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4º
습도 90%
수원 23º
습도 85%
춘천 23º
습도 90%
)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도박이 과연 의미있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수입 의약품에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며 의료계와 글로벌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8일 백악관 내각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의약품에 대해 매우 높은 관세율, 가령 200% 정도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약사들이 미국 내에 생산 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1년에서 1년 반 정도의 유예 기간을 주겠다는 의향도 덧붙였다. 이는 단순한 보호무역 정책을 넘어 의약품이라는 공공재까지 무역 정책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미로 해석돼 논란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의약품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으며 그 결과가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이 조사 결과는 의약품 관세 부과 근거의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일련의 행보는 미국 내 의약품 생산을 촉진하고 공급망을 자국으로 가져오려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다만 공공재 성격이 강한 의약품에 대해 철강·알루미늄 등 다른 재화의 경우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과정을 거치면서 의약품 주권, 특히 원료 의약품의 자국 내 생산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공급망 교란으로 인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의약품의 수급 불안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코로나19 이후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한 기업의 생산 기지 등을 본국으로 복귀시키는 것) 또는 니어쇼어링(인근 국가에 생산 기지를 두는 전략) 정책을 통해 의약품 공급망의 안정화와 자국 내 생산 역량 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 주권이나 자국 생산의 개념을 관세라는 단순한 해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극히 위험하다.
제약 산업은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공급망이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재편된다면 상당한 추가 비용과 시장 재조정의 시간이 요구되며 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의약품 생산 및 공급망의 구조는 단기간 내에 조정이 어려운 만큼 관세 부과는 일시적 공급 부족 및 중단 등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로 인한 비용 상승이 결국 환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입 의약품에 높은 관세가 붙게 되면 제약사는 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반영하게 되고 결국 환자들이 부담하는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미국 환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세 정책의 핵심 배경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 내 약가 문제를 지적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미국 환자들이 지불하는 약값이 다른 나라들의 경우보다 비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이러한 논리로 관세를 부과하면 결과적으로는 미국 내 약가가 인하되기보다는 글로벌 약가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약사들은 미국에서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가격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할 수 있으며 이는 글로벌 전반으로 환자들의 비용 부담이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제약협회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관세에 지출되는 비용은 환자들의 미래 치료제 개발과 생산 시설 투자에 쓰일 자금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손익을 넘어 환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관세 발언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미국 내에서도 제약업계와 환자 단체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국제 무역 규정 위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가 보건 관련 제품에 과도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는 내용에도 정면 위배되는 정책이다. 미국 행정부가 경제적 부담과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까지 이를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시장은 정확한 분석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정책의 불확실성만으로도 이미 글로벌 제약 시장과 환자들에게 상당한 혼란과 불안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의약품 공급망의 안정성은 단순한 국가 이익을 넘어선 문제다. 마스크와 백신과 치료제 관련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협력을 저해하고 치료접근성에 대한 차별을 발생하게 했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의약품 관세 부과가 강행될 경우 예기치 못한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생명에 관여하는 의약품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제약 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그렇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