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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근대화의 광풍에 휩싸이던 1970년대, 재일한국인이 겪었음직한 서러운 이야기가 연극 한 상으로 푸짐하게 차려졌다.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아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14일부터 23일까지 공연하는 ‘용길이네 곱창집’은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용길이 운영하는 ‘야끼니꾸 드래곤’을 배경으로 재일한국인의 삶을 다룬다.
대체적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불구거나 상처투성이다. 용길은 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아내 영순은 식당 운영하랴 칠칠치 못한 가족 건사하랴 완전히 마음의 평온을 잃었다. 그래서 영순은 공연 시작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등 매우 그악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자식들도 상처투성이긴 마찬가지다. 첫째 딸 시즈카는 어릴 적 태츠오와 비행장 구경을 나갔다가 다리를 다쳐 장애가 왔으며, 둘째 딸 리카는 태츠오가 언니를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그와의 결혼을 감행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영위한다. 가수를 꿈꾸는 셋째 딸 미카는 일본인 유부남을 사랑하고, 막내아들 토키오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한다.
연극을 보다 보면 등장인물의 불합리함에 고구마를 삼킨 듯 속이 답답해지면서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이라는 신조어가 생각난다.
용길, 영순 부부와 막내 토키오는 그렇다 치고 시즈카는 왜 동생 남편의 구애를 단호하게 물리치지 못하는 걸까. 리카는 왜 남자친구가 언니를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 결혼을 감행한 걸까. 미카는 왜 유부남을 사랑하는 걸까.
사실 이런 상황은 재일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마음이 사랑에 빠지는 걸 몸이 어떻게 막으랴. 자식들은 대체로 속을 썩이고 부모는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 자식을 괴롭힌다. 집집마다 크고 작은 우환이 있으며 반목하고 갈등하고 싸운다.
관객의 시선으로 나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 또한 용길이네 곱창집처럼 시끄럽고 불합리하며 억울하고 배배 꼬여 있다. 그래서 연극이 끝나갈 즈음 등장인물들에 강하게 동화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래, 저게 삶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공연 시간이 185분으로 꽤 길다. 초반에 강하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갈수록 몰입도가 올라간다. 극장 측도 끝까지 관람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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