이한 공법이 아니라면 굳이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곳에는 새마을호 객차 4량을 개량한 비비정 예술열차 카페가 있어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창가 좌석에 앉으면 동쪽으로 전라선이 지나는 만경강 철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편 비비정(飛飛亭)은 삼례천 북쪽 언덕에 세워진 정자다. 영어처럼 들리지만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을 뜻하는 비비낙안(飛飛落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기록에 보면 한내(삼례천)는 물이 차갑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만경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과거 한내는 소금을 실은 배가 군산과 부안을 쉴 새 없이 오갔던 곳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마무리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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