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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이재명의 ‘지팡이’는 장애인 모욕이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26 06:31:20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나는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이다. 장애인이나 신체 손상을 겪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지팡이가 필수품이다. 그나마 지팡이를 쓸 수 있으면 다행이고 더 심하면 휠체어를 타거나 아예 거동을 못하기도 한다. 지팡이는 장애인 흉내를 내거나 아픈 척할 때 쓰는 소도구가 아닌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병원에서 퇴원(?)하거나 검찰 조사나 재판을 받으러 출석할 때 지팡이를 사용했다. 멀쩡한 사람이 아픈 척 위장하기 위해 지팡이를 시용한 것은 지팡이를 모욕하고 장애인을 능멸한 것이다.
 
영화에 지팡이를 사용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팡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밝고 희망찬 이야기가 아니라 우울하거나 슬픈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움직임이 적고 대부분의 내용을 대사로 처리해야 하는 제한도 따른다. 대사는 많고 움직임은 적은 데다 분위기마저 우울한 영화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나마 지팡이를 특별하게 사용한 경우는 무성영화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 겸 배우 찰리 채플린이다. 그가 연기한 ‘떠돌이 찰리’는 거의 부랑자 수준이다. 집도 절도 없이 도시 한가운데를 노숙자처럼 떠돌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당시 미국에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소시민들은 대량 생산 공장의 노동자로 들어가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된 ‘루저’를 상징한다. 그런데도 넝마 같은 양복이나마 챙겨 입고 중산모까지 갖추어 쓴다. 팔에는 지팡이를 빼놓지 않고 걸친다. 장애자가 아니지만 지팡이를 사용하고 신사 차림을 고집하는 것은 문명인으로서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최후의 몸부림이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웃음으로 넘겨 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련한 비장함이 묻어나는 자존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영화 역사에서 채플린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영화 캐릭터가 보여 주는 웃음 뒤에 배어 있는 시대적 통찰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의 지팡이 행보가 비장해 보이지 않는 것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그 앞의 과정인 단식이 사실 여부를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정기 국회를 직전에 두고 이 대표는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무슨 이유로 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느닷없이 단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오히려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단식의 역사는 오래지만 대부분 죽기를 각오하고 벌이는 최후의 저항이었다. 먹는 행위가 모든 존재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과정이라면 먹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의지적인 행동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전에 여러 차례 벌인 간디의 단식투쟁은 폭력을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주목받았고,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서는 보비 샌즈를 비롯한 23명이 단식투쟁을 벌여 10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정치적 목적의 단식이 주류를 이루는데, 1981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벌인 23일 간의 단식투쟁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가택연금 해제·보도지침 철폐 등 다섯가지 요구 조건을 걸고 시작한 이 단식은 ‘모 야당 인사의 식사 문제’로 알려지면서 국민적 관심거리가 되었다.
 
비장함이 따르던 단식은 몇몇 인사들의 ‘단식 퍼포먼스’로 진정성을 의심받으면서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인사는 단식 100일을 넘기기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대표의 단식은 ‘정치 쇼’의 끝판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라마단 단식’ ‘다이어트 단식’ ‘출퇴근 단식’ ‘간헐적 단식’ 등 갖가지 조롱을 받으면서도 유튜브 생중계·지지자들과의 면담·당무 보기·남몰래 음식먹기 같은 처음 보는 행동을 계속했다. 일정 시간에 퇴근을 했다가 오전에 나타나는 기이한 일까지 더했다. 상당한 시일이 지났는데도 단식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건강함도 보였고 장문의 SNS 글도 올렸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생경한 단식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지팡이 연기’는 일련의 이벤트에 뱀다리(蛇足)를 그리는 격이었다. 법원에 출두하거나 정치 지원 유세에 나설 때는 지팡이를 짚은 채였다. 자신을 변호하는 대목에서는 몇 시간이고 끄떡없이 버텼다. 병원에서 나와 당무에 복귀한 이후에는 지팡이를 버렸지만 한동안 계속된 지팡이 행보는 단식쇼의 피날레이자 클라이막스였다. 당사자는 정치적 목표를 충분히 이루었다고 자부하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들러리가 된 장애인은 분노한다. ‘이재명의 지팡이’는 장애인을 능욕하고 일반인을 선동한 악랄한 이벤트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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