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8일 김천시 아포읍 경북과학기술고등학교 운동장. 우산과 우비로 몸을 가린 주민들이 빗속을 헤치며 모여들었다.
‘아포읍 승격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잔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빗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더 따뜻해 보였다.
행사장 한쪽 부스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부녀회원들이 젖은 손으로 부침개를 뒤집으며 “비 올 땐 더 맛있어요, 뜨끈할 때 드이소”라며 웃었다. 비닐 천막 아래로 퍼져나간 그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는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아포는 김천의 유일한 읍이자 동부의 관문이다. 철도와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 요지지만 이곳의 진짜 자산은 인프라가 아니라 사람이다.
“여기는 다 한집안이에요. 비가 와도 같이 밥하고 같이 웃죠” 67년째 아포에서 살고 있다는 한 어르신의 말에는 30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날 행사는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꾸밈없는 정과 손길이 있었다.
배낙호 김천시장은 아포초교 3학년 학생들과 함께 ‘10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느린 우체통에 넣었다. 2035년 아포읍 승격 40주년이 되는 해 이 편지는 청년이 된 아이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미래를 향한 작은 약속이자, 공동체가 세대에게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다.
기념식에서는 평생 고향을 지켜온 봉산1리 박희수 어르신과 국사2리 이순금 씨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그들의 삶이 곧 아포의 역사였다. “이 두 분이 있어 지금의 아포가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운동장은 큰 박수로 가득 찼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빗방울은 잦아들었지만 운동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함께 밥을 짓고, 함께 젖은 손을 맞잡은 사람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지역의 성장’이 아니라 ‘공동체의 품격’이었다.
아포읍의 30년은 끝이 아니다. 다음 30년을 향한 마음이 이미 그들의 손끝에서, 웃음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비가 그친 운동장에 남은 건, 뜨끈한 국물 냄새와 서로를 향한 미소였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