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는 겉보기에 튼튼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래전부터 심각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정부의 재정 지원 부족이다. 건강보험법은 국가가 보험 재정의 20%를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지난 여러 정부에 걸쳐 정부는 법정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 지원은 13% 내외에 머물렀으며, 이는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사안이기도 하다.
최근 건강보험노조는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64.9%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이는 OECD 평균(76.3%)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그러면서 역대 거의 모든 정부가 국민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결국 정책 실패를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보장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건강보험이 탄탄한 공공의료 기반 위에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의료기관은 전체의 5.5%에 불과하며, 이 역시 OECD 평균인 65.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로 OECD 최저 수준이다.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는 민간 병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 공급이 민간에 집중되면 과잉 진료와 고비용 구조가 생기기 마련이고, 게다가 정부의 재정 지원마저 미흡하니 결국 그 부담을 국민이 떠안고 있는 현실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 도드라진다. 일본은 지역 단위 공공병원이 촘촘하게 운영되고 있고, 고령화 사회임에도 높은 보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단일 보험자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만은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36%를 직접 지원하고 있다. 공공의료 강화와 재정 투입을 통해 보장률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 문제는 또 다른 구조적 불균형을 낳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 가입자 전체는 약 2조 원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약 1조3000억 원의 보험급여를 수령해 약 7400억 원의 재정 흑자를 냈다. 통계상으로는 흑자가 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이 안을 들여다보면 중국인 가입자와 피부양자에 의한 특정 국적 집중 현상이 두드러진다.
중국인은 전체 외국인 가입자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피부양자 비율은 전체의 90% 이상이다. 2023년 기준 중국인 피부양자는 11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수령한 1인당 건강보험 급여는 평균 195만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인보다 높을 뿐 아니라 타 외국인보다도 77%가량 많은 수준이다. 일부는 국내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으면서도 피부양자 자격을 얻고, 고가의 진료만 받고 출국하는 식으로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정부는 2019년부터 외국인 지역가입자에, 2023년부터는 피부양자에 ‘6개월 이상 체류’ 조건을 적용했지만, 형식적인 체류 요건만으로는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국적별로 건강보험 수급 구조의 편차가 크다는 점은 현행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실제로 중국 검색 사이트 ‘바이두’에선 ‘한국 국민건강보험 본전 뽑기’ 영상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결국 건강보험 제도의 위기는 외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법을 지키지 않은 정부, 공공책임을 방기한 정책, 그리고 제도적 허점으로 국민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법정 국고 지원을 이행하고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대하며 외국인 자격 심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을 재정비해야 한다. 보험료를 내고도 혜택을 못 받는 국민이 더 이상 손해 보지 않도록 정부 당국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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