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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제국의 꽃’ [235] 대한제국 병사들
건장하고 우람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4 06:30:10
 
 
1901년 초 대한제국군의 총 병력 수는 시위부대(5192)·호위대(735)·친위대(4324)의 서울 중앙군 병력(1251)과 진위대 병력(18582)에 합산해 28833명에 달했다. 전국의 포군(砲軍)과 무관학교 생도 및 교관들을 더하면 한국군 총 병력은 3만 명을 훨씬 넘었다. 병력이 급증하고 무기 보유가 많아지면서 국방예산도 급증했다. 1896년에는 전체 예산 대비 군부 예산 비율이 21.38%였는데 가파르게 증가하여 1901년 이후에는 전체 예산의 40%에 도달했다. 1901년경 대한제국은 군사강국이었다.
 
대한의 병사들은 개인적 자질 면에서도 중국이나 일본 병사들보다 월등히 앞섰다. 1894년 여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지고, 일본이 청나라에 조선 출병을 통보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왔던 오스트리아 작가 에른스트 폰 헤쎄-바르텍(Ernst von Hesse-Wartegg)은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의 병력 자원은 우수해서 중국 병사들보다 단연 나았고, 난쟁이 같은 작은 일본인과는 아예 비교할 것도 없었다. 서울에서 내가 본 많은 병사들 가운데 키가 175.1cm(5피트 9인치) 이하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건장하고 우람했으며 영양 상태가 좋았고, 수염이 난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어 경비대로서는 훌륭한 사내들이었다.”
 
1901년에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아주 쓸 만하고 교육 능력 있는 군인 자원임을 보여 주는 신선한 아침의 나라의 이 국방군들이 무조건 군악을 울리며 행진하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최고로 특별한 감동을 준다.”
 
그는 일생동안 전 세계를 유랑하여 29권의 책과 700여 개의 논고를 남긴 작가이다. 그의 회고대로 병사 개개인의 체격 면으로 보아도 대한제국은 군사강국이었다.
 
대한제국은 이런 군사력을 바탕으로 1900년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행정구역에 편입시켰다. 19038월에는 한국인이 들어가 살던 북간도를 제국 영토로 확립하고 이범윤을 파견하여 북간도를 행정 관리했다. 대한제국은 3000리 강토를 4000리로 확대해 광개토대왕 이래 최대의 영토를 지닌 군사강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물론 한국군이 갑진왜란에서 일본군과 싸워 패배했지만 당시의 일본군은 이홍장의 양무운동으로 양성된 청국의 신식 군대와 세계적 군사강국 러시아의 육·해군도 이기지 못한 군대였다.
 
대한제국군은 19078월 군대 해산과 동시에 민군(의병)과 융합되어 국민군으로 전환된다. 한국군은 1910년까지 전개된 국민 전쟁에서 정규 일본군에 맞서 싸워 연전연승했다. 대한제국이 군사강국이었다는 사실은 대한제국 패망 10년 후인 19206월 홍범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의 봉오동대첩, 192010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 등에서 다시 입증된다.
 
1911년부터 19193·1운동 이전과 이후에 대한제국육군무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육 훈련을 맡았다. 이렇게 양성된 8000명의 장교들은 광복 전쟁을 하루도 빠짐없이 치러 내어 마침내 1945년 독립을 쟁취한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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