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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장 우문개를 불러 추궁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어찌 부교가 건너편 기슭에 미치지 못했는가?”
“송구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우문개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하조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독단으로 한 일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양제는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물렸다. 이미 수군의 시체가 요하 동쪽 기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도하 작전에서 잃은 군사 수만 해도 무려 3만에 이르렀다.
양제는 첫 전투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튿날부터 매섭게 군사들을 몰아쳤다. 하조가 이틀 만에 부교를 완성하자 양제는 그동안 속속 집결한 후속 부대들을 투입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좌익위 대장군 우문술(宇文述)과 우익위 대장군 우중문(于仲文)이 이끄는 대군이 일거에 부교를 건너 진군했다. 의경이 거느린 고구려군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적의 인해전술을 막아 낼 재간이 없었다. 한동안 방어전을 펼치던 고구려 군사들은 적당한 때를 보아 강변을 내주고 요동성으로 후퇴했다.
이렇게 해서 수군이 요하의 동안을 점령했다. 그들은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승리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구려군으로서는 적의 대군을 열흘이나 요하에 묶어 두었으니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 할 수 있었다.
을지문덕은 시시각각으로 전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자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맥철장은 전사웅·맹차 등과 함께 부교에서 뛰어내렸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강기슭으로 나아갔다.
이때 강 서안(西岸)에서는 부교가 짧아 선봉대가 강에 빠지고 있는 것을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양제는 친히 칼을 빼 들고 군사들을 독려해 부교로 밀어 넣었다.
강가에서 고구려 군사들에 둘러싸여 고군분투하던 맥철장은 자신이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호위하던 군사들은 물속에 머리를 박은 채 물결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이를 본 맥철장은 숙군성에서 노인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수군은 모두 물속에 잠길 것이다.”
노인의 저주 때문에 이리된 건지, 운명을 예언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실현된 것이었다. 맥철장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 무지막지한 충격이 가해졌다. 맥철장은 그 자리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친 고구려 군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새까맣고 주름진 피부·무표정한 얼굴·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의 눈동자. 바로 숙군성에서 죽은 노인이었다. 물속으로 잠기는 그의 부릅뜬 눈에 회한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분랑장 전사웅도 최선봉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웠지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 역시 온몸에 화살을 맞고 캄캄한 물속에 잠겼다.
맹차는 상황이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몸을 피해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양쪽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해 대꼬챙이에 꽂힌 개구리처럼 물속에 처박혔다.
강 건너편의 양제는 비로소 부교가 짧아 선봉대가 죽어나간다는 보고를 받고 분노로 치를 떨었다.
그는 당장 우문개를 불러 추궁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어찌 부교가 건너편 기슭에 미치지 못했는가?”
“송구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우문개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하조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독단으로 한 일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양제는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물렸다. 이미 수군의 시체가 요하 동쪽 기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도하 작전에서 잃은 군사 수만 해도 무려 3만에 이르렀다.
양제는 첫 전투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튿날부터 매섭게 군사들을 몰아쳤다. 하조가 이틀 만에 부교를 완성하자 양제는 그동안 속속 집결한 후속 부대들을 투입했다. 명을 받은 좌익위 대장군 우문술(宇文述)과 우익위 대장군 우중문(于仲文)이 이끄는 대군이 일거에 부교를 건너 진군했다. 의경이 거느린 고구려군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적의 인해전술을 막아 낼 재간이 없었다. 한동안 방어전을 펼치던 고구려 군사들은 적당한 때를 보아 강변을 내주고 요동성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수군이 요하의 동안을 점령했다. 그들은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승리했다고 자위했다. 고구려군으로서는 적의 대군을 열흘이나 요하에 묶어 두었으니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 할 수 있었다.
을지문덕은 시시각각으로 전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자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①
고구려 서변 방어의 중심인 요동성은 태자하를 해자로 활용한 평지성(平地城)이었다. 방형(方形)의 성곽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나뉘는데, 외성의 네 귀퉁이에는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점장대를 세웠다. 성곽의 총길이가 20여 리에 이르는 큰 성으로, 성벽 위는 말이 양방향에서 달려와도 부딪치지 않을 만큼 넓었고 궁수를 보호하기 위한 엄호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성문은 북쪽과 동쪽으로 나 있는데 주위를 치(雉)로 감싸서 적군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요동성은 북으로는 백암성·개모성, 남으로는 안시성·건안성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함으로써 서변 방어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을지문덕의 지시를 받은 요동성주 고연탁은 3만에 이르는 정병(精兵)을 조련하는 한편 군량미 50만여 석을 비축하고 무기와 성벽을 수리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했다.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며 싸운다면 아무리 많은 수의 수군이 공격해 온다 해도 견뎌 낼 수 있었다.
고연탁은 성 곳곳을 순시하며 군사들을 독려하고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폈다. 결전을 앞둔 장졸들은 긴장한 가운데서도 차분히 전열을 정비하고 전의를 가다듬었다.
드디어 수의 대군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요동성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납게 펄럭이는 기치가 하늘을 뒤덮고, 색색의 갑옷이 대지를 끝없이 메웠다. 고연탁은 이처럼 많은 군사를 본 적이 없었기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금세 냉정함을 되찾고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적의 허실을 살폈다.
수군은 요동성을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란 말처럼 요동의 벌판은 온통 수나라 군사들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공격에 앞서 좌익위 대장군 우중문이 회유(懷柔)에 나섰다.
“내일까지 말미를 주겠다. 굳이 목숨을 버릴 필요가 있겠느냐. 항복하면 저마다 지위에 합당한 예우를 받게 되리라!”
요동성의 고구려 장수와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고연탁이 성 아래를 굽어보며 외쳤다.
“칼을 들었으면 휘둘러라! 창을 들었으면 찔러라! 활을 들었으면 쏘아라! 전장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
고구려군의 결의는 요동성의 성벽만큼이나 굳건했다.
요동성을 향한 수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양제는 요동성 공략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공성에 필요한 신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생산된 무기들은 높고 견고한 고구려 성을 공략하는 데 적합했다. 십여 장 높이의 성벽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는 운제(雲梯)와 정찰용으로 망루를 높인 소차(巢車), 성벽 가까이 접근해서 땅을 팔 수 있게 한 전호피차(塡壕皮車), 사정거리를 늘린 발석차(發石車), 거대한 쇠망치로 성문을 부수는 당차(撞車) 등이 실전 배치됐다. 거대한 기계들을 움직이는 치중 부대가 따로 편성됐다.
양제는 이런 신무기들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리라 믿었다. 게다가 성의 수비군보다 수십 배나 많은 병력이라면 함락시키지 못할 성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해가 떠오르자 정적을 깨는 휘파람 소리에 이어 둔중한 진동이 성벽을 타고 전해졌다. 성벽 위의 군사들은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보루 위에서 적의 공격을 알리는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군사들은 황급히 각자의 위치로 나아가 전열을 정비했다. 전령이 깃발을 휘날리며 성주부로 뛰었다. 막사 주변을 서성이던 황구(黃狗) 한 마리가 덩달아 짖으며 뒤를 따랐다. 거대한 쇠망치로 벽을 때리는 듯한 파열음이 연속해서 들렸다.
아장 물벽장(勿碧壯)이 남쪽 성벽 아래 벌판을 바라봤다. 수나라 군사들이 장마철에 무성하게 자라난 풀처럼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발석차들이 늘어서더니 족히 수백 근은 됨직한 바위를 날렸다. 수백 명의 수군이 바위를 나르고 있는 모습은 커다란 먹이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개미 떼 같았다.
물벽장은 이처럼 커다란 발석차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외관만 거대한 게 아니라 사정거리 또한 놀라울 정도로 길었다. 화살이 미치지 않을 만큼 먼 곳에서 날리는데도 바윗돌이 성벽에 가까이 떨어졌다. 이를 보고 놀랐지만 아장은 금세 냉정함을 되찾았다. 아직은 바윗돌이 성벽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저것이 좀 더 가깝게 접근하면 적지 않은 피해가 날 것이었다.
물벽장은 군사들을 동원해 성벽 주변에 마름쇠를 뿌리고, 돌덩이를 날릴 수 있는 석포(石砲)와 대형 쇠뇌를 배치해서 수군의 전진을 막게 했다. 마름쇠는 밤송이처럼 쇠촉이 나 있어 진격하는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석포와 쇠뇌는 정확도와 사정거리가 뛰어난 무기였다. 게다가 수군의 공격에 대비해 많은 돌덩이와 화살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부족함 없이 쓸 수 있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돌과 화살 세례를 받자 거침없이 진격하던 수나라 군사들도 주춤했다. 하지만 석포와 쇠뇌 공격만으로는 적의 진격을 길게 막을 수 없었다. 고구려군의 거센 저항에 잠시 물러섰던 수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움직였다.
여러 번 무두질해 쇠뇌조차도 뚫지 못할 정도로 질겨진 가죽을 씌운 전호피차를 앞세우고, 그 뒤에 방패를 든 수나라 보병이 운제를 끌고 성벽으로 접근했다. 무리 속에는 무시무시한 쇠뭉치가 달린 충차와 정찰용 소차 등도 눈에 띄었다. 기계들은 체격이 큰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둔중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움직임을 보였다.
물벽장이 유심히 보니 기계를 수송하는 치중 부대의 군사가 쓰러지면 뒤를 따르는 새로운 인원이 그 자리를 메우기 때문에 진격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물벽장이 군사를 독려해 수군의 접근을 저지하고 있을 때, 요동성주 고연탁이 급히 남쪽 성벽 위로 달려왔다. 그는 급히 성주에게 군례를 올리고 전황을 보고했다.
“아무래도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모양입니다. 군사가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인해전술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저들의 수효가 많다고는 하나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다.”
고연탁은 장수들을 다독이고 주변을 둘러봤다. 성벽 위의 군사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적군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임동주 글 김종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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