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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제국의 꽃’ [228] 만민공동회의 파행
국민 참칭과 민권 찬탈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05 06:30:10
 
 
하지만 만민공동회는
1222일에서 26일까지 일련의 집회를 이어 가려는 노력을 반복했다. 1223일 황제는 대내외적으로 고립된 만민공동회의 23일 집회를 군대를 동원해 해산했다. 그리고 1225(26일 관보 게재) 만민공동회에 최후로 칙유했다. 이 칙유에서 처음으로 만민공동회의 국민 참칭민권 찬탈을 지적했다. 이 칙유가 나가자 윤치호는 박영효와 분리되어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백성으로부터도 완전히 고립되어 갔다. 18981224일에는 가톨릭교도들도 독립협회 회원들과 시위자들을 타도하기 위해 집회를 가질 태세였다.
 
뮈텔 주교가 광무 황제를 찾아와 한 말은 이렇다.
 
우리 가톨릭교도는 교도들의 동의 없이 결코 중대한 일(시위자들과 합류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우리 교도들은 시위자들과 합류할 의사는 물론 그들과 함께 투쟁할 의사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개탄스러운 소동을 밖에서 지켜보며 소란을 일으키는 소수의 사람들로 정부가 궁지에 빠진 것을 한탄할 뿐입니다.”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 또한 1227일 일기에서 만민공동회의 계속 농성에 반대하는 이유를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우리는 돈이 없다. 둘째, 우리는 경솔한 박영효 소환 제안으로 백성의 공감을 잃었다. 셋째, 국고는 이제 텅 비었다. 군인들에게 지불할 돈이 한 푼도 없다. 우리가 지금 모여 군중 선동을 부추긴다면 궁궐은 수세 실패, 국고 빈곤 등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돌릴 것이다. 넷째, 우리가 군중 시위의 형태로 무슨 짓을 하든 이것으로 이익을 얻는 유일한 당파는 일본과 러시아다. 다섯째, 우리가 궁궐로 쳐들어가 지금 폐하를 오도하고 있는 망나니들을 청소할 수 없다면 가두에서의 단순한 집회는 전혀 무익할 것이다.”
 
이 결산 일기를 쓴 윤치호는 27일 독립신문 영문판에서 몰라요(Molayo)’라는 필명으로 민회가 관리들의 강제 동원·부자들에 대한 기부금 강요·고등재판소에 쳐들어간 것 등 마지막 기간 동안 많은 실수를 범했다고 인정하고, 인민은 지쳤으며 이 집회는 인민이 스스로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당분간 조용히 있을 것을 촉구했다. 또 윤치호는 다음 날인 1228독립신문’ 한글판에 그가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공동회에 대한 문답을 실어 박영효 직계들에게 결별을 통보했다.
 
윤치호의 부친 윤웅렬은 아들의 신상에 위험이 닥칠까 염려하여 서울을 떠나라고 재촉하다가 김영준 경무사에게 윤치호의 지방 발령을 부탁했다. 김영준은 황제에게 윤치호를 원산의 덕원 감리 겸 덕원 부윤으로 내려보내면 서울이 안정될 것이라고 주청했고, 18991월에 황제의 인사 명령이 내려졌다. 해외 도피를 머뭇거리던 윤치호는 국내에 남으라는 일본 공사의 의견을 듣고 나서 3월이 되어서야 원산항에 도착했다. 만민공동회 사람들은 수많은 지도자가 붙잡혀 가고 쫓기고 있는 때에 윤치호가 혼자 도피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침을 뱉고 욕을 했다. 독립협회는 대부분의 간부가 만민공동회의 폭력 행위에 연루되어 검거를 피해 잠적했고, 윤치호의 도피 낙향으로 회장 없는 조직으로 남았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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