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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법은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법안이기 때문이다. 취임 후 첫 번째 거부권 행사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지 7년 만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 양곡법에 이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에 분명히 어긋나는 포퓰리즘 법안들의 입법을 준비 중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내용이다. 민주당이 정부·여당 반대에도 입법을 강행해 지난달 23일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위해 위안부재단 관련 비리로 출당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상임위 안건조정위에 넣는 꼼수를 썼다.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리자 다시 윤 의원을 이용해 본회의에 직접 회부했다. 여야 간 제대로 된 토론조차 없이 불합리하고 반시장적으로 법안을 강행한 것이다.
현재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여 만t이 사료·주정용으로 처분된다. 쌀 매입에 매년 1조 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퍼붓고 있다. 이런 상황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기게 될 뻔했다.
법안이 실제로 시행됐다면 2030년 쌀 산업에만 국가 재정이 3조5000억 원 이상 투입돼야 했다. 2023년 기준 농림축산식품부 1년 예산(17조 원)의 20%에 달하는 금액이다. 쌀 1가마(80kg) 가격도 올해 18만4000원에서 2030년 17만2700원대가 될 것으로 전망됐었다. 이로 인해 40여 개 농민 단체가 반대했다. 쌀 생산 비용이 오르는데 쌀값이 계속 하락하면 농가는 수익성이 좋은 다른 작물로 재배를 전환해야 하는데, 양곡법 개정안은 이러한 전환도 막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양곡법 개정안을 시행하면 농식품부가 추진하는 다른 사업을 중단해야 할 수밖에 없다. 소·돼지 가격 하락, 사룟값 폭등, 수입축산물 관세 제로화 등으로 축산분야 예산 확대가 절실한 상황인데 이 분야 예산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법 개정안을 재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115명)이 3분의 1을 넘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이후로도 민주당이 여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간호법 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대장동·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 등의 본회의 직회부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여의도에는 연일 농민단체·간호사 단체·노동조합 등이 몰려와 시위를 벌이고, 내년 총선을 의식한 민주당은 삭발·천막 농성 등으로 동조하고 있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며 농업과 농촌 경제의 핵심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양곡법 개정안 같은 방식으론 안 된다. 안 그래도 쌀 산업은 과잉 생산과 쌀값 불안이 반복되고 있는데 반시장적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산업을 더욱 위기로 몰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쌀 시장도 수급과 가격을 시장에서 풀어야 한다. 시장을 통하지 않고 정부나 다른 통로를 통해, 즉 시장논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결코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 쌀 강제 매수는 농민을 위해서도 농업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참에 법률안 거부권 행사 기준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양곡법처럼 국회 처리 절차부터 문제가 있거나 그 내용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에 분명히 어긋나는 법안, 나라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표만 생각하는 포퓰리즘 법안 등이 그 대상이다. 내년 4월 총선까지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몰염치한 국회 다수당이 대통령 거부권이 아니라 국민의 거부권을 두려워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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