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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할 연(戀)과 사랑 애(愛)가 한 단어로 쓰이기 시작한 지 100~120년 정도 된다. 러브(love)를 戀·愛·어여삐여길 총(寵)·어질 인(仁) 등을 동원해 번역하던 일본인들이 戀愛(렌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 유학하던 중국‧조선인들을 통해 각각의 모국어로 편입되기까지 동북아시아에선 남녀 사이 감정을 표현할 때 통상 정(情)이나 색(色) 등의 한자가 쓰였다.
연애는 춘심을 동반한 이성관계와 전혀 다른 차원의 감정으로 규정됐다. 특히 여성을 향한 남성의 설레임‧기다림을 통해 간절해진 감정, 육욕이 배제된 ‘플라토닉한 그 무엇’이어야만 했다. 괴테가 말한 ‘(우리를 한없이 높은 곳으로 이끄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성모마리아 숭배 전통을 가진 서구적 문화 심리의 연장선에 있다면, 동북아에서 연애란 그런 류의 감성을 재해석한 신문물에 가까웠다.
‘남녀 간 정신적 사랑’의 형태가 19세기 후반까지 한‧중‧일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말씀(로고스)이 곧 육신을 쓴 예수라는 ‘성육신(成肉身)’ 개념이 정신‧육체를 철저히 구분한 발상인 데 비해 한자 문명권에선 몸과 마음이 한덩어리다. 10대 중·후반 이몽룡과 성춘향처럼 서로를 향한 호감이 육체관계로 이어지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래서 춘향전을 근대적 의미의 연애소설로 보기 어렵다. 원본엔 ‘39금’ 수준의 적나라한 잠자리 묘사로 가득한 반면, 상대방을 향한 동경이나 탐색 단계(이른바 ‘밀당’ ‘썸타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양반가 도련님 몽룡은 자기 부모 눈치를 볼지언정 하층민 춘향의 마음을 얻고자 마음 졸였을 리 없다.
2018년 화제작 tvN 미스터션샤인의 명장면 가운데 ‘러브가 무엇이오?’ 대목이 있다. 구한말 대가집 규수이자 의병·저격수 고애신(김태리 분)은 조선 노비 출신 미국인 유진초이(이병헌 분) 공사대리를 마주치자 영어학당에서 접한 요령부득 단어의 정체를 물어본다. 이후 우여곡절 두 마음이 신분장벽으로 애태우다 장차 그것을 돌파한다. 일련의 과정이 연애적이긴 하지만 아직 연애의 시대는 아니었다.
1920년대 들어 조선 땅에 모던보이·모던걸이 등장하고 연애는 신식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게 된다. 동시대 중국에서도 연애란 수천 년 구습과 싸우는 지식인들의 사회적·정치적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근대인의 내면과 사적(私的) 영역을 만든 핵심 메커니즘이 바로 연애였다. 무수한 연애사가 근·현대문학사의 중심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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