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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접속의 시대와 ‘다이소 인생’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6 06:30:41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몇 년 전 집에서 5분 거리에 국민가게 다이소가 들어왔다. 예전에는 다이소에서 살 물건을 메모해 두었다가 큰 맘 먹고 길을 나섰는데 이제는 지척에 있으니 심심할 때마다 들러서 눈에 띄는 것을 챙겨 오면 된다. 여자들에게는 집안 곳곳에서 쓰이는 살림 용품이 재미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주방에서 쓰는 물건들이다.
 
다이소는 특허 신상품 천국이다. 생활하면서 이런 물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신제품으로 속속 올라온다. 살림에 한없이 서툰 나는 초보 주부 시절에 칼질하느라 고생했다지금도 가끔 손가락을 베이지만 그 시절에 선배가 권해 준 요리용 아이템들을 소중히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독일제·일본제·미국제 등등. 소중한 추억의 물건 중에는 아직도 싱크 서랍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요즘 다이소에 가 보면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섬세하게 만들어져 내게 손짓한다. 엊그제 다이소 나들이의 목적은 속옷 정리용 작은 바구니 몇 개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이소를 나서는 나의 손에는 각종 물건들이 빼곡히 담긴 대형 종이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이것이 다이소의 진실이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 다이소는 지하에 자리 잡고 있고 규모도 아주 큰 편은 아니다. 2층이나 3층으로 구성되었다면 나는 양손에 다이소 봉투를 들고 나왔을 것이다. 실상 나는 다이소를 멀리하고 있다. 그곳은 나의 시간과 돈의 블랙홀이다. ‘과연 이 가격에 이 상품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드는 저렴함과 아니, 세상에 이런 물건도 있네!’ 싶은 다양함이 어울려 온갖 신기함으로 나를 유혹하니 한번 빠져들면 시간과 돈이 순삭 된다.
 
요즈음 다이소는 뷰티 제품에서 품절템을 내놓았다. 특정 제품을 구하러 소비자들이 오픈런(open run)’도 불사한다는 소식이다. 오픈런은 주로 고급백화점이나 명품매장에 있는 일이었다. 명품 구매자는 그래도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런(run)을 잘하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가게 다이소는 어떤가? 착한 가격 덕분에 세상 초유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게다가 이 경쟁은 글로벌하기까지 하다. 한국에 온 외국 관광객도 다이소로 직진하고 있으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이소면 집도 지을 수 있어요.”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다. 다이소는 조상님과의 교류도 지원해 준다. 이번 명절에 다이소는 제삿상 차리기에도 참견하여 이 세상을 넘어 저 세상 문화까지 챙겨 줬다. 겨울이 시작될 때는 반려묘와 반려견의 패션생활에도 관여했으니 종() 간의 사귐에 기여했고, 발렌타인데이에는 스스로 만든 초콜릿을 기획했으니 이만하면 출생율에도 한몫 할 기세이다. 최근에는 홈카페에 떡 하니 자리 잡을 커피원두도 출시했다.
 
게으른 내가 다이소를 즐기는 법은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다이소에서 꼭 사야 할 아이템을 알려 주는 유튜브 채널을 관람하는 일이다. 부지런하고 친절한 유튜버들은 다이소 유용템을 콕콕 짚어 주고, 나 같은 기계치를 위해 다양한 사용법까지 시연해서 보여 준다. 누워서 영상을 보던 나는 , 저런 게 다 있다고?’ 하면서 몸을 일으켜 메모지를 찾는다. 그렇게 다이소 제품들이 빽빽이 적힌 메모지가 몇 장 책상 위에서 굴러다닌다.
 
하지만 물건들은 그저 메모지 안에만 있을 뿐, 시간이 흐르면 인생 위시리스트(wishlist)’처럼 서서히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아직은 많은 내 생활 때문이다. 품절템을 사려면 매장 여러 곳을 다니거나 오픈런을 해야 하는데 다이소 쇼핑을 가기에는 처리할 일·생각할 일이 자못 많다.
 
그렇다. 인생이란 게 다이소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넘어 인류가 향한 곳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교차점이다. 오프라인에서 주로 생활했던 사람들이 온라인 생활까지 만끽하고 있으니. 지난 달 학교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방학 연수는 온라인이 병용되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전문강사의 온화한 얼굴이 벽면 하나를 가득 채웠다. 강의도 줌을 통해 하는 것이 많다.
 
이렇게 집과 사무실·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시간과 장소의 자유로움 속에서 우리는 머리에 쥐가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기술과 패러다임의 발전은 무한의 선택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화급히 자신을 찾는 스마트폰 속 사람과도 동시에 상대를 해야 한다.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수사관들은 대상자의 생존 신호를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한다. 그렇다. 산다는 게 너무도 복잡하다. 다이소 매장처럼 삶은 신기하고 다양하다.
 
한동안 공유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제 소유의 시대가 아닌 공유의 시대, 그리고 접속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많은 학자가 외쳤다. 오프라인 속에서 온라인을 시시각각 경험하는 우리는 접속하며 산다. 잠시라도 접속이 끊어지면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이소의 활기찬 공기를 느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접속의 틈바구니를 헤쳐 나가며 요구되는 것은 바로 선택이 아닐까? 우리는 숨 쉬면서 시시각각 선택을 한다. 출근을 위해 뭘 입을지, 어떤 신발을 신을지, 승용차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백팩을 멜지 서류가방을 들지, 점심은 뭘로 먹을지, 동시에 들어온 세 건의 메시지 중에 무엇부터 읽고 답장을 할지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다이소 인생은 축복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현명한 접속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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