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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쓰는 역사 [13]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 민들레꽃
납북된 남편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은 ‘일편단심 민들레’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7 17:28:44
 
▲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 윤상구 사진작가
 
길가에 자생하는 민들레를 보면 꼬리를 물 듯 뒤따르는 연상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첫째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을 통해 민들레꽃의 생명력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선한 영향력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중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이라는 표현은 민들레의 생명력을 실감 나게 나타낸 압권이다. 그 외에도 이 소설 곳곳에 숨어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 팍팍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두 번째 연상되는 것은 홀씨다. 꽃이 지고 나면 솜털 같은 깃이 달린 홀씨 덩어리들이 또 한 번 장관을 이룬다. 그 홀씨들이 바람 타고 날아가서 풀 한 포기 꽂힐 자리 없어 보이는 돌 틈이나 아스팔트 균열 안에 자리잡고 있다가 이듬해 새롭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홀씨가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을 널리 전파하는 주역인 셈이다.
 
임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민들레에 투영한 노래
 
▲ 민들레는 풀 한 포기 꽂힐 자리 없어 보이는 돌 틈이나 아스팔트 균열 안에서도 싹을 틔운다. 윤상구 사진작가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편단심 민들레노래이다. 길가의 노란 민들레꽃을 보면 어느새 입안에서 이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얻어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떠난 임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간절한 그리움 속에 살아온 자신을 민들레에 투영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1981년 가수 조용필이 발표한 일편단심 민들레야노래 가사는 특별한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72세이던 이주현은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제목의 자전적 이야기를 신문에 투고했는데 이 원고 첫머리에는 625전쟁 때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625전쟁 때 신문사 국장이던 남편은 북한군에 납치되어 끌려갔고 부부는 영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주현은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어렵게 살았지만 평생 모은 돈을 전쟁 전 남편이 몸담고 있던 신문사에 기부했다. 그 돈이 거름이 되어 남편 이름이 붙은 수남 장학금이 만들어졌다.
 
밟혀도 밟혀도 고개를 쳐드는 민들레같이 살아온 세월
 
1981년 당시 이주현은 자신의 사연을 담은 기사에서 수남! 이렇게 불러볼 날도 이제 오래지 않겠지요. 어언 접어든 내 나이가 고희를 넘겼으니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되리까. 당신을 잃은 지도 30년 성상, 밟혀도 밟혀도 고개를 쳐드는 민들레같이 살아온 세월, 몇 번씩이나 지치고 힘에 부쳐 쓰러질 듯하면서도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겨왔어요라고 말했다.
 
또 이주현은 생사를 알 길 없는 남편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 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내게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정()이 없었다면 붓대를 들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원고 일편단심 민들레야첫머리에 썼다.
 
일편단심 민들레야노래 중 그 여름의 광풍은 부부의 평화로웠던 일상을 할퀸 전쟁을, ‘낙엽 지듯 가시었나는 그해 가을 남편이 납북된 상황을 가리킨다.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생사를 모르지만 이미 천국에 갔을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남편이 떠나면서 걱정하지 말아요, 잘 다녀올게!”라고 했던 그 목소리를 말한다. 그 자서전을 읽고 감동한 조용필은 이주현에게 연락하여 노래를 만들겠다는 뜻을 전했고 그렇게 일편단심 민들레야노래가 탄생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비극
 
북한에 살던 많은 사람이 전쟁 전부터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남한으로 왔다. 그래서 북한에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게 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들을 납치해갔다. 서울 북쪽에 있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 공산군에 끌려간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예술가·학자·기술자·의사·교사·농민·대학생 등이었다.
 
전쟁 납북자는 96,000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전쟁 발발 이후 3개월 동안 납북되었다. 그들은 주로 자택이나 그 근처에서, 그러니까 가족이 보는 앞에서 납치되었다. 하지만 휴전 회담에서 납북자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북한 대표는 사람들을 납치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결국 625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자들은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이주현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들레가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을 일편단심으로 기다리며 일생 눈물을 삼킨 것이다.
 
납북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또 아직도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남한에 살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대한민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 척박한 땅에서 몸을 낮추고 싹을 틔우는 민들레, 와중에 예쁜 꽃을 피워내고 홀씨로 생명력을 전파하는 민들레를 볼 때마다 우리는 납북자들을 기억하고 그 가족들의 아픔을 헤아려야 할 일이다. 이는 그들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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