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0º
습도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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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도시에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있기 마련이다. 경상북도 안동은 유교의 고장으로 집집이 제사를 위해 누룩을 빚고 고두밥을 쪄서 청주를 빚었다. 이 청주를 증류한 것이 소주다.
안동소주는 집집이 레시피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은은한 누룩취를 지니고 있다. 세계인이 반한 향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으로 건너가 만찬장을 빚낸 것도 안동소주였다.
안동소주는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안동의 9개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다.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 두고
농암종택의 ‘일엽편주’는 감미료 없이 쌀·물·누룩만으로 생산하는 알코올 도수 15%의 청주다. 이 술은 소량 생산하기 때문에 사전 예약만으로 판매가 완료된다. 물량이 아닌 품질로 경쟁하여 고급화에 성공한 사례다.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 두고/ 인간세상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 알리오”
이현보의 ‘농암집’ 어부가 첫 소절이다. ‘나뭇잎처럼 작은 조각배’라는 뜻의 일엽편주 레이블은 퇴계 이황이 농암에게 직접 적어준 글씨를 목각하여 일일이 탁본을 뜬 것이다. 알코올 도수 12%의 탁주 ‘꽃술’ 레이블 역시 인쇄가 아닌 수제 탁본이다. 말린 개망초꽃에 물감을 칠한 후 한지로 일일이 눌러 제작한다.
전국에서 일엽편주를 찾는 주문이 빗발치면서 종택 측은 기계화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술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피드백을 듣고는 힘들어도 손으로 담그는 길을 택했다.
현재 농암종택은 한옥 스테이의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다.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은 가옥은 농암의 17대손 이성원 씨가 30년 넘게 공들여 재건한 한옥으로 고택이 지닌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본채에 잇대어 지은 분강서원과 강각·애일당까지 둘러보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선비의 도포 자락을 한 잔에 담아두고
전통적인 안동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45% 전후로 꽤 독한 편이다. 이에 안동소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 젊은층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주식회사 ‘더이음’에서 선보이는 칵테일 ‘병산서원’은 안동소주에 석류 시럽을 넣은 것으로 병산서원 안팎으로 자리 잡은 배롱나무꽃의 붉은빛을 연상시킨다.
한편 ‘도산서원’은 선비의 푸른 도포 자락을 형상화한 칵테일로 안동소주 베이스에 블루 큐라소와 우유가 추가된다. 칵테일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안동 시내 카페 ‘주방’에서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45% 안동소주 스트레이트를 4000원에, 35%를 3000원에 제공한다.
국내산 대마 맥주 ‘헴프맥주’
안동은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삼 삼기 대회를 열었을 정도로 삼베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 삼베의 원료 식물이 바로 대마다. 대마는 환각 성분인 THC의 함유량을 기준으로 0.3% 이상을 마리화나로, 그 이하를 헴프로 구분한다.
헴프는 현재 의료용·산업용으로만 유통이 가능하다. 대마에 든 CBD라는 성분은 뇌전증·파킨슨·치매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헴프의 미래성을 눈여겨본 글로벌 맥주 시장이 대마를 원료로 하는 맥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안동에서도 오랜 연구를 거쳐 헴프맥주 생산에 들어갔다. 직접 헴프맥주 맛을 보니 일반 라거와 유사하면서 탄산이 적고 고소한 맛이 강했다.
김영민 햄프앤알바이오 대표는 “헴프씨드 특유의 고소한 향이 있다. 대마유의 원료인 헴프씨드는 오메가3·6·9의 비율이 완벽에 가까워, 가장 이상적인 식물성기름으로 통한다. 헴프맥주를 마셔 보면 다음 날 숙취가 덜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깔끔하고 투명한 맛! 청포도와인
264 청포도와인은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의 시 ‘청포도’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해당 와인은 국산 품종 ‘청수’로 제조하는데 전량 이육사의 고향 도산면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다.
레이블은 절정·광야·꽃 세 가지로 구분된다. ‘절정’은 미디엄드라이 당도에 알코올 함량은 13.5%이다. 12.5%의 ‘광야’는 맛이 드라이하며, 11.5% ‘꽃’은 미디엄스위트 당도를 지닌다. 이육사 와인은 750ml 기준 1명에 3만 원을 받고 있다.
왕과 왕비가 되어보는 시간
낮술 한 잔으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면 그 기세를 몰아 한복 체험에 나서보자. 안동 도산면 서부리에 조성된 선성현 문화단지는 예끼마을·선성수상길과 연계해 안동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결혼식에서 폐백 의례가 사라지면서 요즘 신랑 신부는 선성현문화단지 한옥체험관에서 숙박을 하고, 한복 체험 사진을 기념으로 남긴다. 한옥체험관의 객실은 총 10개로 2~8인까지 다양한 인원이 묵을 수 있다. 외관은 멋들어진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되어 있어 자고 씻는 데 따른 불편함은 거의 없다.
한복 체험의 경우 선성현문화단지 내 장관청에서 진행된다. 잠깐이나마 조선 시대 왕과 중전·아씨·수령·유생·호위무사가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경험뿐인가. 멀리 안동호를 배경으로 들어앉은 전통 한옥이 사진의 완성도를 더한다. 안동=임유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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