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지하철에서 정신병력의 흑인 노숙자를 제압하려다 죽게 만든 백인 청년이 1년7개월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뉴욕타임스(NYT)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형사법원 배심원단은 이날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직 해병대원 대니얼 페니(26)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작년 5월 초 뉴욕 F노선 열차 안에서 소리 지르며 구걸하던 조던 닐리(당시 30세)에게 헤드록을 걸어 숨지게 한 혐의였다.
배심원단은 앞서 6일 페니의 중과실치사 혐의의 유죄 여부를 두고 논의에 들어갔으나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리기 위해선 만장일치여야만 한다. 담당 판사가 이날 배심원단에 중과실치사보다 낮은 형량인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판단을 구했고 사흘 후 ‘무죄’ 판단이 나왔다. 사건 발생 당시 미국 내 보수진영에선 페니를 ‘지하철의 사마리아인’으로 칭하며, 그를 기소하면 위험 상황에서 타인을 배려한 공익적 행위를 봉쇄하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마리아란 고대 이스라엘이 남북(유대·이스라엘) 왕국으로 나뉘었을 때 이스라엘 왕국 쪽 중심지였던 곳이다. 유대왕국보다 앞서 기원전 8세기 앗시리아에 멸망해 혼혈도 더 많이 진행돼 사마리아인들은 훗날 유대사회에서 열등한 이방인 취급을 당하게 됐다. 그러나 예수가 생면부지 행인의 고난에 도움을 준 ‘착한 사마리아인’ 예화를 든 게 신약성서로 공유되면서 기독교 문명권 보편 개념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미국·캐나다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서구권엔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다.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도 필요한 도움을 주도록 고무하기 위한, 또 도와 주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게 될까 두려워 스스로 선행을 자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입법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위급한 순간의 타인을 외면했다간 처벌받는 나라도 있다. 예를 들어 ‘응급환자를 보면 반드시 구조해야 한다’ 등 의무조항을 둔 것이다. 선한 취지이긴 하지만 양심·도덕 차원의 행동을 실정법으로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법철학적 논쟁거리다.
페니 사건의 경우 당일 닐리가 누군가에게 물리적 위협를 가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과잉대응’이었고 페니를 즉각 석방한 것은 ‘인종차별’의 결과라며 뜨거운 공세가 이어졌다. 유죄로 인정될 시 최대 15년 징역형이 예상되던 페니였으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 문제를 ‘과잉대응’ ‘인종차별’로 몰고 간 것은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죽음을 전국적 폭동으로 확대시킨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의 연장선일 수 있다.
한편 닐리에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태였고 그가 지하철 승객들을 위협·공격하다 이미 여러 차례 체포된 전력이 있으며 현지 ‘지하철 요주의 인물 톱 50’에 올라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이에 시 당국의 관리 실패야말로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평가도 제기됐으나 페니 석방으로 비난 여론에 직면한 검찰은 사건 발생 열흘 후 그를 기소했다.
이번엔 보수 진영이 반발하고 나섰다. 페니가 2급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지 하루 만에 온라인 모금 플랫폼 ‘기브센드고’에 개설된 페니를 위한 법률비용 모금 페이지에 총 100만 달러(약 14억3000만 원) 이상의 성금이 몰린 것이다. 공화당 차기 대권주자 중 하나로 꼽혔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가세해 사건은 더욱 좌우 대결로 비화했고 모금액도 급증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자기 SNS 계정에 이 모금 페이지 링크를 올리며 “좌파의 범죄자 친화적 어젠다를 멈추고 준법 시민들에게 거리를 돌려줘야 한다. 다니엘 페니 같은 착한 사마리아인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조지) 소로스 돈이 들어간 검사장을 물리쳐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페니를 기소한 브래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입막음돈 관련 혐의로 기소한 흑인 검사장이기도 하다. 그가 전 세계 반(反)자본주의·반기독교적 시민운동의 거대 후원자 소로스의 지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공화당 진영에 파다했다.
지난 1년7개월간 페니를 위한 ‘기브센드고’ 페이지에 모금과 “당신은 영웅” 등 지지·응원 댓글이 잇따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사설에서 페니를 “지하철의 사마리아인”으로 부르며 “페니 기소는 향후 다른 사마리아인들이 위험한 사람이나 범죄를 막고자 개입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의감과 선한 의지의 발휘가 뜻밖의 피해로 돌아오는 개개인 경험이 쌓일수록 ‘무조건 불개입’ 원칙은 일반화할 수밖에 없다. 낯선 타인의 곤경엔 일체 ‘뿌관’(不管·무시)하도록 훈련된 경향으로 유명한 중국이 가장 극단적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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