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등포역 일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수도서울 천만의 스펙트럼 색깔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상권은 발전했다. 영등포역을 기준으로 오른쪽 편에는 많은 술집과 모텔 등이 있다. 아울러 영등포에는 서울 3대 집창촌이 아직도 영업을 하며 과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중이다. ⓒ스카이데일리
[중]심야 상권 편(00:00~08:00)…서울 서남 최대상권 영등포 24시를 가다
▲ ⓒ스카이데일리
목적도 의미도 묻지 않는 놀다가라는 말은 도시의 굴곡을 담은 아리랑처럼 생명력이 길었다.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여성들이 많이 떠나간 지금에서도 놀다가라는 말은 끝까지 꿈틀거리며 질기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삶의 한 꽈리를 단단히 틀고 있어 뭉클 다가왔다. 이곳은 서울 3대 집창촌 중 하나인 영등포 집창촌이다.
100년 넘는 역사 ‘영등포’…일제의 전략적 유흥지 부상 뒤 개발 붐 타고 변천사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영등포 상권은 서울에서 가장 유흥가가 발달한 지역이다. 영등포는 일제에 의해 전략적으로 탄생된 유흥지역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경성에는 춤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다.
늘어난 카페를 못 마땅히 여긴 일제는 강제로 영업을 금하고, 이를 당시 도심 외곽 지역이었던 영등포로 몰아넣었다. 영등포는 변두리였지만 카페가 생기고 기차역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유흥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에 힘을 기울이던 1960~1970년대 영등포역 인근으로 공장들이 줄을 지어 들어섰다. 이를 계기로 영등포는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등포의 상권력이 커지면서 1980~1990년대 영등포에 위치한 공장들이 자리를 떠났다. 대신 공장 자리에는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섰다.
영등포역 앞 영중로를 사이에 두고 영등포 밤 문화는 극명하게 갈린다. 영등포역을 기준으로 오른쪽 일대는 ‘노래방식 유흥주점’과 ‘모텔’이 난무했다. 평일 밤임에도 불구하고 유흥주점의 네온사인은 화려했고,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앰프는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20년간 곱창 집을 운영해 온 주인은 “과거 이곳에는 나이트클럽이 많았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나이클럽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노래방(노래주점)이 대신하고 있다”며 “경기가 안 좋아 영등포상권이 죽었다는 말을 해도 주위에 널린 모텔을 보면 영등포가 아직 죽진 않았다”고 회상했다. 노래방 중 상당수는 술과 노래를 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노래바와 모텔로 뒤섞인 이곳에는 건장한 청년들이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내내 볼 수 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호객행위였다.
그들 역시 영등포역을 나오자마자 마주친 집창촌 아주머니들과 비슷한 말을 건넸다. “형님 놀다가세요”라며 기자에게 접근했다. 농담을 주고받고 그들을 지나쳤다. 평일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20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2~3년 내 클럽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영등포 나이트클럽은 과거의 인지도를 잃고 조금씩 사라졌다. 대신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중장년층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길거리에 만난 노래방 한 호객꾼은 “요즘에 젊은 사람들은 홍대나 강남으로 다 빠져 버리고 영등포를 찾는 이들은 여의도에서 일 마치고 오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다”며 “빨리 한 몫 벌어서 이 거리를 떠나고 싶다” 말하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 영등포역 인근에는 오래된 집창촌인 일명 ‘영등포 텍사스촌’이 있다. 영신로24길에 있는 이곳은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집창촌에는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맞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영중로4길을 따라 들어갔 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왔다. 경기가 불황인 탓도 있었지만, 영등포를 찾는 이들이 줄면서 길거리에 음식을 파는 노점상 경기도 덩달아 나빠졌다. 줄줄이 늘어선 포창마차들은 텅 빈 의자만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떡볶이를 파는 한 노점상은 “예전에야 권리금 주고 서로 들어오려고 하던 곳인데, 지금은 문 닫은 곳이 많다”며 “새벽 시간 영등포에는 노숙자 아니면 대리기사들 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래바 호객군 넘어 ‘총각 놀다가’…15분 7만, 20분 10만, 30분 12만 ‘타이머 재깍재깍’
기자는 도돌이표처럼 처음 도착했던 집창촌으로 돌아왔다. 영등포역 기준으로 왼쪽 편 영등포 홍등가는 밤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았다. 영중로3길을 따라 이어지는 영신로24길은 포탈업체의 로드뷰 서비스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지역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내린 가을비가 서울을 적신 이후라 영등포에 부는 바람은 쌀쌀했다. 영중로3길 초입에는 대리운전자들 사이로 아주머니들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기자에게 말을 건 한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장사를 해 와서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화려한 불빛 속으로 사람들이 미끄러지듯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쫒아 집창촌이 위치한 영신로24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집창촌 안으로 들어 갈수록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남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쇼윈도에 비친 아가씨들은 전기난로를 옆에 두고 무심한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중에는 고양이를 껴안고 있는 아가씨도 보였다. 간혹 말을 거는 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옷 매장에 전시된 마네킹 마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새벽 2시, 200m 남짓한 영신로24길을 걸었다. 텅 빈 거리를 혼자 걷다보니 수많은 여성들의 시선이 기자의 몸에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눈짓만 보낼 뿐, 누구 하나 호객하는 이 없었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유리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전기난로 옆에 앉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 기자는 평일 새벽 ‘영등포 텍사스촌’을 찾았다. 텍사스 촌 입구에서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빨간 조명으로 가득 찬 이곳 이용 가격은 15분에 7만원, 20분에 10만원, 30분에 12만원이다. 사진은 한 집창촌 가게의 내부 모습 ⓒ스카이데일리
경쟁적으로 호객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기자는 높은 힐을 신고 가지런히 다리를 모은 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잠깐의 가격 흥정을 마치고 그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달리 2층은 빼곡히 방들이 들어 서 있었다. 소라 색으로 칠해진 한 문틈 사이로 직업여성으로 보이는 2명이 밤늦게 야식을 먹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 간 방은 붉은 색 조명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가격은 15분에 7만원, 20분에 10만원, 30분에 12만원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값을 지불하자 그는 곧 어디선가 거스름돈을 받아와 돌려줬다. 그가 손에 받아든 7만원 중 4만원은 자기 몫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방에 들어오기 전 문 밖에서는 째깍째깍 소리가 들렸다. 그는 15분 종료시간을 알리는 타이머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오래된 뒷골목 말로는 이른바 숏타임 시간이다.
“돈 모아 옷가게 차리고 싶어요”…불경기 속 평일에 손님 없지만 주말엔 북적
여성은 기자에게 거스름돈을 주고 자연스럽게 옷을 벗으려고 했다. 여성을 만류하고 기자임을 밝혔다. 그녀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잠깐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성희(가명)라고 이름을 밝힌 그가 이곳에 일하는 목적은 역시 돈이였다. 그는 룸살롱이나 다른 곳에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해 이곳에 일을 한다고 말했다.
돈벌이가 잘 되냐는 질문에 경기가 워낙 불황이라 평일에는 손님이 없지만, 주말에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며 수입이 짭짤하다고 전했다. 그는 단시간에 돈을 모아 옷가게를 하나 차리고 싶다는 짤막한 바람을 밝혔다.
그와 몇 마디 나누지 않는 사이 문 밖 타이머가 종료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기자에게 시간이 다 됐다고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기자에게 음료수 하나를 건넸다 15분의 짧은 대화는 끝이 나고 유리문 밖으로 나왔다.
다시금 영신로24길을 끝까지 걸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길 끝자락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기를 연신 눌렀다. 카메라의 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낯선 남자 2명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영등포 집창촌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남성들은 기자의 사진 카메라를 뺏으며 이곳에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 카메라 속 사진을 다 지우길 강압했고 기자가 사진을 지우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속 빈 강정마냥 사진이 없는 사진기를 들고 집창촌을 나갔다. 집창촌 끝자락에는 택시들이 간간히 남성들을 쏟아냈다.
새벽 3~4시가 다가오자 드문드문 있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끊기기 시작했다. 간간히 들려오는 자동차 굉음도 조금씩 사라졌다.
오전 6시가 넘자 집창촌의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한 시간 쯤 더 기다려보자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기자도 빈속을 달래기 위해 해장국집을 찾아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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