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생각] 문학의 큰 선배들이 생각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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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9-25 00:02:55

윤흥길 선생의 산문집 가운데 ‘문학동네 그 옆 동네(전예원, 1983)’가 있다. 꽤 오래된 책이다. 이 산문집의 앞부분에는 여러 다른 작가분들에 대한 상념이 담겼다. 한승원·조세희·정양·김연균 그리고 이문구 선생에 대한 산문들이다.

목차도 안 보고 그냥 페이지를 넘기며 은근히 기대한 것이 이문구 선생 편이다. 윤흥길 선생의 첫 창작집 ‘황혼의 집(문학과지성사, 1976)’에 실린 ‘윤흥길론’이 가진 무게로 인해 ‘이쪽’ 편의 ‘응수’가 없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연 있다. ‘더러운 고백과 고백의 더러움-이문구 형에게’라는 산문이다.

“이 형은 그 글에서 나를 요모조모로 헐뜯어 놓았소. 자기는 당초부터 윤흥길이를 아주 우습게 보아 버릇했다느니, 시골서 먼촌 일가 부스러기가 올라와 쌀독 달랑대는 양식이나 파먹고 있는 집 사내처럼 들뜨름하게 끄먹거리는 눈을 가졌다느니, 석 자 치닷푼은 더 늘어지는 생전 늙잖을 말씨라느니, 아무리 말쑥한 옷을 입어도 반찬 없이 밥 먹고 나온 사람처럼 허름해 뵈는 보리밥 빛깔의 촌사람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사사건건 험담을 늘어놓고 있었소.……”

이렇게 해서 이어지는 윤흥길 선생의 이문구 선생에 대한 ‘험담’은, 일전에 본 예의 ‘윤흥길론’만큼이나 한량없는 ‘묘사의 미’를 내뿜고 있다. 확실히 이 1940년 전후 출생 작가분들의 문장 수련들에는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나는 한동안 잊고 있던 이문구 선생의 일들로 오랜만에 되돌아가게 된다.

당신은 말년에 가까우셔서 ‘작가회의’ 의장이셨다. 그 무렵엔가 그 직전엔가 ‘방북 작가단’의 한 사람으로 북쪽을 다녀오셨다. 전해 듣기로, 당신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몇 사람들과 저녁 자리를 가지셔서는 이런저런 일들의 이야기 끝에, 이따금씩, 그렇게 지독하게 못 살려고 그 난리를 피웠느냐고, 북쪽의 사정을 한탄하셨다는 것이다.

6·25 전쟁통에 부친은 예비검속으로 처형당하시고 형은 대천 앞바다에 수장되었다는, 어머니마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아버지 밑에서 힘들게 성장하셨다는 당신이시다. 그런 깊은 ‘한’을 간직하신 당신의 눈에 비친 저쪽 사정은 환멸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고, 이야기를 전해준 선배는 그 뜻을 ‘해석’을 해주었다.

이야기가 이에 이르니, 나는 다시 또 다른 선배로부터 전해 들은 신경림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인가에 안착해서 트랩을 내려올 때였다든가 입국장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올 때였다든가, 다. 선생께서 “어이, 아무개 씨!”하고 선배를 불러세우셔서는, “정말 야만이지?” 하시면서, 선배가 방북 내내 벌인 ‘기행’의 뜻을 헤아려주시는 한마디 말씀을 넌지시 던지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벌써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른들 말씀의 생생한 전갈들이다. 이런 말씀들은 지금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심상치 않은 ‘변성’의 과정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게 한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왜 이렇게 한없이 쓸쓸하고 허전하기만 한지? 그 이유를 알 것도, 알 수 없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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