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한창 떠들어대던 회식 자리였다. 어느새 대화 주제는 ‘20년 뒤 미래 모습’으로 커졌다. 그때 기자가 툭 내뱉은 한 마디가 있다. “글쎄, 그때쯤 나는 서울에 집은 없겠지만 입주 로봇은 하나 있지 않을까?”
그때는 농담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결혼은 선택이 됐고, 집은 더 그렇다. 가족과 주거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취미·반려동물이 주 관심사가 되고 AI와의 대화도 루틴이 됐다. 외로움을 세련되게 관리하는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비인간과의 관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 익숙함은 종종 그때 말했던 ‘휴머노이드와 함께 사는 상상’을 소환했다. 그리고 올해 초 개최된 CES 2026은 이것이 더 이상 공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공개되며, 현대차그룹이 ‘로봇·피지컬 AI’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이동수단을 만들던 기업이 ‘몸을 가진 지능’을 만드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변혁의 시대다.
물론 지금 당장 휴머노이드가 들어와 집안일을 하며 “오늘 힘들었지?”라고 말해주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변화는 늘 그렇게 시작한다. 처음에는 공장에 ‘산업용 로봇’, 요양시설에 ‘돌봄 로봇’이 나온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공감 능력을 갖춘’ 로봇이 집에 들어오는 흐름이 어색하지 않다.
이 변화의 속도를 읽는 확실한 방법은 역시 돈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CES 2026을 전후로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에 힘을 싣자, 시장은 곧바로 ‘밸류에이션 재평가’라는 단어로 반응했다.
실제로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오토에버 등이 동반 강세를 보였고, 현대차그룹 비중이 큰 ETF 역시 수익률로 반응했다. 기술은 완성형이 아니어도 시장은 ‘방향’을 먼저 가격에 반영한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로봇과 함께 살게 될까. 핵심은 ‘빈자리’다. 결혼이 줄고 내집 마련이 멀어질수록 생활의 빈자리는 커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인간이 메울 수 없다면 비인간이 더 많은 역할을 맡는다.
물론 휴머노이드와 함께 사는 미래는 반드시 장밋빛은 아니다. 특히 ‘관계의 대체’라는 화두는 불편하다. 누군가에겐 동반자 역할을 하는 휴머노이드가, 다른 누군가에겐 감당하기 힘든 공허함을 줄 수도 있다.
그래도 기자는 2019년의 농담을 다시 떠올린다. 서울에 집을 못 사도 ‘입주 로봇’은 들일 거라는 말. 그 말에는 자조가 섞였지만 동시에 생존 전략도 들어 있었다. ‘내 사람’이 부족한 시대에, 그걸 대신할 뭔가가 필요하다는 직감.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직감을 기술이 따라잡는 순간을 보고 있다.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게 되고, 집을 안 사는 게 아니라 살 수 없는 시대. 공감은 AI가 먼저 제공하고, 그 공감이 몸을 얻어 거실로 들어오는 시대. 휴머노이드와 함께 하는 삶은 ‘먼 미래’가 아니라 ‘곧 다가올 생활’이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우리는 “결혼반지 대신, 입주 로봇 계약서를 썼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또 웃을까. 아니면 고개를 끄덕일까.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