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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와 대한민국 [6]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삶 ②
조국을 사랑한 마이클 이의 美CIA 40년 생생한 증언
마이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1 06:30:20
▲ 마이클 이(Michael P. Yi) 박사
[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미국의 유력 인사들과 인맥 형성
 
이 무렵 미국에서는 이승만에 대한 재인식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벅 여사는 이승만을 20세기 최고의 전략가라고 극찬했으며 미 국무성에선 이승만의 책 ‘Japan Inside Out’을 수십만 권 사서 군인들에게 필독서로 배포했다. 19416월에 뉴욕에서 출판된 이 책은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이 출간되어 성공을 거두자 이승만은 여세를 몰아 미국의 유력 정치인·학자들과의 인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당시 육군 소령 맥아더였다. 그 사람이 바로 훗날 6·25전쟁 때 한국을 지켜 준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원수다.
 
당시 맥아더 소령의 아버지도 육군 장성이었는데, 아버지 맥아더는 구한말 고종 황제 시절 조선을 방문했었다. 그때 고종 황제가 그에게 국보급 향로를 선물했는데 그는 그것을 가보로 소중히 여기다가 세상을 떠날 때 아들에게 유물로 남겨 주었다. 아들 맥아더도 그 향로를 너무 좋아해서 태평양전쟁 때에도 자신의 숙소에 두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향로는 전투 중에 부관의 실수로 분실되었다.
 
1948815일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 기념식장에 오랜 친구인 일본 주둔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를 초청했다. 당시 맥아더 원수는 80개국의 기자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그에게 분실된 향로와 동급의 국보급 향로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각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을 받은 맥아더 원수는 너무나 좋아했다. 그는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여느 장군들처럼 연설하지 않고 마치 목사처럼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새로 탄생하는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보호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의 축하 연설 내용은 1948816,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한국 출병을 주장한 맥아더·덜레스·빌리 그레이엄
 
미국은 과거에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때 특별예산이나 추가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예비비를 사용했다. 예비비만으로도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6·25전쟁 때는 특별예산을 책정했다. 그리고 전쟁 비용으로 쓰고 남은 돈은 전후복구 사업에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10년간 구호물자를 풀어 한국경제를 지원했다. 이는 분명히 이승만의 대미 외교의 결실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당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 파병을 강력하게 건의한 세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맥아더 원수였는데 그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 사람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역임하게 되는 존 포스터 덜레스였다. 그는 미국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침략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덜레스는 이승만과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기숙사의 같은 방을 쓴 동창생이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논문을 같이 쓴 끈끈한 친구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미국의 한국 파병을 주장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였다. 그는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공산당의 핍박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애원했다.
 
 
이승만의 정치 철학 기조는 친미 외교이며 반공 투쟁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이 형성되었을 때 미국을 위시한 세계 어느 나라도 공산주의의 모순과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일당 독재체제가 몰수하고, 일당 독재 체제가 일인 수령 숭배로 유지되는 것이 공산주의의 본질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공산주의는 때가 되면 반드시 망한다고 예언했다. 그런데 건국한 지 70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얼간이들이 대한민국의 기반을 흔들고 괴롭히고 있다.
 
고르바쵸프보다 66년 앞서 공산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다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임시정부는 소련으로부터 200만 루불의 재정 지원을 약속받고 그 자금의 일부가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상해임시정부가 타국의 경제 지원을 받은 유일한 사례다. 당시 임시정부 요인의 절반 이상이 친소 성향의 인사들이었다. 이승만은 절대로 그 돈을 받아선 안 된다며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200만 루불 중 일부인 60만 루불이 들어왔으나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상세한 자료가 없다.
 
이승만은 1923년에 공산당의 당부당이란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공산당의 정체를 비판한 세계 최초의 반공 논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산주의 이론의 핵심은 소득과 자산의 평등 분배다. 평등 분배는 생산성 경쟁과 창의를 저해하고 결국은 문명 발전을 파괴하며 인간을 영혼과 생명이 없는 독재자의 소지품으로 변하게 한다.”
 
소련은 쌍둥이 개념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개방)와 글라스노스트(정보 공개)를 주장한 최고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쵸프에 의해 1991년 해체되었다. 그 직전인 1989년에 고르바초프는 연설에서 이승만 박사와 거의 동일한 주장을 펴며 공산주의의 모순을 지적했다. 이승만보다 66년 늦게 그가 공산주의의 모순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구 소련에선 소련 정부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국고가 탕진되어 2000만 명이 아사했고 중국에서는 3800만 명이, 북한에서는 300만 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죽어 갔다.
 
8·15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의 3년여 기간, 미국 정부도 좌우합작의 함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건국 직전 남북합작의 국론이 국내에서 들끓고 있을 때 미국 군정청은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절대 반대의 입장을 고집하자 미 군정장관 하지 중장은 이승만을 고집 세고 골치 아픈 늙은이라고 미워하며 그를 한 달간 가택연금시킨 일까지 있었다.
 
연방제 통일의 함정
 
1917년 소비에트 연방이 출범하고 코민테른(1919-1943)’의 기치 아래 세계 여러 곳에서 총 40여 개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했는데 이들이 모두 비슷한 좌우합작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승만이 지키는 대한민국은 그 소용돌이치는 사조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공산화된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좌우합작 과정에서 우파 지도자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노선을 달리하는 각기 다른 좌파들이 연립 형태로 뭉쳤다가 1년 이내에 핵심 세력 일당만 존재하는 일당 독재체제로 정리가 되었다.
 
북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과 소련 앞잡이 김일성, 민족사회주의자 현준영이 권력 전면에 나섰지만 현준영은 바로 암살되고 조만식은 가택연금 되었다가 귀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최종 주자가 된다.
 
북한에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 출신 김일성 계열은 정부 수립에 동참했던 연안파·소련파·갑산파·국내파를 반당 종파로 몰아 모조리 숙청했다. 김구식() 남북합작이나 김대중·노무현·문재인식 연방제 통일 주장은 이름만 달랐지 세계 여러 공산국가들이 공산화되어 간 과정과 동일한 함정이다.
 
프로필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CIA(중앙정보국) 24)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CIA ·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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