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유럽 축구 구단을 소유하는 아시아 부호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세계무대보다 한참 밑도는 실력 탓에 세계축구의 변방으로 인식되는 동남아시아 출신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 열기만큼은 유럽 못지않은 것으로 알려진 동남아시아 부호들이 대거 유럽 구단들을 인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유럽구단을 소유하려는 주된 이유도 ‘축구사랑’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미 ‘축구산업’으로 자리매김 한 유럽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토니 페르난데스 QPR 구단주·빈센트 탄 카티프시티 구단주[사진=뉴시스], 아시아 부호들이 구단주로 있는 이탈리아 인터밀란·스페인 발렌시아·잉글랜드 카디프시티·블랙번로번스·QPR 앰블럼[그림=각 구단 홈페이지]
그동안 유럽 내 귀족출신 명문가들이 독점하다시피 해왔던 유럽 프로축구계에 ‘아시아 부호’들이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유럽으로 시선을 돌린 아시아 부호들은 주로 동남아시아 출신인 경우가 많다. 동남아시아는 축구 수준이 떨어져 세계축구계의 변방으로 인식되는 곳이지만 축구 열기만큼은 유럽에 필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축구에 푹 빠진 아시아 거부들, 매력적인 투자처인 유럽 축구무대 노크
팜유사업으로 싱가포르 10대 부호에 오른 피터 림은 지난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FC의 주식 70.4%를 매입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피터 림이 최대주주에 등극한 사실이 알려지자 스페인 언론들은 일제히 그를 조명했다. 투자규모에 따라 팀 성적이 좌지우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피터 림은 25억달러(한화 2조7500억원)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명문 인터밀란 구단주도 아시아인이다. 지난 2013년 인도네시아 미디어 재벌 에릭 토히르가 인터밀란 지분 70%를 사들인 것이다. 에릭 토히르는 영국계 인도네시아 자동차 기업 아스트라 창업주인 테디 토히르의 차남으로 비바와 마하카 미디어 등의 방송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1년 부채에 허덕이던 말레이시아 국영항공사를 인수해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로 탈바꿈시킨 토니 페르난스도 지난 201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레인저스(QPR)를 인수했다. 포브스가 추산한 그의 자산은 6억5000만달러(약 7152억원)이다.
▲ [도표=최은숙] ⓒ스카이데일리
이 밖에도 파드마쉬르 라오 박사와 가족들이 함께 지분을 보유한 인도 VH그룹의 자회사 벤키스(양계업체)는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2부리그)의 블랙번 로번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의 창업주 빈센트 탄도 챔피언십리그의 카디프시티의 최대주주다.
이처럼 아시아 부호들이 잇따라 유럽으로 진출한 이유로는 유별난 축구 사랑이 꼽힌다. 피터 림의 경우 잉글랜드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팀을 콘셉트로 꾸민 술집을 여럿 운영 중이다. 에릭 토하르 역시 소문난 스포츠 광으로 인터밀란 외에도 필라델피아 76ers(NBA), DC유나이티드(MLS) 등의 구단주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유럽 축구무대가 투자처로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산업화되며 일종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에 따라 축구 구단들이 인기 투자처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유럽의 축구산업은 유명 선수들을 영입하고 경기장 및 제반시설 등에 막대한 투자를 통해 리그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성적 향상은 곧 중계권료·광고료 상승과 연결되며 입장권 및 구단용품 매출액을 상승시키게 된다.
일각에서는 아시아 부호들의 유럽 주류 진입을 위한 움직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전통과 명망을 상징하는 유럽 축구구단주 반열에 오르면서 유럽 사교계의 주류 반열에 오르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구단주들 대부분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조기유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 국내 최초 유럽구단 인수…스포티즌, 지난해 벨기에 구단 품에 안아
지난 1990년대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해외 구단의 메인스폰서가 되거나 구단을 직접 운영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벌인 바 있다. 당시 기업들은 현지인들이 친숙하게 인식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고 고심 끝에 프로 구단들을 통한 마케팅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 과거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낸 김우중 회장(사진)은 1990년대 중반 대우의 동유럽진출을 이끌면서 스포츠마케팅의 일환으로 구단을 소유한 바 있다. 당시 대우는 1996년부터 공식 스폰서로 활약하던 레기아 바르샤바를 이듬해 현지법인명으로 인수했다. 인수 직후 ‘레기아 대우 바르샤바’로 팀명을 고쳐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던 대우는 IMF이후 부도를 맞아 2001년 폴란드 재벌 폴모트에 이 팀을 매각했다 [사진=뉴시스]
삼성의 경우 중국 프로축구팀 ‘텐진’을 인수해 팀명을 ‘텐진 삼성’으로 바꿨으며 LG의 경우 ‘북아프리카 4개국 대항 축구대회’를 개최하며 현지인들에게 다가갔다. 이들 기업들은 주로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을 공략하는데 있어서 이 같은 마케팅 방법을 펼쳤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구단을 소유한 기업은 대우그룹이었다. 1990년대 중반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점으로 동유럽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던 대우그룹은 현지 법인을 통해 1997년 레기아 바르샤바를 인수하며 국내 최초로 유럽구단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당시 대우는 현지 친화적인 기업이미지 구축을 위해 1500만 달러를 투자해 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폴란드 정부가 지원하는 우수 연구과제에 대해 연구자금 등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또한 폴란드 미술전람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지만 그 효과는 대우가 기대한 것만큼 크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냈을 만큼 축구사랑이 남달랐다고 전해진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다수의 국내 대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해 폴란드 현지에서 스포츠마케팅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 레기아 바르샤바의 공식 스폰서로 활동하기 시작한 대우는 이듬해 팀을 아예 인수해 버렸다. 팀명도 ‘레기아 대우 바르샤바’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폴란드인들에게는 대우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레기아 팬들 뿐만 아니라 레기아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레기아 대우’로 읽기 시작했다. 또한 레기아 선수들이 대우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마케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은 잠시였다. 대우는 IMF 사태로 부도를 맞았고 2001년 레기아 대우 바르샤바를 폴란드 재벌 폴모트에게 넘겼다.
대우의 레기아 매각 이후 국내의 유럽 축구구단에 대한 직접적인 인수는 전무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국내 선수들이 잇따라 유럽무대에 진출하자 국내 기업들이 스폰서 자격으로 구단 유니폼이나 경기장 내 광고판에 자사의 로고를 새겼으나 구단 인수 움직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스카이데일리
그러던 지난해 8월 국내 스포츠마케팅 기업 스포티즌이 벨기에 2부 리그 AFC투비즈를 인수하면서 대우 이후 첫 사례로 기록됐다.
스포티즌은 지난 2000년 설립된 스포츠 마케팅 회사로 관련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골프, 피겨스케이팅, 스키 등 다양한 종목들의 대회를 주최하거나 선수 매니지먼트 사업에 두각을 보인 스포티즌은 투비즈 인수 기자회견 당시 한국 선수 영입에 적극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실제로 국내 유망주 남승우의 이적을 성사시킨 바 있다.
국내 대기업들 “유럽 구단 인수는 비효율적”…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동남아 축구시장
대기업들이 국내 스포츠무대에서 다수의 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축구의 중앙무대라 할 수 있는 유럽의 구단 인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다지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있다.
국내 모 기업 스포츠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기업의 인지도가 해외시장에서 충분하고 설사 브랜드 마케팅의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스폰서 계약 등을 통해 유니폼·광고판 등에 회사명과 로고 등을 노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마케팅을 위한 구단인수는 비효율적이며 기업 오너가 특별히 구단인수에 애착을 갖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유력 구단들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다가 가격 또한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되므로 굳이 유럽구단을 인수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일각에서는 축구구단을 통해 마케팅 및 다양한 수익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동남아 축구시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단 기업들뿐만 아니라 현재 적자에 허덕이는 K리그 구단들도 충분히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다는 견해다.
▲ 자료: 각국 축구협회 및 국제축구연맹(FIFA) ⓒ스카이데일리
인기 축구칼럼리스트 김현회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동아시아는 아직 선진 아시아축구가 개척하지 못한 블루오션이다”며 “이들이 아시아 최고권위의 K리그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만큼 중계권을 팔거나 비시즌 시기에 구단들이 이곳 투어를 한다면 새로운 ‘한류’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동남아시아(11개국) 중 10개 국가들이 현재 프로리그를 운영 중일 만큼 이곳 국민들은 축구에 열성적이며 이 열성적인 인구가 세계인구의 1/10에 해당한다는 것만으로도 사업성이 훌륭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이들은 유럽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다수의 구단주들이 동남아시아 출신이라는 것을 들며 동남아시아 축구 열기는 유럽·남미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이미 지난 2010년 월드컵 이후 동남아시아 축구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일부 J2리그의 팀들은 동남아시아 선수들을 영입했으며 이를 통한 중계권 수익을 올리고 있다.
베트남·인도네시아의 축구 영웅들의 영입으로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 선수의 활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J리그 중계권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현재 필리핀 공중파 방송 SBS-CBN에서는 매주 금요일 ‘’J리그 하이라이트쇼‘가 방송 중이며 태국의 공영방송 PTS는 매라운드 3경기를 녹화 중계하고 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외국 부자들의 유럽투자에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축구계가 자생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시아권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K리그와 소속 구단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투자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고 말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