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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마사지 숍’ 된 부끄러운 한국 언론
마사지에 중독된 정보 수용자와 언론 마사지 숍의 공생
공정 언론의 몰락이 곧 민주주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19 06:30:59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미디어는 메시지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음 직한 말이다. 문화평론가이자 미디어 학자였던 마셜 맥루한이 1967년에 한 말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인간 감각기관의 확장이고, 어떤 감각기관을 쓰는 미디어인가가 전달하는 내용이나 사람들의 수용 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책이나 신문 같은 문자 매체는 시각을 확장시킨 매체로, 선형적이고 논리적인 메시지가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텔레비전 같은 영상 매체들은 시각과 청각 두 감각기관을 함께 사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균형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문화비평가답게 과장과 논리 비약이 없지 않지만, 논리성과 주관성이 융합된 디지털 문화를 해석하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유용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출판된 책의 제목은 ‘미디어는 마사지다(Medium is Massage)’이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인쇄하면서 오자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맥루한은 이 제목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이 말을 인용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가벼운 대중음악을 듣는 카세트 라디오에서 긴박한 전쟁 뉴스가 나오더라도 수용자들은 가벼운 사건으로 인지할 것이다”고 한 적이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 판세 보도와 관련된 우리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미디어는 마사지가 맞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국내 언론들이 초경합이거나 심지어 카멀라 해리스가 후보가 판세를 뒤집은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번 선거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한 번도 지지율에서 해리스에게 밀린 적이 없다는 것이 후문이다.
 
한국에는 국익을 위해서인지 개인적 선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보다 해리스가 당선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크게 요구할 것이고, 심지어 미군을 철수시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듯하다. 그러니 한국 언론들은 마치 마사지하듯 국민들이 갈망했던 뉴스를 쏟아 냈다. 정확하고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보고 듣기 원하는 뉴스를 서비스해 준 것이다. 정론·사실 보도 같은 용어들은 이제 ‘철 지난,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반 대중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에 익숙해진 미디어 노출 양식의 변화 때문 아닌가 싶다. 자신과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친구로 추천해 주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뉴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 자신의 취향과 시청 패턴을 게놈(Genom·유전체)처럼 정밀 분석해 영화를 추천해 주는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는 사람들을 메시지가 아닌 마사지에 중독시키고 있다.
 
마사지에 중독된 수용자가 주류가 되면서 기성 매체들 역시 생존을 위해 마사지형 뉴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확증편향이나 공명효과 같은 현상은 더 이상 인터넷 플랫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상태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이렇게 마사지에 중독된 수용자와 중독된 수용자를 더 크게 만족시키려는 언론 마사지 숍이 공생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 판단·이성적 논의 같은 ‘근대성’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가 아니라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옳다(I believe therefore I’m right)’는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합리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지만, 합리성이 소멸된 사회는 혼돈 그 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우리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확신과 집단 편견이 지배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를 기반으로 권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아마 선거법 위반 판결을 시작으로 야당 대표에 대한 법원 판결이 이어지게 되면, 극단적인 집단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 사이에 일부 인터넷 매체나 정치 유튜버들은 집단 편견에 중독된 지지자들을 마사지해 주면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 여기에 기성 언론들마저 마사지 비즈니스에 가세하게 되면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 언론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징조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그것은 언론의 몰락이면서 곧 민주주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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