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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조작된 ‘서울의 봄’은 한국 영화의 겨울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07 06:31:00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영화 ‘서울의 봄’ 바람이 거세지만 훈풍이 아니라 한겨울 북풍 같다. 조작된 이야기로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판타지 액션에서부터 다큐멘터리까지 범위가 넓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꾸밀 때는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이때도 기본은 ‘그럴듯해야’ 한다. 꾸미되 꾸민 것 같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서울의 봄’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픽션을 섞었다. 이때 영화적 상상력이 허용되는 것은 사실의 흐름을 바꾸지 않는 선까지만이다.
 
픽션은 영웅과 악당의 대결로 꾸밀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흑백논리로 재단하기 어렵다. 섣부른 해석은 의도적인 왜곡을 하기 위해서이거나 사실에 대해 무지할 때만 가능하다. ‘서울의 봄’은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역사적 사실이 강하고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허구의 이야기가 너무 많다. 결국 다큐멘터리와 허구가 뒤섞인 잡탕인 셈이다. 주인공이 달라지면 시선이 달라지고 시선이 달라지면 사실이 달라진다. 사실이 달라지면 역사도 달라진다.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역사·원하는 역사를 그려 내는 것은 역사의 해석이 아니라 조작이다. 결과는 내가 비난하고 싶은 상대는 악마화시키고 지지하고 싶은 상대는 무고한 희생자나 영웅으로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때의 영화적 상상력이란 말은 악의적인 왜곡을 감추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의 봄’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출동하는 2공수부대를 막아서고 끝내 회군시킨다. 정의로운 군인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없었다. 허구인 이 장면 탓에 전두광 일당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군인이고 이태신 그룹이 군인의 본분을 지키는 참 군인이라고 우기는 것이 됐다. 결과적으로 12.12사태는 구국의 결단이 아니라 권력에 눈이 먼 반란 세력의 행위라 매도하고 그 중심에 전두환이란 인물이 있다는 설정이다. 근거도 논리도 없는 선동이고 우격다짐이다. 캐릭터의 모델이 된 장태완은 훗날 전두환 대통령이 제의한 한국증권전산 사장 자리를 받아들였고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다. 신군부에 맞섰던 올곧은 군인의 행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악의적으로 역사를 날조한 영화는 ‘남부군’(1990)이 시작이 아닌가 한다. 지리산으로 도피한 빨치산 게릴라의 시선으로 6·25 전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허무하다’느니 ‘민족적 비극’이라느니 따위의 말을 중얼거린다. 전쟁의 발발 원인이나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 ‘동족끼리 싸우는 게 안타깝다’는 말을 쏟아 낸다.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추종하는 세력들이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는 주장 아닌가. 뒤이어 나온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은 전태일의 생애와 상관없이 노동운동에 헌신한 영웅으로 그린다. ‘그때 그사람들’(2005)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일제시대 향수에 젖은 노회한 정치인 정도로 희화화하고 ‘화려한 휴가’(2007)에서는 5·18광주사태 당시 시위 진압에 나선 군부대원을 잔혹한 폭력 집단으로 그린다. 미모의 간호원·동생을 뒷바라지하며 선량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택시 기사·구김없이 공부하는 고등학생 등이 계엄군의 횡포에 분연히 맞선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선악의 대립 구도다. 5·18을 미화하고 싶은 측에서 반복해서 내세우는 논리다.
 
‘택시운전사’(2017) 역시 광주 5·18사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선량한 시민·잔혹한 진압군 구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광주사태를 미화하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더욱 강화할 뿐 사건의 전모를 객관적으로 밝히거나 시민군의 행위에 대해서는 모른 척한다. 제주 4.3 시태를 그린 ‘지슬’(2013)은 주민 입장에서 토벌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방적으로 희생당했다는 주장을 편다. 남로당이 일으킨 5.10 선거 파괴 공작 때문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상관 않는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낮은 목소리’ 3부작은 위안부 희생자를 자처하거나 수요집회 등 관련 활동을 벌이는 인물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전달한다. 당시의 정치적·사회적인 상황은 어떠했고, 위안부가 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일본의 무자비한 납치·강요를 부각하며 적대감을 더 조장할 뿐이다.
  
이 밖에도 왜곡과 조작을 담은 영화들을 꼽자면 두 손이 모자랄 정도다. 역사를 왜곡하고 필요에 따라 조작하는 ‘서울의 봄’ 같은 영화는 흥행이 어떻게 되든 가짜영화의 목록에 숫자 하나를 더할 뿐이다. ‘영화적 상상력’은 사실을 왜곡해도 좋다는 면죄부가 아니다. ‘서울의 봄’은 한국 영화의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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