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이 기자의 책캉내캉] 역도로 내몰린 왕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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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맛집 도문대작/ 임요희 지음/ 세상의아침/ 1만7000원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4-19 19:46:10

현 시국을 예견한 탁월한 소설 한 편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임요희 작가의 장편소설 ‘조선 맛집 도문대작’(세상의아침)은 조선 역사의 4번·5번 요추를 담당했던 광해군 시대를 사뿐히 들어 올려 우리 앞에 내려놓는다.

작가는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소설적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도문대작은 ‘도살장 문을 바라보며 씹는다’는 뜻으로 교산 허균(1569-1618)이 사형당하기 7년 전에 쓴 음식 품평서다. 소설은 음식과 정치 이야기를 넘나들며 작금의 세태를 거울처럼 비춘다.

또 소설은 역도 이이첨의 내란으로 왕이 궁지에 몰리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뤄 윤석열 대통령 파면의 정당성을 곱씹어보게 한다.

▲ 도문대작이 실린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왼쪽)과 허균 초상화. 문화체육관광부

소설 속 허균은 잦은 음모와 누명으로 정계를 은퇴한 뒤 저잣거리의 소설가가 되어 능수능란한 글솜씨로 세상을 요리한다. 나름 무탈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허균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왕의 내탕금을 운반하던 내수사가 조령에서 살해당하고 은 10만 냥을 도난당한 것이다. 이 일로 허균의 일곱 친구인 ‘강변칠우’가 강도로 몰리고 결국 의금부로 끌려가게 된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허균은 서둘러 홍길동전 원본을 불태운다. 홍길동전은 사회제도에 불만을 품은 홍길동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으로 허균이 가명으로 출간한 소설이다.

한편 이이첨의 계략에 휘말려 역도로 몰린 ‘강변칠우’는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맞고 허균은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역도가 선량한 백성을 역도로 모는 형국이라니!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유생들은 대동법 시행과 관련해 광화문 앞에서 매일 시위를 벌이고 급기야 왕을 탄핵한다. 유생들의 우상이었던 허균은 이들을 극적으로 설득하는데 그 공으로 승정원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로 분장한 배우 이병헌. 한편 광해의 살아 있는 모습을 그린 어진은 전하지 않는다. CJ엔터테인먼트

왕의 비서가 된 허균. 내탕금 도난 사건과 관련해 왕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다름 아니라 그 은은 명나라 사신에게 바칠 뇌물이었다는 것이다. 명나라 사신이 도착하기까지 한 달. 그 안에 은 10만 냥을 찾지 못하면 광해는 왕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은의 행방이 오리무중이 되면서 광해는 헛것을 보는 등 심각한 정신착란에 빠지고 허균은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왕과 박치의(홍길동)를 바꿔치기한다.

박치의는 강변칠우의 한 명으로 신출귀몰한 재주를 이용해 죽음의 골짜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인물이다. 왕과 서민이 역할을 바꾸게 된다는 점에서 소설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또 다른 프리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은 허균이 차린 주막 ‘도문대작’의 과객으로 묵으면서 민심을 알아간다. 그리고 박치의 뒤에 숨어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기 시작한다. 왕좌에서 내려온 뒤에야 비로소 왕다운 왕이 된 것이다. 그렇게 허균은 광해를 왕으로 만들어간다.

온 세상이 왕의 덕을 칭송하는 가운데 이런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 바로 역적 이이첨이었다. 그는 권력을 잃을 것이 불안한 나머지 능양군에 붙어 왕을 끌어내릴 역모를 꾸민다. 한시가 급한 허균은 은을 찾기 위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마침내 은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일로 사태는 더 꼬이는데….

▲ 조선시대 화가 성협(成浹)이 그린 풍속화. 다섯 사내가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이 도문대작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의 독재도 안 되지만 다수의 독재도 안 된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은 표를 많이 가져간 다수당이 아니다. 표를 행사했건 기권했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한다는 사실 그 엄정한 법치 이념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킨다. 법을 무시하고 국민을 저버린 국가권력은 예외 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소설 속 이이첨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백성을 희생시키고 왕좌까지 찬탈하려 했다. 국민이 목소리 내는 일을 두려워하는 권력자는 권력을 가질 자격이 없다.

소신을 말하는 이가 역도가 되는 세상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인 언론을 탄압하는 일 역시 국민을 탄압하는 일이다. 현실 정치인은 어느 때에도 국민을 잊어선 안 된다. 지지자도 국민이지만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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