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와 국회 간에 막판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관련 인프라를 정비한 후 과세를 시작하자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이미 1년 유예한 마당에 추가로 2년 유예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맞서고 있다. 시행일이 불과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논의는 쳇바퀴 돌듯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코인업계는 부진한 가상자산 시장 상황에서 양도소득세 과세 방안이 시행될 경우 ‘코인런(투자자 대규모 이탈)’ 등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10여일 남았는데 잠자고 있는 과세 유예안
국회의안시스템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로 발생한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시점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정부·정희용 의원 등 제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수개월째 공전하고 있다. 소득세법 개정안이 연내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하지 못할 경우 내년 1월1일부터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행법상 가상자산을 양도·대여해 발생한 수익은 ‘기타소득’으로 보고 연 250만원(공제액)이 넘는 소득에 대해 22%(지방소득세 포함) 세율을 적용한다. 연간 가상자산 손익을 통산해 소득금액과 세액을 계산하고 이듬해 5월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세금을 신고·납부하는 식이다. 올해 가상자산 거래로 1000만 원을 벌었다면 내년 5월 165만 원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20년 12월 소득세법을 개정해 2022년부터 과세를 시행하기로 했지만 가상자산 관련 제도 정비, 과세체계 확립 필요성 등을 이유로 작년 말 소득세법을 다시 개정해 1년 뒤로 시행을 미뤘다. 올해 초 대선 과정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가 ‘선(先)정비·후(後)과세’를 공약으로 내놓으며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이후 정부는 올해 7월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 가상자산 과세 시행 시기를 2023년 1월에서 2025년 1월로 2년 추가 유예한다고 공표했다.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주장하는 근거는 가상자산 투자자 및 거래소가 대폭 늘어났으므로 과세 인프라도 추가로 보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신고 수리를 거쳐야 하는 업체를 기준으로 집계한 가상자산사업자 수는 지난해 10월 기준 6곳에 그쳤지만 현재는 30곳 이상이다. 이 중 소규모 업체는 내년부터 과세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 FTX의 ‘회계부정 사태’ 이후 시장상황이 나쁜 점도 과세 유예에 대한 근거로 꼽힌다. 비트코인 시세는 16일 오후 10시 기준 1만7000달러로 작년 11월 고점(6만9000달러) 대비 1년 만에 75%가량 떨어졌다. 정부는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기본법을 만들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한 이후에 과세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입법 전문가도 과세 유예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했다. 정명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은 작년 말 ‘조세 분야 법률안 검토보고서’에서 “거래소에 대한 의무 부과나 정보비대칭 완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 조치는 마련하지 않고 과세부터 실시하는 것은 가상자산 투자자의 반발과 납세순응성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련호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올해 10월 한국세무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자본이득세로 과세하고 있고 회계기준상 무형자산으로 처리한다고 해 기타소득으로 과세할 합리적 이유는 없다”며 “가상자산을 신종금융자산으로 취급하는 견해도 있고 다른 금융소득과의 손익을 통산하거나 결손금 이월공제를 허용하는 방안도 적용할 수 있기에 기타소득 분류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상 가상자산 과세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회의에서 “가상자산 시장이 활성화된 지 이미 수년이 지났는데 또 2년간 과세하지 않겠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투자자 보호는 과세의 전제조건도 아니고 상금이나 복권, 심지어 뇌물과 같은 불법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는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같은 회의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과세 시점을 2022년에서 1년 유예할 (지난해) 당시 이미 과세할 수 있는 시스템 정비가 끝났다고 보고한 것으로 안다”며 “(늦추자는 것은)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업계, 현행법 ‘이월결손금 부재’ 및 ‘취득가격 모호’ 지적
가상자산 업계는 2년 유예 후 제도와 행정시스템을 촘촘하게 구축한 후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인마켓거래소로 구성된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최근 시행 2년 유예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연합회는 현행법에서 ‘이월결손금 공제’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이월결손금 공제’란 투자자가 일정 기간 투자손실을 볼 경우 이를 현재의 이익과 상계해 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월결손금이 없을 경우 올해 가상자산 거래로 2000만 원을 잃더라도 내년에 1000만 원을 벌면 과거 손실과 무관하게 1000만 원에 해당하는 세금(165만 원)을 내야한다는 얘기다.
소득산출 기준인 취득가격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점도 꼬집었다. 국세청은 지난달 가상자산거래소 간담회에서 취득가액 평가방식으로 △일괄 0원으로 상정한 뒤 이용자가 직접 개인정보를 수정하는 방안 △올해 12월31일 종가로 일괄 적용하는 방안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강성후 KDA 회장은 “세원 입증 책임을 투자자에게 넘기는 문제를 넘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폭탄 과세’ 등을 예측할 수 있어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 과세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방증한다”면서 “2년 유예 등이 포함된 소득세법 개정안이 올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내후년 총선에서 690만 명 투자자들이 격앙된 감정이 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 전문가도 과세 유예 필요성에 목소리를 실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국내 가상자산 과세제도 정비 수준은 국제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가상자산 과세제도의 입법적 미비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의 가상자산 기타소득과세 시행시기 2년 유예 조치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과세제도와 관련해 입법적 과제도 짚었다. △가상자산거래업자의 과세정보 통합시스템 구축 △가상자산 양도 소득을 기타소득에서 양도소득 규정 및 다른 투자 자산 간 양도손익 통산과 순양도차손에 이월공제 허용 △가상자산 대여소득 명확한 정의 및 사업소득과의 구분, 필요경비의 인정 범위에 관한 적극적인 유권해석 등을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가상자산 과세제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효율적 가상자산 과세 시스템이 구축되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가상자산 세무서비스 플랫폼이 출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선진화된 가상자산 과세시스템 확보를 위해 과세당국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해외 주요국처럼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가상자산 과세가이드라인을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