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방산 기술 못 지키면 깨진 항아리 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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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6 00:02:40

전설로 내려오는 하수분(河水盆)이란 게 있다. 진시황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구리로 된 커다란 항아리다. 재물이 계속 나오는 단지 또는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황하강의 물(河水)을 길어다 여기에 채웠다고 전해진다. 크기가 커서 한번 채우면 아무리 물을 써도 줄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와서는 ‘화수분’이란 말로 바뀌었다.

비슷한 얘기로 한국에는 무엇이든 주문하는대로 쏟아져나오는 요술 맷돌이 있다. 동화 속 이야기지만 바닷물이 짠물로 변한 게 이 맷돌에 대고 계속해서 소금 내놓으라고 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금이 큰돈이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일본 효고현 키노사키 지역에 전해지는 ‘코 떨어진 지장’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물속에서 건진 지장보살 콧구멍에서 끊임없이 쌀이 나와 콧구멍을 더 넓히려다 코가 떨어져 버렸다는 전설이다. 두 얘기 모두 욕심이 일을 그르친다는 교훈을 주지만 이런 물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화수분이란 말은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전국적인 화두가 됐다. 2021년 1월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하던 시기, 정치권에선 4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적자 국채를 찍어 내면서까지 나랏빚을 늘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항아리라고 다 같은 항아리가 아니다. 물이 줄지 않는 화수분과 반대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고전인 콩쥐팥쥐전에 나온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야 마을 잔치에 갈 수 있지만 밑이 깨진 항아리로선 역부족이었다. 두꺼비가 몸으로 막아 줬다지만 이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일 뿐이다.

현실에서 깨진 항아리에는 물을 채우기 어렵다. 새것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깨진 부위를 접착제로 때우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어떤 이는 새는 물의 양보다 쏟아붓는 물의 양을 늘리면 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잠깐의 목표 달성으로 끝날 뿐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화수분이라고 한다면 단연 ‘한류’를 꼽을 수 있다. K팝뿐만 아니라 K푸드·K컬처·K뷰티까지 모두 세계시장을 주름잡으며 한마디로 대한민국 전성시대다. 전 세계인이 ‘한국앓이’에 빠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한류의 부상으로 국내 제조업 분야까지 수출이 늘며 그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분야가 K방위산업이다. 지난해 다소 주춤했던 국내 방산업계가 다시 활기를 찾으면서 올해 수출액 200억 달러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방비에만 매년 1000조 원 이상을 써서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우리의 방산 기술을 인정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힘들게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련 기술을 잘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 핵심 기술 49건을 포함해 총 165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이 적발됐다. 주요 분야는 반도체를 비롯해 전기·전자와 조선, 디스플레이 등에서 주로 기술 유출이 발생했다.

유출된 산업기술 중에서도 방산 분야는 특히 민감하고 중요한 군사 기술을 다룬다. 이는 국가 보안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매년 한두 건에 불과하던 방산 관련 범죄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밝혀지지 않은 범죄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범죄 형태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퇴직자를 이용하거나 기술력 높은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올해 초에는 한국에 파견돼 항공우주연구원(KAI)에 근무하던 인도네시아 직원이 회사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기밀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반출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해당 자료 중에는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인 KF-21 관련 자료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4월에는 북한의 해킹 조직이 국내 방산업체 10여 곳의 자료를 탈취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은 악성코드 감염이나 이메일 계정 해킹으로 국내 방산업체 여러 곳을 해킹해 방산기술을 빼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방산업체 대부분은 해킹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방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면서 방위산업 기술 유출은 더욱 빈발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선 감시활동을 넓히겠다고 하지만 말만 앞세워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방산기술 유출은 국가경제와 안보를 파탄 낼 수 있는 중대 범죄다. 단호한 대응은 물론 촘촘한 방어망 구축이 시급하다. 정치권에서도 기술 유출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관련 법규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우리의 방산 기술을 화수분으로 만들지, 아니면 깨진 항아리 속 물처럼 마냥 흘려 보낼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모든 인간사가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문제는 외부 환경보다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문제가 되도록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성장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는 각자 하기 나름이다. 방산 기술 보호 또한 예외가 아니다.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