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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222] 진흥왕 순수비 ⑤
이제껏 신라보다는 백제가 더 위협적인 존재라 생각했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05 06:30:20
 
 
한편, 고구려는 양원왕이 승하하고 평원왕이 즉위한 이후로 안정을 찾아갔다. 서북변을 침노한 돌궐과 여러 차례 싸워 격파할 정도로 국력도 회복했다.
평원왕은 내부 분열을 수습하고 북제와 손을 잡아 돌궐을 견제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혼란을 잠재웠다.
그동안 고구려의 혼란을 틈타 영토를 잠식했던 신라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백제 역시 신라에 복수를 다짐하고 무시로 쳐들어왔기에 신라가 이전보다 강성해졌다고는 해도 버티기 어려웠다.
진흥왕은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쪽과 우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당시 백제의 위덕왕은 신라를 원수로 여기고 적대시했기에 자연히 고구려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력 567, 진흥왕은 이찬 거칠부를 조용히 불러 고구려와 화친 맺는 문제를 의논했다.
 
진흥왕이 거칠부를 찬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백제군을 제압하고 영토를 상당히 넓혔다고는 하나 고구려의 정예병과 정면으로 격돌한다면 이기리라 장담하기 어렵소. 차라리 고구려와 협상을 해서 이제껏 얻은 땅을 지키는 것이 현명할 듯하오.”
이제 장년에 접어든 신라왕은 주변 정세를 두루 살피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해져 있었다.
거칠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근래 돌궐이 종종 고구려를 위협하고 있으니 고구려도  섣불리 우리와 싸우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상호불가침을 제안한다면 거절하기는 힘들 것이라 봅니다.”
 
거칠부가 선선히 동의하자 진흥왕은 자신의 복안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말인데, 이찬께서 수고를 해 주시오. 내일이라도 당장 평양성으로 떠나시오.”
 
이찬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흔쾌히 명을 받들었다.
다음 날 거칠부는 아침 일찍 국왕을 알현하고 평양으로 출발한다고 아뢰었다.
진흥왕은 밤새 준비한 국서를 내리며 격려했다.
이찬이 간다면 능히 일을 성사시킬 수 있으리라 믿소.”
 
이번 사신행이야말로 이제껏 치렀던 어떤 전쟁보다 더 중요했다. 만일 고구려와의 협정이 성사된다면 신라는 반석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전화(戰火)를 피할 수 없었다.
거칠부는 새삼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진흥왕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보니 고구려로 떠날 힘이 생겼다.
 
돌궐은 북제와 북주(北周)의 갈등을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함으로써 막강한 힘을 키웠다. 그렇기에 여러 번 그들을 물리친 고구려도 경계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동안 잠잠하던 신라의 공세가 재개되었기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이 황초령까지 잠식하자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평원왕은 대신들을 소집해 대책을 의논했다.
 
그동안 신라가 평화 협정을 깨고 북진을 거듭하는데도 내버려 둔 것은 서북변이 불안한 데다 남방의 백제를 견제해야 했기 때문이오. 짐은 이제껏 신라보다는 백제가 우리에게 더 위협적인 존재라 생각했소. 하지만 신라군은 방심을 틈타 몰라볼 정도로 막강해졌소. 더 두고 보다가는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것이오.”
 
대신들도 입을 모아 동의했다.
 
소신들 역시 신라의 성장에 놀랐습니다.”
신라 왕은 강단이 있고 배포가 큰 인물이오. 이미 백제를 넘어섰으니 다음 목표는 우리가 될 것이오. 그들이 우리를 치기 전에 먼저 신라를 제압해야 하오.”
군신의 논의가 한창일 때 시위가 대전으로 들어와 아뢰었다.
신라에서 온 사신이 궐 밖에 당도했다 합니다.”
평원왕은 신라의 의도가 궁금했다.
신라가 무슨 속셈으로 사신을 보낸 건가? 우선 그를 객관에서 쉬게 하라. 내일 아침 짐이 친히 접견하겠다.”
 
다음 날 거칠부는 안학궁 대전에서 평원왕을 알현했다.
평원왕이 거칠부를 향해 입을 뗐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소.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저희 폐하께서는 양국의 관계가 악화된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형제처럼 지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십니다.”
 
거칠부는 은근히 신라를 고구려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평원왕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지난날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이었다. 이제 국력이 좀 커졌다고 짐을 능멸하려 하는가!‘
폐하,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분명 질서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질서가 늘 한결같을 수는 없나이다. 이제 신라는 백제를 능가하여 남방의 맹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니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거칠부가 당당하게 나왔기에 평원왕도 무작정 화만 낼 수는 없었다.
네 말이 옳다고 치자. 그렇다면 너희는 어찌하여 신의를 저버리고 우리 땅을 슬금슬금 침탈했느냐?”
 
백제는 아직도 고구려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국력이 회복된다면 즉시 고구려를 치려 할 겁니다. 우리 신라는 고구려를 형제처럼 생각하기에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려는 겁니다.”
거칠부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평원왕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이런 방자한 놈을 보았나! 내 당장 신라를 쳐서 네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마!”
왕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자 대대로 고흘이 나서서 말렸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사신을 잠시 물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거칠부가 대전을 빠져나가자 대대로는 국왕에게 차분히 아뢰었다.
신라가 원하는 바는 지금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저들이 이처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돌궐 때문에 대군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신라의 오만이 하늘을 찌를 것이오. 당장 군사를 일으켜 저들을 응징해야 하겠소.”
신중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주력군은 요동에 있습니다. 신라를 치려면 그들을 동원해야 하는데 돌궐이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겠습니까. 게다가 거란과 실위·물길 등이 돌궐과 동조하여 일어나게 되면 실로 난국에 처할 겁니다.”
 
평원왕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다면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오?”
어찌 보면 그것이 우리에게도 이득이 됩니다. 신라와의 국경을 엄격히 정해 두면 당분간은 저들의 북진을 막을 수 있을 테고, 더불어 백제를 견제하는 방패막이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 돌궐을 제압하고 군사를 정비하면 머지않아 남방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국왕이 침묵하자 고흘이 다시 아뢰었다.
상대가 승할 때는 잠시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신라도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겁니다.”
 
고흘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왕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좋소. 내 멀리 내다보도록 하겠소.”
 
평원왕은 신라 사신을 불러들였다.
짐은 신라 왕의 충심을 받아들이겠다. 동으로 황초령 이남과 서로 대수 이남을 신라 땅으로 인정하겠다. 신라가 더는 북상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다.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이제껏 당해 본 적이 없는 처절한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죽음을 각오했던 거칠부는 예상보다 쉽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하여 고구려와 신라는 한동안 화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력 568, 진흥왕은 연호를 개국(開國)에서 대창(大昌)으로 고쳤다. 이는 앞으로 나라를 크게 번창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얼마 후 진흥왕은 수많은 신하를 이끌고 순행을 떠났다. 부아악을 거쳐 황초령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번에 새로 확정된 신라의 국경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진흥왕은 한성을 둘러보고 부아악으로 향했다. 십수 년 만에 봉우리에 오르니 감개무량했다. 지난날 도인을 만났던 석굴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국왕은 석굴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벽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귀를 발견했다.
 
三國一體 弘益人間(삼국일체 홍익인간)
 
진흥왕은 이 글귀를 보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삼국은 하나이니 진정한 군주라면 삼국의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진흥왕은 석벽의 글귀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는 자신에게 인군의 길을 일깨워준 도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해 산 위에 자신의 방문 기록을 새긴 비석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다시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갔다.
국왕 일행은 며칠을 걸어 안변에 이르렀다. 순행 길은 다행히 순조로웠다. 그들은 마운령을 거쳐 황초령에 올랐다. 이곳이 바로 신라의 최북단 경계였다.
진흥왕은 황초령에 올라 신하들을 둘러봤다.
세상의 도리가 진실에서 어긋나거나 그윽한 덕으로써 다스려지지 않으면 사악함이 서로 다투게 된다. 그러므로 제왕은 연호를 바로 세우고 스스로 갈고 닦음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짐은 선조의 사명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였고 스스로 삼가면서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다 보니 운수가 트여 어두운 가운데서도 천지신의 감응을 받았다. 덕분에 사방으로 영토를 넓히고 수많은 백성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예로부터 신라인인 자와 새로 신라인이 된 자를 모두 곧고 바르게 기르고자 애쓰려 한다. 이에 짐은 태창 원년(서력 568년) 가을 8월에 영내를 순시하여 민심을 살피고 백성을 위로하고자 하노라. 만약 재난의 기미를 살피고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해 공을 세운 자가 있다면 그 공로를 표창하고 벼슬과 물품을 상으로 내려 치하하겠노라.”
하늘의 도리를 내세워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일찍이 장수왕이 국원 땅에 비석을 세우면서 다짐한 일이기도 했다.
진흥왕은 소명을 비석에 새겨 마운령과 황초령에 세웠다. 이로써 신라가 천명을 받았고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선택된 자임을 만방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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